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란방(禁亂榜) - 어지럽게 굴면 안 된다고 알리는 방입니다.
저는 여지껏 실물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임꺽정>인가 어디에서 절간 풍경 분위기 그리는 대목에서 슬쩍 한 번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금란방을 붙이는 시절은 오래 전에 지나버리고 말았구나 하고 여기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여기 이 <금란방>을 2003년 12월 21일, 크게 별스럽지 않은 산청 정수산 율곡사에서 봤을 때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같이 갔던 아들과 딸이 눈이 똥그래져서 왜 그러세요? 물을 정도였습니다.
금란방이 비닐로 덮여 있고 테이프로 가장자리가 발라져 있어서 예스러운 멋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 세 글자만으로 하고자 하는 얘기를 완벽하게 전하고 있습니다.(물론 읽는 이가 중국글을 알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만.) 글자가 좀 잘 써진 것 같아서-잘은 모르지만 힘찬 느낌이 들어서도 좋았습니다.
율곡사는 단청이 아름다운 절입니다.(서둘러 돌아오느라 꼼꼼하게 살펴보지는 못했지요.) 대웅전 앞 돌탑도 아담해서 좋았습니다.
겨울에 갔는지라 뜰에 있는 감나무는 잎을 모두 떨군 채 감만 여럿 주렁주렁 달고 있었습니다. 무르익은 감들 빨간 빛이 눈을 따갑게 했습니다. 제 눈에는 멋졌는데 다른 이들도 그렇게 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딸 현지랑 아들 현석이랑 아내 이애민이랑, 부지런히 걸어서, 새신바위 있는 데까지, 정수산 꼭대기까지도 다녀왔습니다. 바람 때문에 조금 힘들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벌써 5년째 접어드는 옛날 일이 돼 버렸습니다요. 초등 3학년이던 현지는 중2가 되고, 중1이던 현석은 어느새 고3이 돼 버렸습니다.
어쨌거나, 우리도 행사를 앞두고 한 번씩 필요할 때 이 금란방을 써 먹어 보면 어떨까요? 절집에서는, 하안거(夏安居)나 동안거 때 찾아 오는 이들 조심 좀 해 주십사 이런 것을 몇 군데 붙여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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