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헬스로그 운영자 양깡 인터뷰 환경주의자들껜 죄송하지만 밍크고래를 시켰다. 술집에서 만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음주인터뷰'가 됐다. 오른쪽은 커서님. 이렇게 웃는 모습이 마치 탤런트 권상우 같다. 권상우 팬들이 반발하려나? 고래고기에 이어 횟집으로 옮겼다. 횟값이 당연히 더 나왔다.
블로거 양깡이 운영자로 있는 '코리안헬스로그'(http://healthlog.kr)가 블로그계의 퓰리처상이라 일컫는 2008 다음(Daum) 블로거기자상 대상을 받았다.
그는 서울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경남 창녕군 부곡면 보건지소에서 소장으로 근무 중인 공중보건의다. 본명은 양광모, 나이는 32세. 사는 곳은 부산 연제구다.
그는 경남에서 일하고, 부산에서 살면서도 전국, 아니 전 세계를 상대로 발언한다. 이처럼 인터넷 시대에는 굳이 서울에 살지 않아도 얼마든지 전국을 무대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양깡의 수상이 증명해 주었다.
전국의 블로그 수천만 개, 미디어다음에서 활동하는 뉴스블로거 10만 3000명, 그 중 베스트 뉴스블로거 277명, 최종 후보로 오른 49명의 치열한 경합 끝에 창녕 부곡면 보건지소장이 당당히 대상을 거머쥔 것이다.
※양깡의 수상소감 : 더 잘하라는 의미의 상으로 알겠습니다
이 대상은 'MBC 연기대상'처럼 두 명에게 공동수상하는 것도 아니고, 어청수 경찰청장이 받은 '존경받는 CEO대상'처럼 26명에게 무더기로 주는 것도 아니다. 딱 한 명에게만 주는 명실공히 대상(大賞)이다. 상금은 300만 원.
그는 이 상금을 어떻게 쓸까? 내 용심(남을 시기하는 심술궂은 마음)이 양깡 혼자 그걸 다 쓰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 게다가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http://2kim.idomin.com)도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보기좋게 미끄러졌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느긋하게 주말을 즐기고 있던 그를 다짜고짜 부산 서면 영광도서 앞으로 불러냈다. 주변을 둘러보니 고래고기를 파는 식당이 많았다. 그 중 한 집에 들어가 밍크고래 한 접시(3만 원)와 소주를 시킨 후 다짜고짜 물었다.
-상금 그거 어디에 쓸거요?
△우리 블로그 운영원칙이 있어요. 학생 한 명에게 운영잡무를 시키고 있는데, 월 20만 원을 지급하고 있죠. 그런데 블로그 수입으론 그걸 못맞춰 주로 내 사비로 나간 게 많아요. 그래서 300만 원 중 100만 원쯤은 내가 먹고, 100만 원은 이주노동자 돕기 기금으로, 50만 원은 조손가정 돕기 기금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50만 원은 운영비로 세이브해놓아야죠.
-(이 무렵 역시 부산에서 활약하고 있는 블로거 커서(http://geodaran.com)도 합석했다. 퍼뜩 생각해보니 밍크고래 한 접시는 아무래도 약했다.) 그럼 여기 술값은 내가 낼테니, 양깡은 2차를 내시오.
△그러죠.
-양깡이란 닉네임은 무슨 뜻이요? 깡패 출신이란 거요?
△그냥 내 이름(양광모)에서 나온 별명이예요. 원래는 양갱이었는데, 고등학교 때 반장을 하면서 양깡으로 바뀌었어요.
-반장도 하셨다고요?
△다들 한 번씩은 하잖아요. (헉! 한 번도 못해본 나는 그럼…?)
-(기죽은 목소리로) 고등학교는 어디 나오셨는데요?
△서울 동부 이촌동에 있는 중경고등학교….
-그럼 원래 서울 출신이예요?
△아뇨. 고향은 부산인데, 대구로 옮겼다가 초등학교는 평택에서 다녔어요. 중학교 때부터 서울서 학교를 다녔죠. 대학은 연세대 원주의과대를 나왔고, 대학원은 신촌세브란스에서….
-왜 그렇게 많이 옮겨다녔나요?
△아버지 사업 때문에요.
-창녕 보건지소에는 그럼 언제부터?
△전문의 시험 마치고 와서 올해 4월이면 만료되네요. 처가가 창녕이예요.
-그거 군복무 대신 하는 거죠?
△네.
-보건지소장 월급이 얼마나 되죠? 밝혀도 되나?
△보통 공중보건의 본봉이 100만 원 좀 넘는 수준이예요. 그나마 저는 전문의 자격을 따서 대위 호봉인데, 200만 원 좀 못받아요.
-그럼 부인의 수입이 더 많겠네요? (그의 부인은 약사다.)
△네. 그래서 "당신 언제부터 가장 노릇 할래"라는 핀잔을 자주 들어요. 그나마 돈도 안 되는 블로그 한다고 맨날 욕먹고…. (이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커서도 "맞아요. 맞아"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도 아내에게 많이 시달리는 듯 했다. 아마도 블로그에 미친 사람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싶다.)
-공중보건의 마치고 의사로 취업하면 돈 많이 벌거잖아요.
△그게 고민인데, 일단 진료보다 어학이 좀 약해서 공부를 해보려고 해요.
-영어 말인가요? 의사 하는데 영어가 그렇게 필요한가요?
△필요하죠. 학회 활동이나 해외 정보 수집도 언어소통이 안되니 답답한 게 많아요. 우선 해외로 어학연수를 다녀올까 생각 중인데….
-그러면 돈은 언제 벌죠?
△어쨌든 진료실에서 환자 보는 건 당분간 안 할 거예요. 그것보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 개선과 의료소비자 권리 향상에 관심이 많아요. 웹서비스로 그게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헬스케어로 수익도 얻을 수 있다면 좋고….
-헬스케어가 뭐죠?
△의료산업 전반을 지칭하는 말인데, 그 중에서도 웹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하는 거죠. 의료정보화를 통해 의료 공급자인 의사와 수요자인 환자를 웹으로 연결하는데 관심이 많아요. 진료실을 지키는 것만이 의사의 역할은 아니라는 거죠. 영어 공부도 그런 차원에서 하려는 거예요.
-그건 돈이 되나요?
△그게 문제죠. 수익을 생각한다면 어떤 조직에 소속돼야 하는데, 직장에 소속되면 그런 기획이 어렵고, 수익이 없기 때문에 집에선 걱정이 많죠.
-블로그를 통해서는 안 되나요?
△블로그가 아주 유용하고 대단한 도구이긴 하지만, 블로그를 못하는 사람들은 토론에 참여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어요. 우리나라에 적합한 의료서비스가 뭔지 그런 데 대한 토론이 너무 부족해요. 예를 들어 아이가 열이 올라 응급실에 갔는데, 38도가 넘어가면 보험적용이 되지만, 38도 이하는 응급실 이용료를 내야 하죠. 이것만 해도 엄청난 토론거리가 되는데, 정부나 의사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지만 실제론 잘 안되죠. 하지만 웹을 통해서는 가능할 것 같아요. 공론장으로서 숙의민주주의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양깡 말고도 그런 일에 관심있는 의사들이 좀 있나요?
△사실 의사들은 세상과 벽을 치고 환자만 잘 보면 되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분도 있지만 의료정보화에 뜻을 같이하는 의사들도 많아요. 이미 환자들도 병원에 가기 전 인터넷을 찾아본 뒤 의사를 찾고, 의사를 만난 후 다시 인터넷을 찾는 게 일반화해 있거든요. 그래서 의료정보화가 더 시급한 거죠.
-블로그 헬스로그는 언제, 왜 만들었나요?
△2007년 3월에 만들었는데, 보건지소에서 할머니·할아버지들을 상대로 혈압 교육이라든가 양치질 교육 등 의료교육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그거 하루종일 해봐야 100명을 넘기지 못해요. 그래서 어차히 하는 교육 내용을 인터넷으로 올려보자. 그러면 인터넷에 올려진 정보는 무한반복이 가능하거든요. 수십만 명도 읽을 수 있는 거죠. 그렇게 해서 시작했는데 그 가치가 엄청나게 컸어요. 사실 인터넷을 이용한 공중보건사업은 미국에서 아주 발달해있는 헬스케어예요. 우리나라도 보건복지부에서 금연캠페인을 하기 전에 헬스로그에서 먼저 했거든요. 그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도서이벤트도 하고 있고, 이주노동자돕기도 하고 있어요. 물론 금연캠페인도 계속 하고 있고….
※양깡이 정리한 2008년 닥블과 헬스로그 통계
-헬스로그 필진이 몇 명이나 되죠?
△의사 21명, 약사 1명, 치과의사 1명, 이렇게 스물 세명이예요.
-저도 '운동권이 블로그를 두려워하는 이유'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의사들은 블로그 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나요?
△두려움도 있죠. 자칫 상업적인 목적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의사에 대한 일반인의 시선이 좋지 않은데, 괜히 선의로 나섰다가 욕만 먹는 게 아닌가 하는….
-의사라면 이미 사회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데, 괜히 글을 썼다가 실력이나 밑천이 드러나는데 대한 두려움도 있겠죠?
△그럴수도 있을 거예요. 오바마도 대학에서 강의할 때 논문을 남기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괜히 그런 걸 남겼다가 나중에 흠잡힐까 봐서….(웃음)
-2008년에는 기자블로그가 많이 생겼다면, 2009년에는 전문가 블로그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던데, 실제 그럴 것 같나요?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의사들은 많이 나설 것 같아요. 얼마전 헬스로그에서 드라마 종합병원2 자문의사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 분이 인터뷰를 당하고 나서 할말을 다하지 못했다며 블로그 필진으로 참여해오셨어요. 엄청 인기가 많아요.
-블로그만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전업블로거가 한국에선 어려울까요?
△그게 참, 미국에선 재미교포 신장내과 전문의가 의사를 포기하고 전업블로그로 나섰잖아요. 맥루머라는 블로그인데, 그 블로그 만으로 의사만큼 번다고 하니까 참 부러워요. 저도 헬스로그에 올인하고 싶지만 수익이 안 되니….
-그래도 인터넷 광고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잖아요.
△그래도 우리나라는 아직 인터넷광고에 대한 신뢰성이 낮잖아요. 결국 광고주의 선택에 달렸죠. 광고주들이 인터넷광고의 효과를 인정하게 된다면 종이신문도 급속도로 쇠락할 거예요. 미국에선 이미 종이신문을 폐지하고 인터넷으로만 뉴스를 공급하는 신문도 나오고 있잖아요. 허밍턴포스트 같은 세계최대의 블로그는 아예 기자까지 고용해서 운영하고 있죠.
두 사람의 얼굴이 불콰하다. 양깡은 "붉은 얼굴 나오면 안되는데?"라며 걱정했다. 나는 "신문에는 흑백으로 나온다"며 눙쳤다. 그는 속아 넘어 갔다.
이쯤에서 나는 취기가 올랐고, 받아 적는 걸 중단했다. 1차 술값을 내가 내고, 양깡과 커서, 그리고 나, 그렇게 셋이서 2차로 횟집에 갔다. 술값은 물론 1차보다 헐씬 많이 나왔다. 양깡의 상금을 빼앗아 먹어서인지 회맛이 기가 막혔다.
그는 어쨌든 80여 명의 의사들을 블로그로 끌어들인 이 분야의 선구적인 사람이다. 그는 세브란스에서 비뇨기과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인터넷 기반의 전립선환자 임상연구 시스템 구축사례를 논문으로 써서 비뇨기과 학회지에 실었던 적이 있다. 그 때가 2003년이었다.
그보다 앞서 양깡은 96~97년 유니텔에서 홈페이지 제작 동호회 활동을 했고, 이후 해외의 인터넷 사이트들을 보면서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한국최초의 의료전문 메타블로그 닥블과 팀블로그 헬스로그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헬스로그의 지금까지 누적 방문자는 800만 명에 육박한다.
마지막으로 술자리를 파하기 전 정치적 성향이 뭐냐고 물어봤다.
"딱 중간인 것 같아요. 진보나 보수냐를 떠나서 그냥 합리적 토론이 가능하고, 이성적인 대화가 중요시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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