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랭이논 하면 단연 가천마을

남해는 들어서는 길부터 특별하다.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멋진 남해대교와 노량대교 그리고 창선·삼천포선대교로 시작되는 섬이 남해다.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사철 푸르른 채소밭이 멀리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풍경이 나그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남해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가장 북적이는 곳 중의 하나가 가천마을이다.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된 이 마을의 다랭이논은 오랜 세월 자연과 맞서며 고된 노동으로 일군 삶의 현장이었다. 벼농사를 지을 논이 부족했던 섬사람들은 거친 언덕배기 땅을 일구며 살았다. 옛사람의 고달픔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제 찾아 온 이들의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다랭이논은 가천마을 들머리에 서 있는 우뚝한 이팝나무 너머로 산비탈에서 바다 쪽으로 가파르게 계단처럼 차곡차곡 이어진다. 이렇게 생긴 논 덕분에 마을 이름도 다랭이 마을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고마운 논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요모조모 살펴볼 만한 것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암수바위 같은 명물 자연석도 있고, 옛적 사람살이의 흔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밥무덤도 있다. 그래도 가장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다랭이논 곳곳에서 사계절 싱싱하게 자라는 마늘이며 시금치 따위 푸성귀들이다.

가천마을 다랑논.
두모마을 다랑논.

은근히 멋진 두모마을 다랭이논

가천마을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못지않은 명품 다랭이논을 품은 데가 두모마을이다. 두모마을 다랭이논이 오목한 골짜기에 들어서 있어 안쪽에서 고샅고샅 살펴보는 재미가 뛰어나다면 가천마을 다랭이논은 튀어나온 산비탈에 조성돼 있어 바깥에서 쳐다보는 눈맛이 시원하고 호쾌하다.

아스팔트도로를 따라 마을로 걸어 내려가면 다랭이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유려한 곡선을 뽐내는 논두렁이 아래위로 켜켜이 펼쳐지며 독특한 경관을 연출한다. 작은 골짜기 건너편 높지 않은 산들은 철 따라 다양한 색깔로 배경 풍경을 한층 그럴듯하게 그려낸다.

마을에 들어서면 개울을 거슬러 올라도 좋다. 높고 낮은 논두렁을 타는 재미도 있다. 올라가면 숨어 있던 논 하나가 보이고 한 번 더 올라가면 또 다른 모습이 새롭게 나타난다. 곳곳에 조화롭게 흩어져 있는 바위들에도 눈길이 머문다. 여기 바다가 좋아 멀리 바라보이는 금산에서 내려왔다는 두꺼비바위는 이름에 걸맞게 앉아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두꺼비다.

두모마을 두꺼비바위.

둠벙도 두어 군데 남아 있고 물이 솟거나 고이는 맨땅도 있다. 물이 없으면 논농사를 짓기 어려운 비탈이기에 이들은 더없이 소중하게 보살핌을 받았을 것이다. 도시에 사는 어른들도 요즘은 둠벙을 아는 이들이 드물다. 이곳이 무엇인지 상상해보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즐거움도 선사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도 풍성한 두모

하지만 이들 다랭이논은 진작에 묵정논밭으로 바뀌었었다. 마을에서 가까운 몇몇 배미만 사람들이 부쳐 먹었다. 그러다 보니 잡초로 뒤덮여 다른 야산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언덕으로 여겨져 오랫동안 알려지지 못했다. 남해 바래길이 지나는 구간이라 찾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도 그랬다.

2010년대 중반에 마을에서 경관농업을 시작했다.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려 봄에는 유채꽃을 가을에는 메밀꽃을 피웠다. 그러자 그동안 숨어 있던 보석이 환하게 드러나 반짝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다. 다랭이논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곳에 담긴 사람의 흔적 때문이 아닐까 싶다.

두모마을 당산무 앞 제단과 밥무덤.

두모마을에는 숨어 있는 보석이 많다. 당산숲과 밥무덤이 있고 지금은 문을 닫은 아담한 양아초등학교도 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여럿 늘어선 당산숲에서는 음력 10월 보름에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보름달이 둥실 떠오르면 나무 앞에 제물을 진설하고 당산제를 지내는데 마치고 나면 밥무덤에다 젯밥을 묻어두게 된다.

조그만 당산숲은 개울 이쪽과 저쪽에 적당하게 어우러져 있다. 마을의 역사를 일러주는 아름드리 노거수들은 여름에는 우거져서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주고 가을에는 황금색으로 멋지게 단풍을 이룬다. 밥무덤 쪽에서 보면 제단과 나무와 학교 건물이 제법 잘 어울린다.

바로 옆 학교 울타리에는 좁다란 통로를 내었다. 개울과 이어지는 서너 칸 계단이 놓였다. 폐교되기 전에는 아이들이 이곳으로 내려와 냇물에 발을 담그고 놀았겠지. 아이들이 친구삼았을 물고기들이 무리 지어 이리저리 오가는 모습이 한가롭다.

학교 정문에는 몇몇 기록이 남아 옛날 정경을 떠올리게 한다. 울타리 시작 자리에는 1974년 회갑을 맞은 한 분이 잔치 치를 비용을 덜어 방풍벽을 만들어 주었다고 적혀 있다. 정문 기둥에도 1975년에 두 분이 만들어 기증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마을에서 학교를 얼마나 아꼈는지 보여주는 표지다. 지금 학교는 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숙소 노릇을 하고 있다.

옛 양아초등학교 담벼락에 새겨져 있는 정차순 할아버지가 방풍벽을 쌓았다는 기록. 

 

저마다 다르게 빛나는 마을들

남해는 하늘에서 보면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쪽 위가 창선섬이고 나머지 세 부분은 남해 본섬으로 이뤄져 있다. 남해를 반으로 접었다가 펼쳐 데칼코마니를 만든다면 가천마을과 두모마을은 서로 맞은편을 이룬다. 가천은 왼쪽 날개의 아래 끝이고 두모는 오른쪽 날개의 아래 끝이다.

숙호마을숲.
신전마을숲의 느릅나무.
원천마을숲.

가천과 두모 사이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이 앵강만이다. 여기에 홍현·숙호·월포·두곡·용소·화계·신전·벽련 등 모두 여덟 마을이 저마다 독특한 모습으로 들어서 있다. 이들 마을은 남해의 다른 여러 마을들이 그렇듯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사람 사는 모습도 정겹다.

가천·두모마을 말고 나머지 여덟 마을도 개성이 넘치기는 마찬가지다. 상당히 큰 편인 홍현은 솔숲이 민가와 농지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으며 칼바위가 멋진 숙호는 전복으로 유명하다. 월포·두곡은 같은 개울을 끼고 두 해수욕장이 붙어 있으며 용소는 미국마을이 이국적인 풍경을 펼쳐 보인다.

화계는 나이가 500년 남짓으로 짐작되는 느티나무가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으며 가장 깊숙한 신전은 앵강만 탐방의 중심으로 안내센터가 있다. 원천은 손타지 않은 소박함과 투박함이 매력적이고 벽련은 어항과 갯벌·갯바위를 두루 갖추었다. 앞바다의 노도는 <구운몽><사씨남정기>로 유명한 서포 김만중의 귀양처인데 벽련에서 뱃길로 이어진다.

 

바래길의 알짜를 모은 앵강다숲길

가천에서 두모까지 열 개 마을을 이으면 남해 바래길 두 번째 구간 앵강다숲길이 된다. 대체로 평탄한 편인데다 산과 바다, 들판과 골짜기를 두루 누릴 수 있고 사람과 마을을 만날 수 있어서 찾는 사람이 가장 많은 구간이기도 하다.

앵강다숲길은 걷다가 언덕배기나 산중턱에 서면 고개를 돌리는 데마다 바다 너머까지 호쾌한 전망이 이어진다. 특히 가천에서 홍현으로 가는 고갯길은 막힌 가슴까지 뻥 뚫릴 정도다. 수평선 끝까지 거침없이 펼쳐지는 바다가 걷는 내내 동행해 주는 덕분이다.

홍현마을 석방렴.
홍현마을숲.

바다를 가까이에서 눈에 담을 수도 있다. 홍현과 신전에는 석방렴이 있고 월포와 두곡에서는 모래사장과 몽돌해변을 함께 누릴 수 있다. 화계에서부터는 원천·벽련까지 줄곧 바다를 끼고 이어진다. 운이 좋으면 해녀가 물질하는 숨비소리도 들을 수 있는 구간이다.

풍성한 마을숲도 곳곳에서 맛볼 수 있다. 그래서 앵강다숲길은 이름조차 숲길이다. 홍현이 가장 넉넉하고 널찍하지만 원천도 나쁘지 않다. 커다란 느릅나무가 중심을 잡고 있는 신전마을 앵강다숲은 여러 시설도 갖추고 있다. 월포·두곡의 어린 솔숲은 해수욕장을 받쳐주고 숙호 마을숲도 규모만 작다뿐이지 충분히 돌아볼 만하다.

 

앵강만에 가서 보면 사람들이 왜 남해를 좋아하고 즐겨 찾는지 잘 알 수 있다. 푸근하고 친근하면서도 색다르기 때문이다. 늘 보아 왔던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낯설고 색다른 풍경이 자리잡고 있다. 게다가 그런 풍경들은 하나 같이 사람을 품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모습을 한 꺼풀 벗겨내면 바로 세상 사는 얘기들이 나타난다. 아이들과 함께 넉넉하게 쉬고 누리기만 해도 무엇인가 얻어가는 것 같은 데가 바로 앵강만이다.

 

2020년 연말에 경남생태관협회의 요청으로 환경부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된 남해 앵강만을 알리기 위해 쓴 글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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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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