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대 법학부 하태영 교수는 형법학자다. 2008년 문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형사철학과 형사정책>(법문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교수의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학자이다. 사회가 대학교수를 지성인으로 대접해주는만큼 사회적 현안과 쟁점에 대해 '공공적 발언'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그를 만났다. 최근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쟁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나는 그에게 블로그를 권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블로그와 홈페이지의 차이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 '지역에서 본 세상' 블로그를 통해 형법 학자가 본 정치·경제·사법·입법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로 했다.
카테고리는 곧 발간될 그의 책 제목을 따서 '하마의 下品(가제)'으로 했다. 이 글은 그의 네 번째 기고다. (김주완 주)
제1심 판결에 대해 법조계·의료계·종교계가 서로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존엄사' 법률과 존엄사심의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혼돈을 하고 있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우리나라의 특수상황을 '뒤죽박죽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존엄사' 법률과 존엄사심의위원회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다.
법원, 식물인간 '존엄사' 첫 인정
우리나라에서 생명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존엄사' 논쟁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한다. 2009년 법조계·의료계·종교계가 함께 고민하게 될 우리 사회의 새로운 화두가 될 것이다.
2008년 11월 28일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는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존엄사'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뇌사상태인 김모(76·여)씨가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낸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제거 소송(2008가합6977)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김씨는 2008년 2월 폐암 발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세브란스병원에서 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인한 저산소성 뇌상을 입고 식물인간이 되었다. 2008년 6월 김씨와 그 자녀들(특별대리인)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제1심 판결에 대해 세브란스병원은 2008년 12월 12일 비약상고를 결정했다. 비약적 상고란 제1심 판결에 대해 제2심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에 상고하는 제도를 말한다. 형사소송법상 법령 해석에 중요한 사항을 포함한다고 인정되는 사건에 할 수 있는 비약적 상고는 원고 측에서 동의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김씨와 가족 등이 이를 거부해 제2심을 거치게 되었다. 항소심에서 어떤 결정이 나건 결국 대법원이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환자가 그때까지 생존해야 한다.
이번 판결은 1997년 보라매병원 사례(대법원 2004. 6. 24. 선고 2002도 995 판결)과 무엇이 다르며, 2008년 세브란스병원 사례에서 제1심 법원은 어떠한 법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문제점은 무엇인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분석은 사회적 합의와 함께 '존엄사' 합법화를 위한 입법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논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라매병원 사례과 세브란스병원 사례의 차이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보라매병원 사례는 '의학적 충고에 반하는 자의퇴원'으로 '환자가족의 퇴원요구에 굴복한 의사의 치료중단' 사건이다. 7년의 논쟁 끝에 결국 법원은 퇴원을 요구한 환자의 부인과 치료를 중단한 담당 의사들에게 형사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세브란스병원 사례는 민사사건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제거'를 환자의 추정적 승낙에 따라 인정하였다.
둘째, 보라매병원 사례는 치료중단의 대상이 '소생가능성이 있는 환자'였지만, 세브란스병원 사례는 치료중단의 대상이 '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이다.
셋째, 보라매병원 사례는 치료중단을 요구한 주체가 환자가족 중 부인이고, 의사는 환자가족의 요구에 따라 치료를 중단하였다. 그러나 세브란스병원 사례는 치료중단의 주체가 환자가족이지만, 법원은 이러한 요구를 인정하지 않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추정하였다. 즉 환자의 생존 당시의 의사를 판단 근거로 삼았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존엄사'에 대해 두 가지 요건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환자의 생존가능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었다. 재판부는 생존가능성 여부에 대한 판단과 관련하여 2008년 10월 8일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의 신체감정을 했다. 이것은 어느 정도 객관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다. 만약 환자가 의식이 있다면, 환자의 명시적인 자기결정권(치료중단의사)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환자가 의식불명이라면, 법적인 문제는 복잡하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때 환자의 진의에 대한 추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객관적 추정'을 어떻게 확정하느냐 하는 점이다. 이것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된다.
환자의 추정적 승낙에 대한 판단 조건
2008년 세브란스병원 사례로 돌아가자. 제1심 법원은 이러한 '객관적 추정'을 도출하기 위하여 어떠한 논거를 제시하고 있는가. 이것은 자세히 분석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제1심 판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법원의 존엄사 첫 판결의 의미, 판결에 비판 그리고 향후 입법 전망도 여기서 나온다.
제1심 법원은 환자의 추정적 승낙에 대한 판단 조건을 아홉 가지로 제시했다. ① 환자가 사전에 한 의사표시, ② 성격, ③ 가치관, ④ 종교관, ⑤ 가족과의 친밀도, ⑥ 생활태도, ⑦ 나이, ⑧ 기대생존기간, ⑨ 환자의 상태 등이다.
재판부는 그 동안 논란이 된 환자의 치료중단의사 여부에 대해서는 "환자의 치료중단의사는 질병과 치료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았음을 전제로 명시적으로 표시돼야 유효하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환자가 질병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처한 경우 환자가 현재 자신의 상태 및 치료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았더라면 표시했을 진정한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경우 인공호흡기 부착이 상태회복 및 개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증거와 증언을 종합하면 원고가 평소 생명연장치료를 받지 않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판결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씨 자녀들의 청구에 대해서는 "가족들이 환자의 치료로 인해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입법이 없는 한 타인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치료중단을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법률신문, 법원, 식물인간 '존엄사' 첫 인정, 치료가능성 및 환자의 의사 추정될 때 의사의 소극적 존엄사 인정해야 , 2008년 11월 28일자.)
법원의 판결의 문제점과 남겨진 과제
제1심 판결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죽음을 앞둔 당사자의 '선택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문제점과 과제를 안고 있다.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존엄사'와 관련한 국회의 입법이 있어야 한다. 죽을 권리에 대한 합법화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고통 경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에게 존엄사 선택을 부추킬 수 있고, 또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건의료 서비스를 하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통증 완화 치료를 보장 받기 전에는 조력 자살과 존엄사를 합법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세계보건기구, WHO 권유).
둘째, '존엄사' 법률에 근거하여 존엄사심의의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이 법률에 환자의 생존가능성과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명문화되어야 한다. 또한 환자의 추정적 승낙에 관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 법원은 존엄사심의위원회가 이러한 기준들을 정확하게 판단했는지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사법기관이 되어야 한다.
셋째, 제1심 판결에 대해 법조계·의료계·종교계가 서로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존엄사' 법률과 존엄사심의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브란스병원은 제1심 판결에도 불구하고 "의료인은 물론 법률가 등이 함께 회의를 열어 병원 견해를 정하게 될 것이다"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모두가 혼돈을 하고 있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우리나라의 특수상황을 '뒤죽박죽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존엄사' 법률과 존엄사심의위원회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다.
넷째,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 제거에 대한 결정을 판사 3인이 하는 것은 무리하고 본다. 또한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의 합의부에서 몇 분의 대법관이 판단을 하는 것도 무리라고 본다.
사람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정은 법률의 근거 없이는 불가능하다. 법원은 입법기관이 아니고, 법률을 해석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번 사례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제 '존엄사' 관련 입법은 국회로 넘어가야 한다. 국회가 '존엄사' 법률을 제정하든, '호스피스·완화의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든 법률로서 생명 유지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명문화해야 한다. 여기서 그 법적 요건을 정립해야 한다. 왜냐하면 매 사건마다 법원으로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제1심 재판부가 제시한 추정적 승낙에 대한 근거에는 의문이 많다. 그 중 성격, 생활태도, 기대생존기간 등이 과연 객관적 조건이 될 수 있는가? 생각건대 법원은 ① 존엄사심의위원회의 판정 결과, ② 생존시의 가치관, ③ 사생관, ④ 신앙, ⑤ 환자의 진의를 추정할 말한 환자가족들의 의견, ⑥ 이를 신뢰할 만한 근거, ⑦ 마지막으로 환자 본인의 이익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다섯 단계를 거쳐야 '존엄사'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많이 생략하고, 너무도 빨리 거꾸로 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나라의 '존엄사' 논쟁은 지금부터 진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서구에서 존엄사 또는 안락사 논쟁은 수천 년이 걸렸다. "집에서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해 달라". 이러한 자기결정권의 문제는 어려우면서도 너무도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신중하게 법안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막 '근대'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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