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의 소원 장사
지난 6월에 ‘해인사 이런 소원팔이는 좀 심하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다. 해인사가 국사단 앞에 소원나무를 한 그루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매다는 소원지를 한 장에 1만원씩 받고 판다는 얘기였다. 국사단은 가야산 산신령 정견모주를 모신 전각이다.
국사단 앞 소원나무에 가면 이렇게 적혀 있다. “이곳은 가야산 산신(山神)이 깃든 곳으로 예로부터 널리 알려져 왔다. …… 이처럼 이곳은 가야산에서 신령스럽고 영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소원을 적고 국사단에서 간절히 기도하시면 소망하시는 일이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과연 소원나무에는 소원을 적은 노란색 소원지가 빽빽하게 달려 있다. 절간이 부처님도 아니고 산신령을 내세워 소원팔이 장사를 하는 현장이다.
법주사의 소원 장사
이번에 충청도 속리산 법주사에 갔더니 거기서도 소원팔이를 하고 있었다. 소원지는 한 장에 5000원씩 받고 있었다. 팔고 있는 보살한테 소원지를 사서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대웅보전 앞에 소원지함이 있는데 소원을 적어서 거기 넣으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넣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다시 물었다. 거기 소원을 스님들이 부처님을 모시면서 날마다 빌어주고 시간이 지난 뒤에는 초하루에 소원지를 모아 ‘소지공양(燒紙供養)’을 해준다고 했다.(해마다인지 달마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소지는 종이(紙)를 불사르는(燒) 것이다. 거기에는 종교적 의미가 담기고 일정한 행동이 따른다. 그래서 그냥 소지라 하지 않고 뒤에 공양이 따라붙는 모양이다. 공양은 부처님께 올리는 의식(儀式)을 뜻한다고 한다. 약식이든 정식이든 일정한 의례를 거쳐 마무리한다는 얘기로 들렸다.
어느 소원 장사가 나을까
이 둘을 견주면 내가 보기에는 법주사 소원팔이가 해인사 소원팔이보다 한결 더 낫다. 당연한 노릇이다. 무엇보다 해인사보다 법주사가 가격이 싸다. 해인사에서 소원지 한 장 사는 돈이면 법주사에서는 두 장을 살 수 있다.
또 해인사에서는 소원지를 파는 것으로 끝이고 A/S가 없다.(알리지 않고 A/S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장사 속성상 그렇게 한다면 소원나무 안내판에 그런 사실을 적어 홍보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싶다.)
하지만 법주사는 싸게 파는 데 더해 A/S까지 하고 있다. 날마다 빌어주고 해마다 또는 달마다 소지공양까지 해주는 것이다.
나는 해인사가 법주사를 본받으면 좋겠다. 이왕 파는 것이라면 가격을 좀 낮추어 좀더 많은 이들이 소원을 빌 수 있도록 하고 A/S도 법주사처럼 제대로 좀 하면 좋겠다.
산신령 성별 구분 못하는 해인사
(참고 삼아 덧붙이는 글이다. 원래 해인사는 가야산 산신령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10년 전만 해도 해인사 국사단에는 여성이 아닌 남성 형상 산신령이 모셔져 있었다. 김해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이영식 교수가 쓴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영식 교수는 2007년 1월부터 2008년 3월까지 <국제신문>에 '이야기 가야사 여행'을 연재한 다음 그 내용을 가다듬고 사진을 더하여 2009년 3월 <이야기로 떠나는 가야 역사여행>(지식산업사, 1만9000원)을 단행본으로 펴냈다.
국제신문 사진. 아마 이영식 교수가 찍었을 것이다.
이 책 191쪽을 보면 당시 국사단에 모셔져 있던 산신령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코 밑과 턱에 검은 수염을 수북하게 기르고, 검은 장화에 붉은 옷을 두른 할아버지 한 분이 서 계십니다." 하지만 지리산 산신령 성모천왕이 여성인 것처럼 가야산 산신령 정견모주도 여성이다.
조선 시대 지리책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령현 기사를 보면 "신라 최치원의 <석이정전(釋利貞傳)>을 보면 '가야산 산신령 정견모주가 천신과 감응하여 대가야 임금 뇌질주일과 가락국 임금 뇌질청예를 낳았다'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이영식 교수는 할아버지 산신령을 부정한다. 같은 191쪽이다. "정견모주의 모주(母主)는 '어미 모(母)'에 '님 주(主) 자로 '어머님'으로 새겨질 수 있는 말입니다. 원래 '어머님'은 대지의 신이고 산신은 여성입니다. 천신이 남성이고, 지신이 여성임은 세계 공통입니다."
해인사 국사단의 지금 산신령 초상.
<국제신문>에서 연재가 나간 날짜를 알아봤더니 2007년 10월 18일이었다. 해인사가 이 기사를 보고는 국사단 초상을 새로 그려서 바꾸었나 보다. 이영식 교수가 이어지는 192~193쪽에서 이렇게 적은 데서 그런 사정을 알 수 있다.
"다만 이제 여러분들은 수염이 덥수룩한 할아버지 신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글이 신문에 나간 탓인지, 해인사에서는 '정견모주의 상'이라 하여, 제가 주장하는 내용처럼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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