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빙 필자의 글/하태영, 하마의 下品

형법 교수가 본 사이버모욕죄 논란

기록하는 사람 2009. 1. 2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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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 법학부 하태영 교수는 형법학자다. 2008년 문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형사철학과 형사정책>(법문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교수의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학자이다. 사회가 대학교수를 지성인으로 대접해주는만큼 사회적 현안과 쟁점에 대해 '공공적 발언'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그를 만났다. 최근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쟁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나는 그에게 블로그를 권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블로그와 홈페이지의 차이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 '지역에서 본 세상' 블로그를 통해 형법 학자가 본 정치·경제·사법·입법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로 했다.

카테고리는 곧 발간될 그의 책 제목을 따서 '하마의 下品(가제)'으로 했다. 이 글은 그의 첫번째 기고다.

하태영 교수.

요약
:
사이버 모욕죄의 신설은 국민들에게 강력한 처벌 의지를 강하게 전달하기 위한 단기적 형사정책에 불과하다. 그러나 위하의 효과는 짧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형벌과잉의 시대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특별법 제정추진은 그 뜻을 접어야 한다. 선진 한국을 건설하려면, 형사정책도 선진형이 되어야 한다. 소극적 일반예방은 더 이상 안 된다. 아무리 유혹이 오더라도 참아야 한다.

사이버 모욕범죄는 현행 형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하고, 법원도 사이버 모욕행위에 대해 형법 제311조를 적용하여 처벌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도 이미 형성되어 있다(인터넷 게시판에 타인을 비방하는 글을 게시한 행위가 모욕죄에 해당한다).

형벌과잉의 시대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2008년 12월. 18대 국회는 여야 정면대결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번 국회파행에는 사이버 모욕죄 도입 논란이 한 몫을 했다. 도대체 이 법률이 무엇이라고 이렇게 심하게 충돌했을까? 우리는 여기서 냉정하게 이 법률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진 : 오마이뉴스 임순혜


2008년 8월에서 10월까지 우리 사회는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중 한 연예인이 인터넷 악플에 고통을 받고 자살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여당은 사이버 모욕죄와 인터넷 실명제 강화를 위한 법률을 추진했다. 그동안 인터넷 악플로 인한 연예인 자살 사건이 보도될 때 마다 사이버 모욕죄 신설에 대한 반짝 여론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자살사건의 경우 사회적인 충격과 파장이 너무 컸다. 정부와 여당은 법률 제정을 강하게 밀어 붙였고, 야당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반대하는 전문가들의 서명운동도 있었다(법학·언론학 등 전문가 229명, 2008년 11월 11일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 찬반 여론은 비등했다.

사이버 모욕죄란 정보통신망, 특히 인터넷상에서 타인을 모욕하는 범죄행위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부터 정보기술(IT)이 급성장했고, 1996년도부터 초고속 인터넷망이 가정에 보급되었다. 현재 인터넷 보급률 1위의 정보통신국가로 성장했다. 반면 새로운 인터넷 문화에 대한 부작용도 나타났다. 너무 심각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현행 형법 제311조 모욕죄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고소가 있어야 처벌되는 친고죄이다.

이 법률은 제정될 당시에 오프라인 대상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법률이었다. 그 당시 우리 입법부는 국경의 개념이 없고, 시간적으로 제한이 없는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을 생각하지 못했고, 이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산되는 사이버 모욕행위의 처벌을 고려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인터넷 세상은 날마다 변해갔다.

2008년 12월. 여당은 무리를 해서라도 사이버 모욕죄를 도입하려고 시도했다. 그 이유는 친고죄 삭제와 가중처벌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 국가 공권력을 적극적으로 개입하려고 했다.

참고로 형법 제307조는 명예훼손죄를 규정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제70조에 소위 사이버 명예훼손죄를 규정하고 있다.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특별형법은 형법 제307조 보다 법정형이 높다. 생각건대 사이버 모욕죄도 인터넷상의 범죄에 대해 가중처벌하려는 입법의지로 보인다. 발의된 법률은 다음과 같다.

[형법 일부 개정 법률안]

인터넷 상에서 허위 사실을 유포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기존보다 무거운 형량인 9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다른 사람을 모욕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였다(나경원 의원 대표발의, 발의년월일 2008. 11. 3).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

인터넷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였다(장윤석 의원 대표발의, 발의연월일 2008. 10. 30).

두 법안은 모두 비친고죄로 발의되었다.

그러나 사이버 모욕죄는 찬반으로 극명하게 대립되었다. 찬성론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최근 사이버 모욕범죄는 급증하고 있다. 사이버 명예훼손 사건은 2004년 837건에서 2007년 2천 106건으로 2.6배 이상 증가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수된 욕설정보 심의사건 수도 2006년 2천 74건에서 2007에는 3만 5천 288건으로 17배 이상 늘어났다. 사이버 모욕범죄로 허위사실 유포나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률이다(한나라당 장윤석 국회의원).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반론한다.

현행 형법으로도 처벌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형법을 개정하여 처벌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인터넷 실명제는 바로 인터넷 죽이기에 악용될 수 있다. 특히 사이버 모욕죄 관련 법률안이 정권의 여론 통제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명예훼손과 달리 모욕죄의 경우 판단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역사적으로 위정자를 위한 수단으로 제정되었으며 전세계적으로도 사라지는 추세이다.

미네르바의 구속도 결국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이다. /사진 : 오마이뉴스 유성호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입법과정과 형벌의 목적이다. 찬성론이든 반대론이든 상관없이 현행 형법상 사이버 모욕행위는 처벌된다. 또한 찬성론자이든 반대론자이든 사이버 모욕행위로 인한 선의의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특별법을 제정하여 처벌하든지, 현행 형법의 법정형을 강화하든지 결국 양자는 모두 국민들로 하여금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가는 범죄를 예방하고자 한다. 그러나 일반예방론의 입장은 형사정책의 유용한 수단이 아니다. 이미 독일 등 발전한 외국에서는 극복된 이론이다.

결국 사이버 모욕죄의 신설 논란도 국민들에게 강력한 처벌 의지를 강하게 전달하기 위한 단기적 형사정책에 불과하다. 그러나 위하의 효과는 짧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형벌과잉의 시대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특별법 제정추진은 그 뜻을 접어야 한다. 
 
이러한 입법정책은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에 반한다. "어떠한 정치가도 위하적 형벌권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선진 한국을 건설하려면, 형사정책도 선진형이 되어야 한다. 소극적 일반예방은 더 이상 안 된다. 아무리 유혹이 오더라도 참아야 한다. 사이버 모욕범죄는 현행 형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하고, 법원도 사이버 모욕행위에 대해 형법 제311조를 적용하여 처벌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도 이미 형성되어 있다(대법원 2004. 6. 25. 선고 2003도4934 판결 인터넷 게시판에 타인을 비방하는 글을 게시한 행위가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한 사례).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에 반하는 입법정책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오히려 부드럽지만, 차분하고 지속적인 형사정책을 펼쳐야 한다. 

첫째, 인터넷 윤리교육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자율적으로 인터넷 공간에서 범죄행위를 자제하도록 교육을 펼쳐야 한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인권침해는 당연히 처벌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교육을 통해 배우게 해야 한다. 이것이 특별법 보다 강하다.

둘째, 현재 정보통신부와 경찰청은 일선 초?중?고등학교 재학생들을 상대로 인터넷 윤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부정기적이고, 교육시수도 부족하다. 윤리과목과 같이 인터넷 윤리과목을 신설해야 한다. 이 과목을 정규과목으로 편성하여 인터넷을 처음 접하는 초등학생부터 철저하게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존재할 수가 없다. 호주의 경우 초등학생들의 인터넷 교육시간에는 반드시 부모가 일정시간 같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 만큼 인터넷 공간은 위험하고, 조심해서 다루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인터넷 공간을 너무나도 방치해 왔다.

셋째, 인터넷 포털과 같은 정보통신서비스업체들의 자구 정화노력도 강화되어야 한다. 언론 및 시민단체들의 캠페인 등 지속적인 홍보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매년 5월과 11월에 사이버 공간의 대청소의 달 설정하고, 유해 사이트와 인권을 침해하는 글들을 정리했으면 한다. 사이버 공간에 인간의 향기를 불어 넣는 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법학자와 언론학자, 법조인들의 '사이버 모욕죄 입법 시도 반대 전문가 선언'. 사진 : 오마이뉴스 유성호


필자는 이러한 노력이 특별법 도입보다 유용한 형사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법의 최종목표는 법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근대 법치국가의 형법은 다 낳은 자유와 안전, 더 높은 합리성과 인간존중성을 지향해 왔다. 그 목표는 아직 도달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헌법정신이 반영된 형법의 원칙과 형벌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저자는 이것이 형사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은 다시 한번 사이버 모욕죄 신설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 시대에 필요한 형사입법과 형사정책이 과연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18대 국회의 선진화를 기대한다.

글쓴이 : 하태영(동아대 법과대학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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