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경남도민일보

우리 고장 청소년

역사문화탐방 (4) 함양


미스터 션샤인에 나오는

일두 정여창 고택,

곧은 의리·신념 구현

남계서원서 '10년 끈기' 배우고

시원한 마을숲 상림 즐겨

 

올해 함양을 찾은 학교는 513일 진주고, 62일 마산공고, 87일 산청덕산고 셋이다. 일두 정여창 고택~남계서원~농월정·동호정~상림숲을 함께 둘러보았다

함양은 선비의 고장이다. 시작은 굳이 따지면 멀리 고운 최치원까지 가지만 가까이는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이 꼽힌다

조선 사림의 원류로 1471년부터 5년 동안 함양군수로 있으며 함양을 일신한 인물이다. 소출을 늘리고 관폐를 줄였다. 교육을 진흥하고 풍속을 바로잡았다. 덕분에 김종직은 위로 임금에게서 칭찬을 듣고 아래로 백성들한테 우러름을 받았다.

김종직에게 더 큰 보람은 정작 따로 있었다. 학문을 닦고 경륜을 익히려고 자신을 찾아오는 젊은 선비들이었다

정여창(1450~1504)도 그 하나로 김일손·김굉필 등 다른 빼어난 제자들과 함께 스승을 기쁘게 했다. 김종직과 정여창은 세조가 조카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것이 지금으로 치면 쿠데타와 같은 잘못이라는 데 생각을 같이했다

성종·연산군 등 당시 임금은 세조의 핏줄이었으니 이는 당연히 불온사상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의리를 굽히지 않았고 때로는 실천으로 옮겼다.

함양 일두 정여창 고택에서 토론을 하는 학생들 모습. 마산공고 학생의 컴퓨터 그래픽 작품이다.

<미스터 션샤인>의 일두 정여창 고택

정여창은 1494년 안의(함양군 안의면 일대)현감을 지내면서 스승을 본받아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다 14987월 무오사화에 걸려 북쪽 추운 땅 함경도 종성으로 귀양갔다가 15044월 거기서 숨졌다

같은 해 9월 일어난 갑자사화에서는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어 목을 자르는 부관참시를 당했다. 무오·갑자사화는 새로 성장하는 사림파에 대한 훈구파의 타격이었다. 훈구파는 세조 쿠데타에 가담한 대가로 고관대작을 독차지한 권문세족이었다.

정여창은 배움과 처신을 일치시키며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죽어서도 한 번 더 목이 날아가는 모멸까지 겪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명예를 되찾고 선비들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고택은 정여창의 이와 같은 절개와 의리를 구현하고 있다. 이를테면 사랑채의 높은 축대와 우람한 건물이 그렇다. 양반가의 범접하기 어려운 권위를 표현했다 할 수도 있지만 죽음조차 꺾지 못한 드높은 절개의 표상이라 볼 수도 있다.

학생들이 이런 역사를 잘 알고 나섰을 리는 없다. 이를 나름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도록 문제를 10개 정도 장만했다

이를 갖고 마루에 앉아 '정여창 도전 골든벨'을 하면 집중도 되고 호기심도 동하게 마련이다. 그런 다음 몇몇 군데 포인트를 듣고 나서 둘러보면 고택을 좀더 잘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하는 생각도 든다. 정여창이 제대로 누리며 살았던 건물이 아닌 것이다. 후손이 정여창 사후 100년 지나 지었다고 한다

어쨌든 건물과 조경은 더없이 멋지다. 인기 높았던 텔레비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도 나왔을 정도다

솟을대문은 당당하고 곳간채·행랑채는 적당하고 안채는 아늑하고 안마당은 안온하고 사당은 숨은 듯 조용하고 별채는 넉넉하다

탁 트인 바깥마당에서는 왼쪽 굽은 소나무와 한가운데 조금 떨어진 곧은 잣나무가 그럴듯하다. 굽음과 곧음의 대비는 팽팽한 긴장이라면 두 나무 사이 적당한 거리는 넉넉한 조화라 할 수 있다.

진주고 학생들이 미리 공부해 온 데에 따라 스스로 해설을 하면서 남계서원을 둘러보고 있다.

10년 걸려 세운 최초 민간 주도 건립 남계서원

1543년 최초로 지어진 영주 소수서원은 세운 주체가 벼슬아치였다. 남계서원은 이에 뒤이은 두 번째지만 관에다 맡기지 않고 민간이 주도한 것으로는 최초였다

함양 선비들이 뜻을 모아 자발적으로 남계서원을 건립하고 정여창을 모셨다. 이렇게 하는 데 걸린 세월이 1552년부터 10년이었다. 당시 함양 선비들의 끈질김과 적극성이 이런 정도였다.

남계서원은 격식을 제대로 지킨 덕분에 단정하다. 구조와 장식 또한 단순하고 소박하다. 홍살문을 지나 정문 풍영루에 들어 누각에 오르면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불어오는 바람 덕분이다

여기서는 교실로 썼던 명성당이 정면으로 보인다. 그 사이에 먼저 조그맣게 하나씩 있는 네모난 연못이 보이고 동서 양쪽으로 걸터앉은 기숙사 양정재·보인재와 그에 딸린 누마루 둘도 한눈에 들어온다

학생들과 더불어 조선시대 사립 중등학교에 해당하는 서원의 면모를 공부하기 딱 좋은 장소다.

아름다운 구석도 있다. 연못에서는 연꽃이 자라고 둘레에는 매화가 심겨 있다. 바로 옆 누마루 이름이 연꽃을 사랑하는 애련헌과 매화를 노래하는 영매헌인 까닭이다

연못은 눈을 즐겁게 하는 조경용이면서 동시에 불을 끄는 방화(防火)용이었다. 목조건물은 불나면 끝장이다. 요즘이야 소화기를 두지만 옛날에는 연못을 파고 물을 끌어들여야 했다

뒤편 토산 언덕에는 정여창을 위한 사당이 놓였다.

농월정·동호정을 거쳐 상림으로

점심을 먹고는 농월정·동호정을 찾는다.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정자까지 좋은 경우가 어디 그리 흔하냐고 말들 하지만 함양 화림동 골짜기만큼은 예외다. 정자에서 보는 개울 풍경도 멋지고 개울에서 보는 정자 풍경도 멋지다

안에서 내려다보면 맨들맨들한 너럭바위와 하얗게 부서지는 물과 내리쬐는 햇볕이 눈맛을 즐겁게 한다. 밖에서 올려다보면 당당한 건물과 높이 받친 나무기둥과 기와지붕 아래 어둑어둑한 그늘이 넉넉하다

학생들은 내키는 대로 어울려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웃음을 터뜨리고 물에 발을 담그면서 이 모두를 누린다.

산청덕산고 학생들의 상림숲 인증샷 장면. 동학농민혁명에서 단초가 되었던 고부군수 조병갑이 함양에서 군수를 지내고 떠날 때 세워진 선정비 앞이다.

이어 옮겨간 상림은 신라 말기 슈퍼스타 고운 최치원이 조성한 마을숲이다. 사람 사는 데로 드는 물줄기를 빼돌리고 제방을 쌓은 위에 꾸민 1000년 된 숲이다

당시는 홍수 방지 시설이었지만 지금은 엄청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관광 자원이 되었다. 선대가 남긴 유산을 망치지 않고 잘 가꾼 것만으로도 함양 사람들은 이리 큰 복을 받았다

상림은 사시사철이 모두 멋지다. 이번 폭염에 대한민국에는 한낮에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되는 데는 없었다. 상림은 달랐다. 숲에 드니까 바로 땀이 그치고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학생들은 여기서 함양태수 최치원·안의현감 박지원·고부군수 조병갑 관련 유적 몇몇을 찾아보는 미션을 수행했다. 많이 하지는 않았다. 지나쳐서 짜부라지면 관심도 의욕도 잃어버리기 십상이니까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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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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