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부석사에 담긴 인공의 자연미 세 가지

김훤주 2017. 8. 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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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부석사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스러움이다. 부석사의 자연스러움은 인공이 없거나 적어서 생기는 자연스러움이 아니다. 그것은 인공 자체가 자연스러운 데서 생기는 자연스러움이다. 인공의 자연미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보기로는 먼저 축대를 들수 있겠다. 부석사에는 축대가 아홉이 있고 계단은 셋이 있다. 들머리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축대 셋 계단 하나, 천왕문에서 범종루까지 축대 셋 계단 하나, 범종루에서 안양루까지 축대 셋 계단 하나

올라가면서 축대를 이루고 있는 돌들을 살펴본 적이 있다. 큰 돌이 큰 돌끼리, 작은 돌이 작은 돌끼리, 그리고 큰 돌과 작은 돌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대중없는 무늬가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오른편 위에 ㅁ 모양으로 만든 수구(水口)가 있다. 담쟁이덩굴이 반쯤 가렸다.

처음에는 그냥 사진만 몇 장 찍고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얼핏 볼 때는 자연 그대로인 상 싶은 것들이 자세히 보니까 달랐다. 정 같은 연장으로 모퉁이를 쳐내 인공을 더한 자국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큰 돌들은 물론이고 큰 돌들 사이에 끼워넣은 작은 돌들에도 적당하게 가공한 흔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전체적으로는 인공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다음으로는 가장 아래에서 맨 위까지 이어지는 선의 흐름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대부분 절간은 들머리 일주문에서 으뜸 전각에 이르기까지가 직선이다

부석사는 그렇지 않다. 일주문~천왕문~범종루까지는 직선이지만 범종루를 지나 안양루로 오르는 길은 왼편으로 푯대 나게 휘어져 있다왜 그랬을까를 두고 따지면 여러 갈래로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겠지만 내게는 그게 그냥 자연스러움으로 다가온다

한가운데 부석사라 적혀 있는 데가 범종루 자리.

직선은 끝이 빤히 보인다. 직선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다. 직선은 뻣뻣하게 경직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직선은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고 인공계에만 있다

천왕문에서 바라보는 범종루.

범종루에서 바라보는 안양루. 계단이 왼편으로 꺾여 있다.

그런데 이처럼 곧게 뻗어오던 직선도 이렇게 끄트머리에서 에둘러 주면 끝이 빤히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긴장도 경직도 시나브로 풀어줄 수 있다. 그래서 부석사는 절간 전체 느낌이 자연스럽고 그래서 헐렁헐렁해져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으로는 조사당에 있는 돌계단을 들겠다. 이 돌계단은 자연석 위에 올라 앉아 있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계단은 어떻게든 사람이 가공하여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이 자연석 돌계단이 어색할 수도 있다

조사당 돌계단/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돌리면 일부러 계단을 놓기 위해 아래에 있는 돌을 캐내거나 깨뜨리는 것이 어색하다. 아래에 있는 자연석을 그대로 계단으로 편입하여 오르내리면 되니까. 그냥 그대로 두고 그 위에다 필요한 만큼 계단을 더 놓으면 그만이니까

무량수전 돌계단.

법주사 대웅보전 돌계단.법주사 대웅보전 돌계단 난간 장식.

조사당 돌계단과는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무량수전 돌계단도 꽤 자연스러운 편이다. 장식이 없고 오르내리는 기능에 충실하다. 가장자리에 쳐놓은 난간도 별 장식 없이 발을 바깥으로 헛디디지 않게 하는 구실만 한다. 이렇게 큰 절간의 으뜸 건물이 이런 정도로 장식이 없기도 드물 것이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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