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제2화. 내 자존심이 어때서
- 제3화. 서부지검 이상 없다
- 제4화. 외시출신 경찰청장
- 제5화. 북창동의 언터처블
- 제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
- 제7화. 백한 번째 프로포즈
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 #윤우진사건 #조희팔사건
“공 씨 단독범행이며 우발적인 사건입니다.”
2010년 12월 9일 황운하는 디도스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당한 발표와 달리 여론은 축소수사로 받아들였다. 정권 입맛대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디도스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자 검찰은 대규모 수사팀을 꾸려 디도스 사건을 수사한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경찰 수사가 잘못된 것처럼 법석을 떨었다.
경찰 조직 내에서도 후폭풍이 불었다. 황운하가 경찰조직을 위험에 빠뜨렸다며 문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불거졌다. 그러나 황운하는 2012년 말까지 수사기획관으로 일했다. 경찰청장 조현오가 흔들리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믿고 일을 맡기면 간섭하지 않고 외풍도 차단하는 게 조현오 방식이었다.
지능수사대와 범죄정보과를 신설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현오는 일체 간섭을 하지않을 테니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끌어들이고자 했다. 해당 과장은 최대한 능력 있는 직원으로 팀을 구성했다.
당시 범죄정보과는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작성하는 수준을 요구하지 않았다. 범죄정보과 일부 직원을 정보과 출신이 아닌 수사과 사람으로 구성한 이유다.
사건 첩보를 구해 수사하는 것을 ‘인지수사’라고 한다. 이른바 인지수사로 승진을 한 번 이상 했던 사람이 범죄정보과에서 일했다. 이들이 생산한 정보는 수사부서에 넘기면 바로 몇 가지 사항만 보완해 압수영장이나 계좌영장을 신청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수사부서가 압수영장을 받았다고 해서 그 결과가 모두 성공적일 수는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희팔 자금 추적 수사였다. 조희팔은 3조 5000억 원대 다단계 사기사건 주범으로 2008년 중국으로 밀항했다. 조희팔은 주로 대구에서 활동했고 이 지역에 관련 수사가 집중됐다. 당시 범죄정보과는 대구에 사는 조희팔 측근이 자금을 은닉했다는 첩보를 얻었다. 황운하는 대구지방경찰청이 아닌 경찰청 지능수사대에 수사를 지시했다.
경찰청장 조현오도 나름 호전적인 기질이 있는데, 수사기획관으로 황운하까지 오면서 검찰 심기를 건드리는 행보가 이어졌다. ‘밀양 경찰 검사 고소 사건’이 첫 출발이었다.
이 사건은 젊은 경찰대 출신이 2011년 밀양경찰서 지능팀장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당시 경남지방청은 토착비리 수사 성과를 독려했다. 때마침 지능팀장은 지역 사이비 기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지역 폐기물업체 수사로 급선회한다. 수사 대상은 업체를 비호한 공무원까지 확대된다. 사건 규모는 점점 커졌다. 처음에는 독려하던 검사도 태도가 달라졌다. 검사는 지능팀장을 검사실로 불러들여 ‘수사의 정도’가 아니라며 제동을 걸었다. 지능팀장이 되물었다.
“어떤 점에서 비정도입니까?"
지능팀장은 당시 그 말을 들은 검사가 흥분해 욕설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새끼 너 정신 안 차려. 여기가 어딘 줄 알어? 계장님 이 새끼 피신(피의자 신문조서) 받으세요. 너희 서장 내 앞에 불러봐? 너희 과장 한 번 불러봐?”
지능팀장은 검찰과 경찰이 협력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상전과 머슴이었다. 지능팀장은 검사 말이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하고 검사실을 나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굴욕감, 자괴감, 모멸감 같은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지능팀장은 앞으로 처신을 고민했다. 수사기획관인 황운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는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했고 검사를 폭언과 수사 축소 지시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해당 검사가 지능팀장에게 과잉수사 문제를 지적하며 적절한 수사 지휘를 했을 뿐 폭언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청은 이 사건을 본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즉시 배당한다. 또 혐의를 부인한 채 진술서만 내고 경찰 소환요구를 세 차례 거부한 검사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영장을 기각했고 경찰 기소 의견도 무혐의 처리했다.
경찰청장 조현오는 이 과정에서 “검찰은 문제 있는 경찰을 잡아들이고 경찰도 문제 있는 검찰을 잡아들이면 두 조직이 모두 깨끗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해 검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검찰은 전에 없던 방식으로 경찰청 수사에 대응했다.
일반적으로 경찰청이 하는 수사는 특정 관할 사건이 아니다. 가령 조희팔 은닉자금 추적 수사는 피해자가 전국에 걸친 전국단위 수사였다. 검찰은 그런 경찰청 수사 사건들을 관할로 이첩을 요구하면서 방해하기 시작했다.
즉, 서울중앙지검은 조희팔 은닉자금 추적 수사를 대구지검으로 넘기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이 사건은 경찰청 지능수사대가 아니라 대구지방경찰청이 맡게 된다. 그러나 대구지역 경찰관은 조희팔 세력과 유착이 됐다는 의혹 때문에 수사를 맡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든 수사는 수사관 의지에 달렸다. 경찰청은 지능범죄수사대 수사관을 대구지방청 수사계 소속으로 보냈다. 공문으로 진행하는 이 인사 과정은 검찰도 파악했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이 신청하는 각종 통신허가와 계좌추적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공문에는 조희팔 은닉 재산 추적과 유착된 경찰을 잡겠다는 명분이 있었다.
대구로 간 수사팀은 조희팔 측근 거주지 아파트까지 특정해냈다. 하지만, 아파트를 압수수색하니 첩보 내용과 달리 측근은 빈곤하게 살고 있었다. 아파트를 뒤지면서 조희팔 사망을 암시하는 간접증거도 나왔다. 경찰청 지능수사대는 2012년 5월 조희팔 사망을 발표한다. 이 발표는 디도스 수사 발표만큼 언론에 집중포화를 맞는다.
처음 첩보와 수사 내용이 다르면 수사팀은 철수 지시를 바라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부는 사람이 죽어도 돈은 있을 것이라며 은닉자금 추적을 지시했다. 불법 다단계 업자들은 통상 차명계좌를 사용한다. 모든 단서는 조희팔 주변인 진술에서 시작된다.
“내가 통장 빌려서 준 적 있다.”
수사팀은 본인 동의를 받아서 계좌들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장을 받아서 상대계좌를 다시 열어본다. 수사팀은 대구에서 계좌추적 영장을 수십 차례 받아내며 자금 흐름을 추적했다. 조희팔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금이 흘러 들어간 계좌 가운데 한 검사 이름이 등장한다. 검사는 조희팔 쪽에서 넘어온 자금으로 유진기업 주식을 샀는데 그 계좌에 입금한 사람들은 모두 특수3부 검사였다. 이 가운데 한 명이 조희팔 쪽 수표를 검사 계좌에 입금한 것이다. 그 검사 이름이 김광준이다.
김광준은 고교 동창이면서 조희팔 측근인 강태용에게 받은 수표로 주식 투자를 한 것이다. 조희팔 자금 일부가 부장검사인 김광준 차명계좌로 흘러간 것이다. 수사관 30여 명이 차명계좌에 임금한 사람들을 동시 조사하고자 전국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경찰 수사 정보가 언론에 새나가면서 검찰이 직접 수사하겠다고 나섰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김수창 특임검사를 지명했다. 특임검사제도는 2010년 이른바 스폰서 검사 사건이 불거지자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이 검찰이 자정 능력을 강화하겠다며 들고나온 개혁(?)조치다.
검찰은 무엇보다 검사가 경찰에게 조사받는 선례를 남기지 않는 게 중요했다. 특임검사팀은 김광준 검사를 구속시키면서, 총 10억 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김광준 검사 개인 비리 차원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들은 황운하가 수사기획관이었기에 타깃이 김광준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릴 수 있었다고 했다. 서울청 광역수사대 진행하는 ‘윤우진 용산세무서장 뇌물 수수 의혹’ 사건 또한 황운하가 뒤를 받쳐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사건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 모 교수와 관련된 뇌물 첩보에서 시작된다. 당시 학과 학생 절반이 이 교수에게 불법 레슨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한국예술종합학교 입시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다른 첩보를 얻는다. 바로 이 교수에게 돈을 바친 학부모 김모 씨가 윤우진 세무서장에게 뇌물을 건넨 정황을 잡아낸 것이다.
김 씨는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서 육류수입가공업자로 일했다. 매출이 큰 사업체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자기 사업체를 나누는 방식으로 매출을 줄이기도 한다. 이런 편법 사용 여부를 관할 세무서가 모를 리가 없다. 이를 눈감아달라는 뜻에서 관할 세무서장에게 로비를 할 이유가 생긴다. 김모 씨는 윤우진 세무서장이 골프를 칠 때, 본인 카드로 비용을 결제를 해줬고 검사들도 함께 했다는 진술을 받았다.
범죄정보과에서 생산한 정보를 바탕으로 경찰청이 수사할지 지방청으로 보내야 할지 판단하는 주체가 수사기획관이다. 이 정보는 서울청 광역수사대로 넘어간다.
김모 씨 카드 결제 내역을 살펴보면 언제 골프를 쳤는지 알 수 있다. 보통 자기 이름으로 예약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시각 골프 부킹 명단과 골프장 내 CCTV만 확인하면 된다.
간단한 사건이다. 하지만 검찰은 골프장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 명분은 인권 보호였다.
경찰은 당시 윤우진 세무서장 통화기록을 갖고 있었다. 골프 치는 당일, “지금 누가 먼저 도착했어?”와 같은 대화가 전화로 오갔을 것이다. 기지국 위치를 근거로 톨게이트를 통과했을 차량을 특정해냈다. 그러나 차량 번호로 정확한 부킹 명단을 확인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 해 검찰은 골프장 압수수색 영장을 6차례나 기각했다.
서울청 광역수사대는 여름에 윤우진을 불러 조사를 했다.
수사관은 조사를 끝마칠 즈음 외국에 나갈 계획이 있는지 확인했다. 윤우진 세무서장은 성실히 수사에 응하겠다고 약속했다. 수사관은 당부했다.
“혹시 외국으로 나가려면 사전에 저희에게 꼭 말씀해야 합니다.”
2012년 8월 30일, 윤우진 세무서장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해외로 도망친 것이다. 도피 전, 윤우진 세무서장은 대포폰으로 검사 여러 명과 수시로 통화를 하곤 했다. 누군가로부터 코치를 받은 흔적이 짙었다.
윤우진이 해외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경찰 쪽에 쓴 '빽'이 황운하로 인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이 사건 수사 관계자는 이를 “황운하 공이 크다”고 표현했다.
윤우진 세무서장은 사회 전방위 분야에 힘 있는 인맥을 갖고 있었다. 경찰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당시 수사기획관인 황운하도 ‘빽’ 쓰는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황운하는 그럴수록 서울청 광역수사대 실무진을 경찰청으로 불러들여 윤우진 수사 상황을 챙기기 시작했다. 진행 상황을 자세히 듣고 부족한 사항은 보완을 지시했다.
윤우진은 친한 경찰 고위직 인맥을 통해서 수사에 힘을 빼려는 시도가 먹히지 않는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윤우진 입장에서는 시간을 끌 수 있는 방법으로 해외도피를 택했을 것이다. 시간을 끌면 경찰 인사철이 다가올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의 예상대로 2012년 11월 황운하는 결국 수사기획관에서 물러났고, 수사와 상관없는 보직으로 밀려났다. 당시 경찰청장 김기용은 황운하에게 부담스러운 심경을 털어 놓았다고 했다.
2012년 말, 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다. 2013년 3월 김학의 별장 성접대 동영상 사건이 터졌다. 정권은 권력층 수사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이 수사에 관여한 경찰들은 수사부서에서 배제됐다. 인사가 조직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경찰 수사기능은 그렇게 와해됐다.
황운하 수사기획관이 떠난 후, 박근혜 정권 하에서 권력층 비리 수사를 이어갔던 한 경찰은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 조직에서, 저에게 전화해서 열심히 하라고 끝까지 격려해준 사람은 황운하와 조현오. 나머지 대부분은 전화해서 뭐라 하고 욕하고…”
(마지막 화. 백한 번째 프로포즈)
글쓴이 : 서형 seohyung2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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