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씨∼ㅂ’, 직무유기만 문제고 월권은 괜찮다고?

김훤주 2008. 11. 1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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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인촌 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부터 먼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더러운 상황을 만났을 경우에는, 이렇게 공공연하게 쌍소리를 하는 수도 있다고 시범을 보여주면서 길을 텄기 때문입니다.

“개악하지 마! ‘씨∼ㅂ’ 하지 마! 성질이 뻗쳐서 정말, ‘씨∼ㅂ’ 신문법 개악하지 마!” 누구든 이를 두고 지나친 언사가 아니냐고 따지신다면, 저도 유 씨처럼 한 며칠 있다가 사과 말씀 두어 마디 올리겠습니다. 하하하.

“신문 종사자라면 누구나 치명적이고 궤멸적 타격으로 느낄 수 있는 방침을 듣고 생존 본능에 화가 난 상태에서 이를 참지 못하고 ‘계획적으로’ 부적절한 언행을 보인 것은 분명하기에 사과를 드립니다.”

자, 미리 한 말씀 올렸으니 이제 됐습니다. 우리나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고흥길 위원장이 9일 했다는 말을 한 번 보겠습니다.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인 고 위원장은 “신문법을 개정하겠다.”고 했습니다.

2.
(아, 왜 이럴까요? ‘증말’ 생각만 해도 ‘씨∼ㅂ’ 소리가 절로 나네요.) 고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간담하면서 “신문법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과 헌법불일치 결정이 나왔기 때문에 이를 고치지 않으면 국회의 직무유기가 된다.”고 밝혔답니다.

신문방송겸영허용을 추진하면 전면파업에 들어간다고 기자회견을 하는 언론노조부울경협의회와 언론장악저지 경남연대. 2008년 11월 6일 창원 한나라당 경남도당 앞.


그이가 이리저리 말꼬리를 흔들며 정확하게 표현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짐작해 볼 때 우리 지역신문과 관련해 사활적 이해가 걸린 부분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판단 기준’에 대한 것이지 싶습니다.(다른 몇 개가 더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지엽말단이라 생략합니다.)

좋습니다. 신문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몰랐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헌법재판소 판단이니 존중합니다. 2006년 결정대로 한 신문의 점유율이 30% 이상이거나 3개 신문사 점유율이 60% 이상이라도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아니라는 데에, 억지로나마 동의한다는 얘깁니다.

(그래도 제발, 한나라당 개정 방안처럼,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종합 일간지뿐 아니라 스포츠와 경제와 무료 신문까지 포함한 전국 모든 신문의 발행 부수 기준 20% 이상으로 정하지는 마시기를! 서로 성격과 영향력이 크게 다른데도 그리 눈속임을 하시면 안 되겠지요.

이를테면, 에어컨 시장에 대한 시장지배적 사업자 선정 기준을 정한다면서 에어컨에다 선풍기까지 끼워 넣어 헤아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또 휴대전화 시장을 조사한다면서 같은 전화기라고 유선 전화까지 집어넣으면 제대로 된 점유율이 절대 나오지 못하겠지요.)

어쨌든, 지금 조중동이 합해서 전국 종합 일간지 시장을 60% 이상 아마도 70%도 넘게 점유하고 있지만, 그래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하지 않고 그에 따른 이런저런 제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개정하는 데는 반대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저는 드리고 있습니다.

3.

그러나, 아 ‘씨∼ㅂ’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실은, 고 위원장이 “위헌 또는 헌법 불일치를 그대로 두면 국회 직무유기”라고 문제 삼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 합헌 결정이 난 사안까지 공개적으로 끼워 넣음으로써 ‘월권’을 하려고 획책한다는 점입니다.

고 위원장은 이번 정기 국회에서 처리할 내용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신문의 방송 진입을 제도화하는 문제도 들어가 있다.”고 했답니다. 이는 두 말 할 필요 없이, 조선과 중앙과 동아가 재벌을 등에 업고 방송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하겠다는 말입니다.

갑자기, 고 위원장의 머리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존중한다면, 위헌 또는 헌법 불일치 사안은 개정함과 동시에, 합헌 사안은 왠만하면 그대로 존치해야 마땅합니다. 헌재 결정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직무유기도 말아야 하고, 월권도 해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2006년 6월 헌법재판소는 신문법의 신문과 방송 겸영 금지에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일간신문과 지상파방송은 가장 대표적이고 강력한 미디어 수단이므로 이 둘의 융합은 전체 언론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이것이 언론의 다양성 보장을 저해할 위험성은 항상 존재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헌재는 이어 “(신문법의 겸영 규제는) 언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한 한도 내의 제한이어서 신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고 짚었습니다. 이런데도 고 위원장은 합헌을 넘어서 신문의 방송 소유라는 월권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4.

정말, ‘씨∼ㅂ’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 언론 정책의 중심에는 바로 조중동과 재벌밖에 없음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한나라당 부자 정권과 조중동과 독점자본의 이해관계가 이렇게 뒤엉겨 있는 것입니다.

지역 신문시장은 조중동의 불법 경품을 앞세운 독자 매수 정책으로 이미 황폐해져 있습니다. 시장지배적 사업자 규정을 사문화하면 독자 매수는 한층 더 심해지게 마련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씨∼ㅂ’, 저것들이 무한정 돈을 뿌리지는 못할 테니 언젠가는 수그러들겠지, 이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나서서 조중동에게 무한정 경품을 뿌릴 돈줄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재벌과 짜고 방송 시장에 진입해 저질 포르노성 상업방송으로 떼돈을 긁어모을 것입니다. 그 돈으로 독자 매수를 더욱 심하게 저질러 안 그래도 독점적인 여론 장악력을 더욱 높이는 악순환을 불러 올 것입니다.

이것은 지역신문뿐 아니라 서울의 다른 신문들은 물론이고, 나름대로 공공성을 지켜왔던 지상파 방송들까지 모조리 죽이는 타격이 될 것입니다. 아 ‘씨∼ㅂ’, 이래도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나요? 우리 언론노조가 분명히 전면파업을 경고했는데도 저이들이 이리 간단히 무시하는 것을 보니 그럴 수밖에 없나 봅니다.

아 증말 ‘씨∼ㅂ’입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 매체 비평 전문 인터넷 매체 <미디어스>에 11월 10일 기고한 글을 조금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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