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마음이 따뜻한 사람임은 틀림이 없는데, 이에 더해 마음이 여린 사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함께 듭니다.
아주 친한 동갑내기인데, 물건 사러 동네 슈퍼마켓 갈 때 다른 가게 비닐 봉투를 들고 가지 못합니다. 가게 주인이 언짢게 여길까봐서 말입니다.
그 친구 사는 아파트 둘레에는 슈퍼마켓이 세 개 있는데 다들 규모가 비슷비슷하다고 합니다. 아주 작으면 상호가 찍히지 않은 까만 비닐 봉투를 그냥 쓸 텐데 그보다는 크다는 얘기지요.
이 친구는 그래서 ㄱ슈퍼 갈 때는 ㄱ이 새겨진 비닐 봉투를 들고 가고, ㄴ이나 ㄷ슈퍼 갈 때는 해당 가게 이름이 새겨진 비닐 봉투를 챙겨 가는 식이랍니다.
우리 집에 모아 놓은 비닐 봉투들
그래서 다시 해당 가게 봉투가 없으면 어쩌느냐 물었더니, 새 봉투 값으로 30원이나 50원을 더 물더라도 그냥 맨 손으로 가는 수밖에 없지,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가게 주인이 그런 것까지 신경쓰겠느냐, 당신 마음이 너무 여린 것 아니냐고 다그쳤더니 이런 대답이 나왔습니다. 실제 그렇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마음이 불편하니까.
세상 참 피곤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 사람이 싫지가 않습니다. 자기만 생각해도 살기 어려운 세상인데, 이처럼 상대를 배려한다니 그것만으로도 귀한 존재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하하.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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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런 사람싫어요 저희 아버지가 그러시거든요 ㅜ ㅜ
저두요. 우리아버지는 옛날에 잠바를 가끔 벗어주고 오시기도 했어요. 정월 초하룻날, 거지와 함께 밥을 먹어보기도 했구요.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기겁을 했었지요. 제 어릴 땐 거지가 많았어요. 요즘은 본 적이 없지만, 서울 가면 많다고도 하던데...
그래도 그 아저씨 정이 가네요. ㅎㅎ
그래도요, 희귀종이나 멸종위기종은 보호해 줘야 하지 않을까여????
개인의 호불호가 사회적 보호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재단할 수는 없지 않을까여????? 하하.
비밀댓글입니다
동갑내기가 같은 동갑내기인 제게 한 말투 그대로를 옮겼다고 봐 주십시오. ^.^
그 마음은 따뜻합니다만 본인만의 장바구니를 들고 가면 되지 않을까요? 봉투를 살 필요도, 주인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지구환경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 장바구니 드는 일인데요.
그렇군요. 나중에 얘기할 자리가 되면 그리 말해 놓겠습니다. ^.^
근데 솔직히 기본예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