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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예술에 쓰이는 돈이 아깝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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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체질상 오페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투란도트>를 약 2년 전에 본 게 마지막이었는데, 볼 때마다 너무 낭비적인 귀족오락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투적이고 느린 스토리에다 쓸데없이 비싸고 화려한 의상에 호화스런 무대장치, 거기에다 오케스트라까지 동원해 돈으로 처바른 장르라는 느낌이다. 농노들을 착취해서 번 돈으로 호사취미를 즐기던 귀족들에게나 맞는 오락이 오페라 아닐까?

오페라는 재미도 없다. 스토리도 노래도 따분하다. 게다가 30만 원까지 하는 관람료도 너무 비싸다. 어쩌다 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관객들이 정말 재미와 감동 때문에 거기 앉아 때맞춰 박수를 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비싼 돈을 내고 고급장르를 즐기고 있다는 자기만족 때문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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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교향악단에 대한 나의 편견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던 중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립교향악단이 과연 세금에 걸맞는 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는지 한 번 따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에는 오페라처럼 클래식 음악도 역시 부자들의 호사 취미가 아니냐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 할수록 내 전제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호응도 없이 자기들만의 자족적인 행사일 것으로 생각했던 정기연주회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관객이 꽉 찼고, 각종 사회복지시설이나 장애학교, 병원 주민자치센터 등에 '찾아가는 음악회'의 횟수도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창원시향의 경우 연간 70~80회 정도의 공연을 하고 있었고, 마산이나 진주시향도 각 30~40회 정도나 됐다.

게다가 오페라가 비싼 관람료를 받는 데 비해, 시향의 연주회는 모두 무료다. 지난 6일엔 창원시향의 정기연주회를 끝까지 봤다. 베토벤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교향곡 제8번과 피아노협주곡 제4번이 연주됐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곡이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마지막 앵콜곡으로 나에게도 귀에 익은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연주됐는데, 나처럼 클래식을 잘 모르는 관객에 대한 서비스로 여겨져 기분이 좋아졌다.

연주회장을 나설 때 느낌은 뭐랄까. 구체적으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내 머리와 가슴 속에 뒤섞여 있던 짜증과 분노, 답답함 등이 깨끗한 물에 씼겨져 나간 듯 맑아지는 걸 느꼈다. 이런 걸 정화 또는 카타르시스라고 하는 걸까?

그래서 취재방향도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었다. 음악하는 사람도 입이 있고, 가족이 있었다. 먹고 살아야 하고 가족도 부양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이 받고 있는 처우는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처참할 정도였다. 그래서 '화려한 교향악단, 먹고살기 힘들다'는 기사와 함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와 시립교향악단의 현실…월급봉투 열어보니'라는 해설이 나갔다.

문제는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이었다. 교향악단을 응원하는 댓글도 적지 않았지만, 냉소적인 반응도 많았던 것이다. 어떤 네티즌은 "월급을 60만 원 받는다고 치면, 과외로 600, 혹은 몇 천도 벌겁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물론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시향 단원들 중 상당수는 시에서 받는 60만~100만 원의 보수로는 살 수 없어 입시생이나 취미로 악기를 배우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레슨을 해주고 있다. 또 학교의 특기적성교육 교사로 뛰는 분도 있고, 대학에 시간강사로 나가는 분도 있다. 물론 그런 수입으로 200만~300만 원씩 버는 사람도 없진 않을 것이다. 서울이나 대도시에서는 그보다 훨씬 많은 부수입을 올리는 단원도 있을 것이다.

공공서비스 제공자에게 정당한 대우를

연주회가 시작되기 직전 성산아트홀 대극장 로비.


하지만, 모든 시향 단원들이 그렇게 벌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레슨 역시 '빈익빈 부익부'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었다. 보수가 높은, 소위 잘나가는 시향 단원들은 레슨비도 높고, 그렇지 못한 시향 단원들은 레슨비 역시 적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향 단원으로 음악을 계속 하기 위해 그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까지 비난하는 걸 보면, 음악하는 사람에 대한 우리사회의 편견이 얼마나 뿌리깊은 지 알 수 있었다.

프랑스는 1950년대 헌법을 통해 문화를 하나의 공공서비스로 공식 인정했고, 연간 2개월 이상 계약에 근거해 일한 문화예술인들에겐 나머지 기간 실업급여도 지급한다. 공연을 하는 모든 극장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적절한 수준의 입장료를 유지하는 정책이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들에게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고 우리에게 더 좋은 음악을 선사해달라고 요구할 순 없는 것일까?


목수정은 그의 저서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레디앙)에서 프랑스인들의 문화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난 끊임없이 삶 속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물었다. 프랑스 정부가 문화를 공공서비스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 위해 버스운전수, 운동선수, 학교선생, 학생, 공장노동자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기회가 되는 대로 질문을 던졌다. "정부가 그런 데까지 돈을 쓴단 말야?"라고 내게 되물어왔던 고령의 전직 공장노동자 한두 명을 빼고는 대부분 그것을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였다.

문화는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제공해주니까, 예술가들은 각각의 개인이 일상에서 상상하기 힘든 영역을 표현하니까, 예술은 우리게게 정신적 자극을 주고 새로운 활력을 주니까….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문화가 공공서비스라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국민들의 저변에 깔린 문화에 대한 이러한 신념은 과연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그것을 한국사회에 설득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질문들은 점점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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