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남해 창선 철래섬의 옛날식 선착장

김훤주 2018. 3. 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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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창선에 가면 철래섬이 있다. 밀물이 들면 길이 끊기고 썰물 때는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뭍에서 섬으로 이어지는 뻘에 너비 2m 정도 자갈을 깔아 길을 내었다. 짐작대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무덤만 하나(아니고 둘인가?) 있을 따름이다


12년 전 여기 들렀다가 동네 할매 한 분한테 1만원에 낙지 다섯 마리를 산 적이 있다. 방금 잡은 녀석을 아주 헐값에 장만한 셈이었는데 할매는 바지락도 두 움큼을 덤으로 주었다. 2017년 4월 10일 두 번째로 찾았다. 


그 때도 이번에도 이 작은 섬을 한 바퀴 돌았더랬다. 걸음을 재게 놀리면 10분도 걸리지 않는 크기다. 곳곳에서 도둑게를 보았는데 이번에는 갯잔디 우묵한 자리에서 대추귀고동도 보았다. 대추귀고동은 멸종위기동물2급이다. 여기 갯가에 자라는 갯잔디와 더불어 주변 생태환경이 빼어나다는 표상이다


철래섬에서 철래가 무슨 뜻인지 동네 몇몇 분한테 물었더니 모른다고들 했다. 그저 옛날부터 그렇게 일러왔다고만 한다. 돌아와 지도를 찾아보니 천아도(天鵝島)라 되어 있다. 천아는 고니를 이르는 한자말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고니가 지금처럼 희귀해지기 전에는 이 섬에 고니가 많이 찾아와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그러면 철래는 천아와 같은 뜻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철래섬 둘레 물이 빠지는 바람에 드러난 갯벌에는 곳곳에 통발이 놓여 있었다. 이리저리 물이 흐르는 갯고랑을 따라 게들을 잡기 위하여 쳐놓은 것 같았다. 그렇게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무슨 추상적인 의미를 담은 설치미술 작품 같이 여겨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선착장이었다. 돌과 자갈과 흙을 섞어서 만들었다. 콘크리트는 한 군데도 쓰지 않았다. 콘크리트는 대체로 1970년대 들어 광범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선착장은 그 전부터 이런 모습으로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쉰 살 가까이 나이를 먹은 셈이다


선착장은 섬과 뭍 사이가 아니라 섬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옆구리에 있다. 선착장은 밀물이 들면 물에 잠기는 것 같다. 먼저 선착장을 이루는 돌과 자갈과 흙이 색깔이 거뭇거뭇하다. 아직 물기가 덜 빠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썰물이라 물이 빠져 있지만, 밀물 때는 충분히 잠기지 않을까 싶다.(이와 대조적으로 옆에 있는 배들은 물기가 빠져서 색깔이 흰 편이다.) 


다음으로 선착장의 가장자리를 이루는 돌팍들에서 위에까지 따개비들이 달라붙어 있다. 따개비들이 저렇게 붙으려면 잠깐이라도 물에 잠겨야 한다. 따개비는 물을 벗어나서는 돌아다닐 수 없는 존재이니까 말이다. 밀물에 잠기는 선착장이라니, 요즘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배들도 흥미롭다. 셋 가운데 아래쪽에 부표(浮漂)가 붙어 있는 둘은 짐을 실어 나르는 바지선(barge) 같다. 나머지 하나는 널빤지를 갖고 만들었는데 많이 낡아 있다. 그런데 이 목선(木船)도 바지선도 모터가 달려 있지 않다. 사람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주변은 죄다 물이 들어도 그다지 깊지 않은 갯벌이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용도는 아니다. 대신 둘레 갯벌에 물이 들었을 때 그 위를 돌아다니는 용도라고 보면 맞지 싶다. 저기 저렇게 쳐놓은 통발을 그렇게 가서 걷어내지 않을가.


밀물이 들어도 여기는 바다가 깊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노를 가지고 바닷물을 젓는 것보다 기다란 바지랑대로 바닥을 미는 편이 움직이기 쉬울 것 같다. 나는 거기에 쪼그리고 앉아 목선과 바지선과 선착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면서 쓸데없이 이런 생각만 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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