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소나무가 나서 자라고 바위가 모레 되는 세월

김훤주 2018. 6. 2.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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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연유로 산길을 걷다 보면 소나무가 나서 자라고 바위가 허물어져 모레나 흙이 되고 또 상처를 입고 다스리는 따위 흔적들을 보게 된다


알려진 대로 소나무는 아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소나무는 씨앗이 가볍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도 남 먼저 들어가 살 수 있다산꼭대기 칼바위에 도토리 같은 참나무 열매가 싹을 틔울 수는 없다. 하지만 하늘하늘 가늘가늘 솔씨앗은 비만 몇 방울 떨어져 주어도 싹은 충분히 틔울 수 있다

바위에 싹을 틔운 소나무는 시나브로 뿌리를 아래로 내린다. 바위 재질이 사암이면 더 좋다. 결정이 굵으면서도 단단하지는 않아 잘 부서지고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소나무가 싹을 틔우고 자라는 과정은 곧바로 바위가 갈라지고 모레로 돌아가는 과정이 된다


아무리 사암이라도 보드라운 흙만큼이야 할까. 소나무가 바위를 허물어뜨리는 과정이란 곧바로 생명을 걸고 벌이는 악전고투 자체라고 나는 짐작한다. 바위 위로 뿌리가 드러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바위를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는 얘기다.

뿌리를 내린다 해도 생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들의 이런저런 해코지도 감당해야 한다. 철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노리개로 쓰려고 소나무껍질을 걷어갔을 수도 있다. 어른들이 송진 따위를 얻어야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 아래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소나무는 그저 견딘다. 견디지 않으면 죽는 수밖에 없으니까. 무심한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의연하다느니 찬사를 갖다붙인다. 그러거나 말거나다. 상처를 입는 것은 소나무가 어찌할 수 없지만 상처를 다스리는 것은 소나무가 어찌할 수 있는 노릇이다


나무든 사람이든 상처가 나서 죽는 것은 아니다. 상처를 고치고 다스리지 못해서 죽은 것이지. 소나무는 자기 깜냥껏 이렇게 상처를 다스린다. 남는 흉터가 흉스럽든 흉스럽지 않거나까지 따질 계제는 아니다. 흉터는 생긴대로 두면 된다

그러는 사이 바위는 좀더 허물어졌다. 허물어져 모레가 된 것들은 그저께 내린 비에 씻겨 나래로 내려갔다. 저 쪽 골짜기 어느 언덕에 곱게 쌓였으리라. 아직 남은 것들은 올 6월 본격 장마에 맞춰 롤러코스터를 탈 준비를 하는지도 모른다


소나무와 바위가 이러고 있는 동안 사람도 나고 자라고 늙고 죽는다. 저 소나무는 아직 어린 것이 살아온 나날보다 살아갈 나날들이 아무래도 더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이미 50대 중반에 이른 나는 아니겠지. 이제 올라가려고 애를 써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제대로 내려갈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험한 꼴 보기 십상이다


지난해 다르고 올해 다르고 내년이 다르다. 지난해는 여기까지 오르는데 무릎이 한 번도 꺾이지 않았지만 올해는 무릎 관절이 두 차례나 아픈 신호를 보냈다. 그래도 올해는 지팡이를 짚지 않았는데, 내년에는 그 녀석 짚지 않고서는 오르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소나무처럼 어렵사리 자라났다가 한 번 돌이켜지면 부지불식간에 바위처럼 허물어져 내리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한살이가 아닐까 싶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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