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빙 필자의 글/하태영, 하마의 下品

형법학자가 본 오바마의 모든 것

기록하는 사람 2009. 1. 22.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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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 법학부 하태영 교수는 형법학자다. 2008년 문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형사철학과 형사정책>(법문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교수의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학자이다. 사회가 대학교수를 지성인으로 대접해주는만큼 사회적 현안과 쟁점에 대해 '공공적 발언'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그를 만났다. 최근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쟁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나는 그에게 블로그를 권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블로그와 홈페이지의 차이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 '지역에서 본 세상' 블로그를 통해 형법 학자가 본 정치·경제·사법·입법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로 했다.

카테고리는 곧 발간될 그의 책 제목을 따서 '하마의 下品(가제)'으로 했다. 이 글은 그의 두 번째 기고다. (김주완 주)

미국 제44대 대통령 버럭 오바마 … '변화와 희망'

글쓴이 하태영 교수.

요약
: 오바마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이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북미관계 개선이다. 오바마는 북한의 정책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오바마-김정일' 정상회담과 북미 양자회담, 그리고 6자 회담이라는 다자 협상을 병행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외교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적대적 국가들과의 정상회담이 유용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북한의 급변이나, 남북간 통일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이 기간 동안 우리의 과제는 대북정책의 로드맵을 공유하면서 상호 조율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평화정책에 중심을 두면서 멀리 보아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FTA는 심각한 결함이 있는 협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극단적인 자유무역 반대론자가 아니다. 오바마도 미국의 7대 교역국인 한국의 위상과 그 중요성을 알고 있다. 따라서 취임 이후 일정기간 조정과정을 거치고 나서 한미 FTA는 비준될 가능성이 있다.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의 상황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불공정 무역관행, 노동 및 환경 기준 강화에 대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세계가 오바마를 축하했다
 
미국은 지금 40대의 검은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노예해방 145년 만이다. 2009년 1월 20일. 버럭 오바마(Barack Obama)가 미국 제4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정치란 사업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사람들이 더 낳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것이 정치입니다." <에센스, 2004년 3월>

"이것만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대통령직은 결코 허영이나 야망 따위를 만족시키기 위해 좇는 자리가 아닙니다. 냉정함과 엄숙함이 요구됩니다. " <밋 더 프레스, 2006년 10월 22일>

오바마 대통령의 업적 가운데 가장 큰 업적은 대통령 당선이다. 그의 임기가 4년이 되든, 8년이 되든, 끝나도 마찬가지다. 그는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정말 긴 여정이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 미국에는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단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일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 당선 연설문, Yes We Can! 2008년 11월 4일>

사진 : 뉴시스


오바마 대통령 취임으로 네 가지가 몰락했다. 8년의 부시 공화당 정권의 몰락, 30년의 신자유주의의 몰락, 40년의 보수헤게모니의 몰락, 그리고 1776년 미국 독립 이후 232년의 백인통치의 몰락이다. 그래서 그의 취임은 그만큼 역사적 의미가 있다.

"국민 모두가 모든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져야 합니다. 공포대신 희망을, 분열보다 화합을, 편견보다는 가치와 전진을, 젊은 나라로 미국을 이어갑시다. 우리의 정신은 살아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줄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미국을 재창조하는 일에 나설 것입니다." <미국 제44대 대통령 취임 연설문, 2009년 1월 20일>
 
오바마와 꿈

세계는 오바마의 '말'에 푹 빠져있다. 그의 연설은 한 곡의 교향곡이다. 오바마는 가장 쉬운 단어를, 가장 감성적으로 연설한다. 그는 말로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 법을 안다. 여유와 겸손이 말을 더 빛나게 한다.

"저의 정치 활동의 뿌리는 어머니가 제게 심어주신 가치입니다. 여기에 맞춰 살아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러한 가치를 계급과 인종과 그리고 민족으로 갈갈이 찢긴 세상과 조화시킬 방법을 찾고 싶었을 뿐입니다. 저는 의무감에 떠밀려 공직에 나섰습니다."<맨즈 보그, 2006년 가을>

"나의 직업은 여러분 앞에서 워싱턴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워싱턴에 가서 여러분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 2006년 10월 18일>

"저의 성공요인은 오로지 진보적 가치에 충실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잡다한 요소를 절충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워싱턴포스트, 2006년 12월 11일>

오바마는 글쓰기 능력과 스피치 능력을 모두 갖춘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의 궁극적인 목표는 공감(共感)이다. 그는 쉽게, 핵심만, 마음을 헤아려 말한다. 정확한 발음, 명확한 언어 구사, 쉽고 간결한 표현, 반복적이며 점진적인 연설방법, 저음 그러나 시원시원한 음성, 진지한 외모, 그리고 깔끔한 스타일이다. 이것이 대중들에게 호감과 신뢰를 준다.

오바마와 용기

오바마는 담대하고, 솔직하고, 절제를 아는 고수(高手)다. 제일 좋은 '이미지 메이킹'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이점을 깨닫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끌어내어 '사랑의 언어' 그리고 '긍정의 언어'로 국민에게 말한다.

"리더십의 근간은 이력서 내용이 아닙니다." <시카고트리뷴, 2006년 12월 15일>

"<담대한 희망>은 선전 책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지를 살펴보는 책입니다. 이 나라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성찰에 더 집중한 책입니다." <뉴욕메거진, 2006년 10월 2일>

"사람들이 제가 카메라만 좇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일을 하려고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시카고트리뷴, 2005년 3월 20일>

"저는 쉽게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카고트리뷴, 2005년 3월 20일>

"저는 사회에 쓸모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뉴요커, 2006년 10월 30일>

"고백하자면, 저도 정책 벌레입니다". <시카고트리뷴, 2005년 3월 20일>

"제 피부색에 대해서는 편안합니다". <롤링스톤, 2004년 12월 30일>

오바마와 철학

오바마 대통령은 워싱턴 정치의 변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그는 복잡한 가정환경을 극복한 입지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삶과 개인적인 경험을 진솔하게 말한다. 그가 가진 강력한 호소력의 근원이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

"인종주의는 다른 형태의 권력 남용의 확장입니다." <크라이시스, 1995년 10월>

"정치는 사람을 녹초로 만드는 힘든 여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가족을 동원해도 좋을 만큼 독특한 구상과 방안을 전달할 수 있을 때 시작해야 합니다." <시카고트리뷴, 2006년 11월 20일>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종교적 동기에서 우러나온 의제를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용어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찰리 로즈 쇼, 2006년 10월 19일>

"저는 모든 사안에서 쟁점의 겉모습 보다는 실체에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시카고트리뷴, 2006년 2월 24일>
"저는 이 나라의 모든 어린이가 인생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미국의 이상을 실현시키고 싶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최고의 삶을 살아라, 293면>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살수 있다면, 정책이 통하기만 한다면, 중도냐,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서 그 정책을 지지해야 합니다." <뉴욕 매거진, 2006년 10월 2일>

"워싱턴 정치는 WWF 레스링의 복사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로 때려 눕히고 의자를 집어 던집니다. 그렇게 해서는 아무 일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휴스턴 크로나클, 2006년 10월 29일>

"남의 집 빨래를 하는 힘든 하루 일을 마치고도 버스를 타지 않고 집에 오던 그 모든 이름 없는 여자들이 자유를 위해 행진하는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그 모습이 저에게는 미국 정신의 정수를 구현한 실천이며, 제가 저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올 싱스 컨시더드, 2004년 7월 27일>

오바마와 외교

오바마 대통령은 시장에 대한 규제와 수정, 그리고 책임을 강조하는 경제 질서로 미국과 세계를 재편하려고 한다. 이 경우 자유무역의 원칙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우리의 외교 정책은 세계 모든 지역에서 미국의 전통적인 이상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보장, 자유롭고 공정한 거래와 문화 교류, 시장 경제 내에서 중산층 확대를 보장하는 여러 제도의 발달이 바로 우리의 전통적인 이상입니다." <시카고 외교 협회 연설, 2004년 6월 12일>

"우리나라를 전세계의 희망과 자유의 햇불로 만들었던 가치와 판단을 회복하려면, 우리 리더십의 태도와 방향성도 변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카고 외교 협회 연설, 2004년 6월 12일>

오바마 대통령은 유럽연합(EU)과 아시아와 협력을 강화하면서 특히 중국과의 협력도 심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인권 문제, 위안화 절상문제, 그리고 시장개방 문제 등은 갈등의 소지가 있다.

"우리는 근로기준법이나, 인권, 미국산 제품에 대한 중국의 시장 개방, 미국 기업과 맺은 법적 계약의 준수 들을 요구해야 합니다. 물론 무역 전쟁을 유발해서는 안 되겠지요." <미국의 리드십 쇄신 보도 자료, 2004년 7월 12일>

오바마와 한반도

사진 : 뉴시스

오바마 대통령은 중도 좌파의 이념적 성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오바마의 참모들은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에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북한 핵문제는 현재의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동북아의 안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북한이 제기하는 위협을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3년 6개월 동안 북한과의 협상을 거절한 덕분에 전문가들은 북한이 여석 개에서 여덟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거라고 합니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북한에 핵보유 능력의 완전하고 입증 가능한 제거를 요구해야 하고, 6자회담을 즉시 시작해야 하며, 비핵화보다 더 광범위한 인도주의적인 개혁의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미국의 리더십 쇄신, 2004년 7월 12일>

"북한도 국가이므로 비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북한은 러시아보다 더 이데올로기와 환상에 의해 움직이는 체제입니다." <뉴요커, 2007년 1월 15일>

 
오바마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이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북미관계 개선이다. 오바마는 북한의 정책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오바마-김정일' 정상회담과 북미 양자회담, 그리고 6자 회담이라는 다자 협상을 병행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외교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적대적 국가들과의 정상회담이 유용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북한의 급변이나, 남북간 통일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이 기간 동안 우리의 과제는 대북정책의 로드맵을 공유하면서 상호 조율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평화정책에 중심을 두면서 멀리 보아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FTA는 심각한 결함이 있는 협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극단적인 자유무역 반대론자가 아니다. 오바마도 미국의 7대 교역국인 한국의 위상과 그 중요성을 알고 있다. 따라서 취임 이후 일정기간 조정과정을 거치고 나서 한미 FTA는 비준될 가능성이 있다.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의 상황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불공정 무역관행, 노동 및 환경 기준 강화에 대한 대응해야 할 것이다.

"2020년까지 바람이나 태양, 바이오매스(열분해나 발효를 통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생물 지원), 지열 같은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 전력 공급의 20%를 충당하고 또 그만큼의 연료를 에탄올이나 바이오디젤 같은 재생 가능한 연료로 공급하는 에너지 독립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합니다."<미국의 리드십 쇄신 보도 자료, 2004년 7월 12일>

오바마와 변화와 희망

오바마 대통령은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100년만의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이라크 전쟁,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해결해야 한다. 또한 정부가 금융위기 수습에 주도적 역할을 해내야 하고, 여전히 수렁 속을 헤매고 있는 이라크에서 철군과 평화를 동시에 일궈내야 한다. 그는 4년 임기 내내 힘든 도전과 맞서 싸워야 한다.

"저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우둔한 전쟁, 경솔한 전쟁입니다. 이데올로기로 밀어붙이는 전쟁, 이성이 아니라 권력과 정치에 기반한 전쟁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찰리 로즈 쇼, 2006년 10월 19일>

2009년 미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다. 그의 가장 최우선 과제는 경기침체로부터 탈출이다. 임기 초기에는 무엇보다 경제회생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구제금융 법안의 구체적 집행과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부양을 실시하고, 금융부분에 대한 구조조정과 규제강화 조치가 불가피 할 것이다.

오바마의 경제정책은 경제활성화, 조세, 근로자 보호, 무역, 중산층 보호, 교육 등에 집중 되어 있다. 특히 그는 시장기능에 대한 신뢰보다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옹호하고 있다. 근로자 및 사회적 약자 보호를 관심이 많다. 

오바마와 함께 역사의 길을 걸으며…

오바마를 상징하는 키워드(Key Word)는 변화(change), 개혁(reform), 다양성(diversity), 화합(Unity), 새로운 세대(new generation)라고 한다. 그러나 이성과 절제, 인권과 약자 보호가 그의 피에 흐르고 있다.

"미국은 페이지를 넘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새로운 도전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시대입니다. 새로운 세대는 미국을 이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2006년 12월 11일>

"준비된 사람이란 일의 막중함을 이해하고 비전과 판단을 결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지식도 중요합니다." <뉴요커, 2006년 10월 30일>

"나라를 바꾸고 싶습니다. 저 나름대로의 독특한 공헌을 하고 싶습니다. 위대한 대통령이 되고 싶은 겁니다." <맨즈 보그, 2006년 가을>

아버지의 꿈

오바마는 태어나서 처음 그리고 딱 한번 아버지를 만났다. 1971년 10살 때였다. 12월 한 달을 같이 보냈다. 그날 이후 몇 년 동안 무척 힘든 시기를 보냈다. 어머니의 고향 캔자스의 문화, 그때까지 그가 경험했던 인도네시아와 하와이 문화, 거기에 자신의 것이 분명한 아버지의 고향 케냐의 문화가 더해지면서 정체성의 혼란이 찾아온 것이다.

백인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살면서 흑인 아버지를 둔 자신을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도 의문이었다. 이때부터 오바마의 삶은 이런 혼란과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 된다(헤더 레어 와그너/유수경 옮김, 오바마이야기)

어머니의 힘

오바마가 당당한 리더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힘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마무리 했다. "너는 네 아버지의 자심감을 배워야 해. 자신감은 남자의 성공을 위한 비밀 열쇄거든." 그는 어려서부터 문화적 다양성을 체험했고, 미국 사회의 다양성을 폭넓게 이해했으며, 이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강점을 소유하게 되었다. "오바마는 매우 활동적이었어요. 항상 갈 곳이 있었죠. 그리고 매우 도전적이었고, 시대를 앞선 생각들을 많이 했어요."

공동체 운동

오바마를 세상과 이어준 것은 농구공이었다. 그는 고등학생이 되어 푸나호우 농구부 선수가 되었다. 팀에서 유일한 왼손잡이였다. 오바마가 처음으로 고무되었던 사건은 1980년대 '투자철회운동'이었다. 그는 여기서 생애 첫 연설을 했다. "존엄성이냐 굴종이냐, 실천이냐 외면이냐, 정의냐 불의냐!". 그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열정으로 대중을 장악했다. 그때 그는 자신이 사람들을 자극하는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더 깊은 어떤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탄탄한 공동체를 생각했다. 그는 자기 자신의 개혁을 꿈꾸고 있었다.

절제

오바마는 옥시덴탈대학에서의 나쁜 습관과 방종으로부터 벗어나겠다고 다짐했다. 할렘가의 허름한 아파트에 살면서 일요일에는 금식을 하고 하루에 4.5킬로미터씩 달렸다. 일상을 성실히 기록했다. 공사현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세미나에서 폭 넓은 시야를 보여 주었다.

눈물

오바마는 1982년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꿈속에 나타나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까지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지 않았다. "나는 울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흘린 최초의 눈물이었다." (오바마, 아버지로부터의 꿈)

지역사회운동가

오바마는 그 이후 더욱 열정적으로 학업에 집중했다. 피부색이나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차별당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오바마는 자신이 꿈꾸는 사회를 만들려면 자신은 물론 나라에도 변화가 필요하고, 그 변화는 잘 조직된 공동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정원처럼 관리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지역사회운동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젊음을 받쳐야 할 일은 적어도 '더 좋은 조건의 자리'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바마는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시카고로 떠났다. 베테랑 활동가와 함께 '개발공동체 프로젝트' 단체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교육환경, 더 많은 일자리, 그 재취업 교육임을 알았다. 오바마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의 불만을 행동으로 이끌어 내어 더 나은 상황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오바마가 계획한 첫 번째 집회가 열렸다. 주제는 '총기 사건과 치안문제'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오바마는 석면제거에 대한 공개면담을 준비하면서 희망을 발견했다. 모두의 가슴에 희망을 심어주고,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한 사람의 작지만 정직한 한 걸음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오바마는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지역사회 안에서 생활하세요. 사람들과 힘을 모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사람들을 제외시킨다면, 당신의 힘만 약해질 뿐입니다."

오바마는 '청소년 상담 네트워크'를 제안해서 완성했다. 아이들을 위한 진정한 교육이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은 물론 자기가 속한 문화와 집단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흑인 아이들이 그런 교육을 받기란 쉽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는 한 사람의 당당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이끌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를 통해 오바마는 한 단계 더 성숙했다.
 
하바드 로스쿨

오바마는 더 큰 것을 배우기 위해 하버드 로스쿨로 갔다. 27살이었다.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의 최초의 흑인 편집장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당선은 큰 진보였다.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1996년 오바마의 인생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나이 35에 그는 정치세계에 뛰어 들었다. "정치에는 다른 전통도 있습니다. 그 전통은 분열시키는 힘보다 하나로 결집시키는 힘이 더 강합니다." 그는 마침내 일리노이주 민주당 상원으로 당선되었다. 2004년까지 3선으로 활동했다.

오바마는 2003년 '범죄자 취조과정에서 비디오 녹화 필수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리노이주 경찰에게 사형이 가능한 모든 중죄 사건을 심문할 때는 그 과정을 반드시 녹화하도록 한 것이다. 이 법안은 부당한 폭행, 억울한 사형수가 되거나 흉악범이 무죄가 되는 일을 없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법안이었다. 오바마가 해낸 일 중 가장 혁신적이었다. 이 법안으로 정치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를 받았다. 이후 그는 보건복지위원회에서 26개의 법률을 통과시켰다.

사진 : 뉴시스

오바마는 머리로만 일하는 의원이 아닌 실천하는 의원이었다. 남들보다 더 바빴고 머리 아픈 일도 더 많았다. 항상 에너지가 넘쳤다. 오바마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서민들에 관한 것과 평등권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최소임금 인상에 대한 결의안을 냈고, 저소득층을 위해 5퍼센트의 소득세에 대한 세액공제를 통과시켰다. 그리고 기업인들을 위한 연말정산 세금감면 제도와 노약자, 장애인을 위한 전문의약품 할인제도를 추진하는 정책을 펼쳤다.

오바마는 동성애자에 대한 주택법률제정을 후원했지만, 가정차별화 정책에서는 동성애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또 일리노이주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의료보험법을 후원했다.
 
"배아줄기세포의 연구를 통해 우리가 내일의 치료법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줄기세포연구법안 보도자료, 2004년 6월 16일>

마지막 임기 2년 동안 수많은 의원들 가운데 중요한 일을 맡아 하는 핵심인물이 되었다. 2004년 11월 2일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으로 당선되었다.

짧은 축제, 험난한 여정

2009년 1월 20일. 워싱턴의 취임식장에는 20여만 명이 축하했다. 그 광장에는 200만 명이 모여들어 40대 흑인 대통령을 축하했다. 그러나 짧은 축제 뒤에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의 연설을 기억한다.

"여기는 미국입니다. 전세계 곳곳에서 삶의 가혹한 운명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던 수많은 활동적인 모험가들이 머나먼 여행길을 뚫고 온갖 고초를 겪어서라도 오고 싶어 했던 그런 나라입니다." <메사추세츠 대학교 졸업식 연설, 2006년 6월 2일>

"이 나라는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입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의 규모 때문이 아니라 모든 아이가 자기가 꿈꾸는 이상을 실제로 이루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밋 더 프레스, 2004년 7월 25일>

"미국 상원은 희망도 없고 미래에 대한 꿈도 없이 거리 한 구석에서 서성이는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지금 잃어가고 있는 젊은 세대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긴급한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올 싱스 컨시더드, 2004년 7월 27일>

"보건의료체계를 현대화해서 모든 가정이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미국의 되찾자 운동 연례회의, 2006년 6월 14일>

"군중을 향해 무차별로 총을 난사하는 사람은 처벌되어야 합니다. 그런 자의 마음 속에도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담대한 희망, 2007, 215면>

"워싱턴에 필요한 것은 여러분의 성숙한 감시입니다." <기금조성 편지, 2006년 10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최선을 다해 진심을 담아 일하는 것뿐입니다." <모닝 에디션, 2006년 7월 14일>

오바마의 꿈은 우리의 꿈이다.
오바마의 성공은 우리의 성공이다(존 메케인 미국 상원의원).
세계인에게 존경을 받고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기원한다.

글쓴이 : 하태영(동아대학교 법과대학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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