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보다 더 불꽃같은 혁명가의 삶을 살다 간 하준수(1921~1955)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게바라(1928~1967)보다 더 일찍 태어나, 더 일찍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는 미 군정 시절 유격대의 작전명 남도부(南道富)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함양군의 천석꾼 부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진주중학교(현 진주고) 재학시절 일본인 교사를 폭행해 퇴학당한 뒤 일본으로 유학해 중앙대 법대에 진학했습니다.

졸업반 시절 일제의 학병 징집을 거부하고 고향으로 숨어든 그는 지리산에서 동지 70여 명을 규합, 보광당이라는 항일 무장게릴라 부대를 창설합니다. 이른바 우리나라 최초의 파르티잔이었습니다.


체 게바라(왼쪽)와 하준수. 게바라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하준수를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그는 해방 후 몽양 여운형과 함께 자주적 민족국가 수립을 위한 군대 창설을 위해 노력했으나 미 군정에 의해 좌절당하자 다시 지리산에 들어가 미 군정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지휘합니다. 이 때의 작전명이 남도부였고, 그 때부터 그는 하준수라는 본명보다 남도부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 중장으로 참전했으나 1953년 휴전 후에도 남한에 남아 태백산과 일월산 일대에서 유격전을 벌이다 1954년 부하의 밀고로 대구에서 체포돼 1955년 김창룡 특무대장의 심문을 받고 총살당했습니다. 그의 나이 서른 네 살이었습니다.

부잣집 아들로 안락한 삶을 거부한 채 해방 이전엔 무장투쟁으로 일제에 맞섰고, 해방 후엔 미 군정에 게릴라전으로 맞섰으며, 단독정부 수립 후엔 이승만 정권에 인민군 중장과 파르티잔 지휘관으로 맞서다 간 그의 짧은 삶은 어쩌면 체 게바라보다 훨씬 치열했습니다.

하준수의 생가를 보존하자고 주장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우리나라가 이념 대립만 없는 사회라면 게바라보다 더 유명한 혁명가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게바라를 아는 한국의 젊은 사람들 중에도 하준수를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의 고향은 경남 함양군 병곡면 도천마을입니다. 지금도 그의 생가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바뀌었습니다.

함양군 병곡면 도천마을의 하준수 생가.


도천마을 역시 한국전쟁 때 좌-우익 양쪽으로부터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한 곳입니다. 하지만, 좌-우 어느쪽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든 관계없이 그의 고향마을에서 하준수를 나쁘게 말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부잣집 아들 출신 좌익이긴 했지만, 해방 후에는 곳간을 열어 가난한 이들에게 쌀을 나눠줬을뿐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해꼬지를 하지 않은 따뜻하고 높은 인품의 소유자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른 키 두 배가 넘는 담을 훌쩍 뛰어넘을 뿐 아니라 축지법을 쓰는 전설적인 무술의 고수로 기억하는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향사람들에게도 신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작은 어머니 집 쪽에서 본 하준수 생가.


그의 생가는 이미 다른 사람의 소유로 넘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폐가로 방치되고 있죠.


이미 지붕의 한쪽 귀퉁이는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몇 년 지나지 않아 저절로 내려앉을 것 같습니다.

하준수의 집은 한 채가 아니라 대여섯~일곱 여덟 채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다른 분이 살고 있는 인근의 집도 원래는 하준수 작은어머니의 집이었다고 합니다.

이미 왼쪽 지붕은 허물어져가고 있다.

이들 집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건축물로 문화재적 가치도 높습니다. 하지만 전설적인 좌익 게릴라 총사령관의 집이어서인지 행정관청에서도 전혀 보존에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좌와 우를 떠나 한국 현대사에서 전설적 인물이었던 그의 집을 보존하자고 주장하면 아마도 비난하는 사람이 적지 않겠지요? 하지만 허물어져 가는 그의 집을 보면, 점점 묻혀져 가는 현대사의 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하준수 집안 소유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집. 역시 폐가로 남아 있다.

하준수의 작은 어머니가 살았던 집.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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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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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eodaran.com 커서 2008.11.23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번 가보고 싶은데요. 저렇게 치열하게 살다가면서 알려지지 않은 분이 한둘 아니겠죠.

  2. 2008.11.23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궁금 2008.11.23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으면서 궁금한점이 있어 질문드리는데요. 주변의 평판이나 본인의 인격부분을 제외하고 단순 업적부분에 있어서 하준수의 어떤 부분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가 궁금합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기록하는 사람 2008.11.23 18: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그게 궁금하실 수도 있겠군요. 답변 드리겠습니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고 하지만, 저는 당시의 우리 역사에서 남한의 이승만이나, 북한의 김일성에 비해 하준수가 훨씬 순수한 열정을 가진 혁명가였다고 봅니다. 참고로 저는 김일성식 북한사회주의를 제대로 된 사회주의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미 군정과 이승만에 의해 의도하지 않은 사회주의 혁명가가 되었는데, 만일 북한 정권도 김일성 아닌 하준수 같은 혁명가가 잡았다면 훨씬 사회주의 이상에 충실한 체제가 되었으리라 보는 겁니다.

      물론 이건 가정일뿐입니다. 그는 결국 성공하지 못한 혁명가로 불꽃처럼 살다가 짧은 삶을 마치고 말았죠. 그게 안타깝다는 겁니다.

  4. 배준현 2008.11.23 2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 민주국가이며 분단국인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빨치산일뿐이군요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다른이름으로 부를지라도 현재 상황에선 불편한 이름입죠

  5. 2008.11.24 0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빨치산이든 어쨌든 우리의 역사인데 저리 방치되어 있으니 안타깝네요.

  6. Favicon of http://tkdrbskdlxm7@naver.com 로리마왕 2008.11.24 05: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만원아찌가 보면 빨치산 생가 보존한다고 난리 칠걸요 ... ㄷㄷㄷ
    그 지씨양반좀 어케 해야할텐데 ...
    에휴 시대가 어느시댄데 아직도 냉전 트렌드를 가지고 살아가니 원 ...
    이제 미래를 보고 큰틀에서의 민족으로서 발전해야할 시기인데 ...

  7. 줌마렐라 2008.11.25 0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이렇게 또 한 명의 혁명가를 알게 되네요

    좋은시절 오면 이런 분들도,다큐멘터리나,특집의 이름으로

    방송을 탈 수도 있겠지요

    물론 그렇치 않다고 해도 역사는 기억하겠지만요

  8. 정지용 2008.11.29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 부모, 조상이 인민군 중장인 한준수가 지휘하는 인민군 부대의 총에 맞아 죽었다면 당신은 과연 한준수의 생가를 보존하자고 했을까? 한 시대를 풍미한 혁명가라고 말하기 이전에, 같은 민족을 향해 총뿌리를 겨눴던 인민군 중장이다. 범죄자를 영웅으로 추대하는건, 북한이 맥아더를 민족의 구원자라고 평하는것과 같다. 이념을 떠나 개념부터 탑재해라.

  9. 추창호 2008.11.29 1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릴라.
    게릴리임무를 수행하려면 내가침투해서 은거할 동네에서는 선심을 베풀어 인심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동네사람들이 신고도 못하고 의심을 하지않게 하기위함이죠.만약에 잡혀도 선처를 요구할것이고..

    그래서 전시엔 한동네 사람들이 이게릴라 한놈땜시 동네 전체가 몰살 당하기도 하지요.
    왜 신고도 않고 도와줘다는이유도 있지만 또 이동네엔 게릴라가 있긴있는데 누군지모를때 그동네를 몰살시킬수 밖에 없지요.옛말에 미꾸라지 한마리가 물을 흐린다고 하듯.전시때면 군대 연대 책임을 물듯 단체기압이죠.

    지금 6.25때 한동네가 몰살되어서 다시 군.경찰이 선한사람죽여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있는동네 입니다.
    어쩔수 없지요. 전시데~~그한두놈을 안죽이면 밤마다 우리 가 죽는데. 그동네 잠적 하는걸 봐는데도 동네에서는 숨겨주고 누구라고 말을 하지 않는다면~~~~~~~~

  10. Favicon of http://apsan.tistory.com 앞산꼭지 2009.11.22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팔공산 단풍에서 시작해서 한 혁명가의 초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하준수라, 정말 처음 들어보는 존함이네요.
    고향마을 사람들의 증언이 그이 됨됨이를 느끼게 합니다.
    그런 분이 팔공산에서 잡혀서 대구에서 돌아가셨다니,
    대구사람의 한사람으로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네요.

    앞으로 팔공산엘 가면 그를 위해서 깊은 묵념을 해야 할 것 같네요.
    한 혁명가의 초상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11. 파르티잔 2010.01.18 1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저의 김일성을 사회주의의 제대로 된 실현자로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김정일 때 보다 김일성 때가 좀 더 나은 세상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일제부역자들이 그대로 미제 부역자로 바뀌어 무고한 사람들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좌파들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일제앞잡이들에 비한다면 백두산과 백두산의 조그만 돌맹이 하나로 비유할 수 없겠죠
    이들을 역사적으로 재평가하고 또 일제부역에 충실해 천년만년 부와 영광을 누리고 살다 간 혹은 생존한 천인공노할 죄인들의 죄값을 반드시 물어야 할 것입니다

  12. 파르티잔 2010.01.18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
    제국주의는 반드시 내부적 요인 외부적 요인 등등으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옛날 노동하지 않고 살아가는 양반과 온갖 노동을 떠맡아 하던 머슴,노예들이 신분제가 폐지된 지금의 모습을 감히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노예와 머슴은 그 스스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때 항상 노예,머슴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벗어날 수 있음을 확신하고 신념에 찬 행동에 나설 때 비로서 머슴,노예는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구의 사회혁명이 서구의 노예,농노들에게 신부제로부터 자유로운 몸이 되게 했고 이는 역설적이게도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나라 조선의 신분제를 폐지하게 된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를 일제에게 감사해야 할 연유는 전혀 없지만 말이죠
    그리고 이러한 신분제 폐지는 거대 자본의 성장과 자본가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촉진하게 되었고 인간이 더욱 더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한다는 자본주의는 결국 거대 자본을 소유하면서 그 자본을 이용해 더욱 더 많은 투자로 더 많은 자본을 긁어 모은 자들인 상위 10%와 그렇지 못한 90%를 또다른 형태의 신분제에 올려 놓고 얽어매기에 이른 것입니다
    바로 신자유주의의 탄생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이제 우리는 이러한 극단적인 자본주의를 배격하고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이든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이든 사회주의의 오류와 자본주의의 오류 둘 다를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일앞잡이 친미앞잡이를 처벌하는 것에 앞서 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교육,의료,주거 만큼은 사회주의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친일앞잡이=친미앞잡이 세력을 그 어떤 시련과 탄압이 따르더라도 몰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점진적인 통일을 통해 한반도 평화정착과 자주국가와 외세로부터 자유로운 민족성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끝까지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13. 돌채비타 2021.03.20 2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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