설날 당일 오후가 되자 여동생네 식구들과 누나네 식구들이 왔습니다. 다들 시댁에서 나름 고생을 하고 왔을 겁니다.
우리집 며느리 둘도 전날 그믐제와 설날 아침 떡국제를 치르고, 친지들을 돌며 세배를 하고, 할아버지와 어머니 산소에 다녀오느라 이미 파김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누이와 그 남편들까지 왔으니 마냥 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럴 때 저와 제 동생이 나섰습니다. 명절 음식도 이젠 질릴 때가 되었으니, 저녁엔 삼겹살이나 구워 먹자고 바람을 잡는 거죠.
삼겹살을 그냥 사오면 재미 없습니다. 윷놀이를 해서 모은 돈으로 사먹기로 했습니다. 각집 식구별로 팀을 이뤄 지는 팀이 무조건 5000원씩을 삼겹살 값으로 내놓습니다. 그러면 열 번만 해도 5만 원이 금방 마련됩니다.
삼겹살 살 돈 마련을 위한 가족대항 윷놀이입니다.
저와 제 동생이 읍내에 가서 돼지목살과 주물럭, 그리고 상추와 버섯 등을 사왔습니다. (삼겹살은 기름이 너무 많을 것 같아 목살을 샀습니다.)
어제 부침을 부치던 전기 후라이팬을 꺼내 로스구이용 판으로 삼겹살을 구워 열심히 상으로 날랐습니다. 그러는동안 부엌에서는 가스렌지에 후라이팬을 올려놓고 주물럭을 볶아 밥과 함께 아이들이 놀고 있는 방에 넣어줍니다.
저희는 열심히 굽고, 여자들과 시누이 남편들은 먹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거실에서 저희가 구운 돼지목살과 함께 소주도 한 잔씩 걸칩니다. 밥이 먹고 싶은 사람은 그냥 밥 한 공기만 퍼주면 밑반찬과 함께 먹는 걸로 충분합니다.
고기를 굽느라 너무 바빠 다 먹은 후에야 사진을 한컷 찍었습니다.
제 동생이 고기를 다 구운 뒤, 전기후라이팬을 닦고 있습니다.
다 먹고 난 후, 제부도 나서서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취기가 돌자 윷놀이를 더 하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다시 식구별로 편을 갈라 윷놀이에 들어갑니다. 아이들도 합세합니다. 다시 5만 원이 더 모였습니다. 어느덧 시간도 자정이 되어 갑니다. 피곤한 사람들이 한 둘씩 방안으로 들어가 곯아떨어집니다.
모인 돈은 모레까지 남아 있을 남동생이 아버지를 모시고 맛있는 외식을 할 비용으로 지원키로 했습니다.
아침 6시40분 마산행 버스를 탔습니다.
다음날 아침, 제가 출근해야 하는 관계로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물론 아침식사도 못하고 나섰죠. 마산에 도착하니 오전 9시도 되기 전입니다. 이른 시간이라 교통체증도 없었습니다. 도착하니 배가 고픕니다. 제가 나설 마지막 차례입니다.
가게에 가서 즉석 생칼국수를 사왔습니다. 지쳐서 누워 있는 아내에게 칼국수를 끓여 바칩니다. "당신, 출근도 해야 하는데 힘들지 않아?" 라는 말이 나오면 성공입니다. 저는 "아니, 당신이 시댁에서 고생한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하고 응수합니다. 이런 반응이라면 적어도 올해는 아내의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아침 제가 끓인 즉석 칼국수입니다. 계란 하나 넣은 것 말고는 다른 기량을 발휘한 건 없습니다.
너무 닭살인가요? 제 자랑만 하는 것 같아 거북하신가요? 그렇게 보셔도 뭐 어쩔 수 없겠지만, 아내의 '명절 증후군' 때문에 명절이 지나고도 한참동안 괴로움을 겪어본 결혼 13년차 남편의 '살아남기 위한 노하우'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관련 글 : 설 명절에 남편이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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