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군함도 깎아내리기, 일본 우익만 해도 충분하다

김훤주 2017. 8. 1. 22:48
반응형

황정민을 다시 보게 해 준 영화

사실 나는 여태까지 영화배우 황정민이 부담스러웠다. 그동안 그이가 주연으로 나온 많은 영화에서 부풀려진 오버액션을 숱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영화 <군함도>에서 황정민을 보고는 그런 부담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게다가 여태까지 보여준 오버액션도 황정민한테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감독의 요구를 충실히 실행에 옮긴 결과임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군함도>에서 보여준 황정민의 액션이 그럴 듯했다. 황정민은 이 영화의 사실상 원톱 주인공이었다. 나는 이렇게 황정민이라는 영화배우에 대하여 다시 보기’ ‘바로 보기를 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 <군함도>를 칭찬할 용의가 있다

돋보인 이정현·김수안·이경영 

<군함도>는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황정민 말고도 빛나는 연기들이 많았다. 강제동원된 위안부로 나오는 이정현도 연기가 빼어났다. 전라도 쫀득쫀득한 지역말이 이정현의 입에서 차지게 나왔다

표정 연기 또한 멋졌다. 슬픈 듯도 하고 체념한 듯도 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결기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표정이어서 보고 있는 내가 절로 소름이 돋았다. 몸에 문신이 새겨진 과정을 펼쳐보이는 대목도 내게는 인상깊게 남았다.

(하지만 소지섭과 함께 총을 들고 전투하는 마지막 장면은 어색했다. 총질이라고는 전혀 해보지 않았을 위안부일 텐데 자세가 너무 잘 나왔다. 잘 훈련된 여전사에게나 어울릴 액션이었다. 소지섭과 이정현이 숨진 뒤 나란히 누운 장면도 조금은 '데자뷔'였다.)

황정민의 딸로 나오는 김수안도 연기가 아주 빼어났다. 군데군데에서 사람 여럿의 눈물을 쏙 빼놓았다. 분열된 독립운동진영의 대동단결을 불러올 대단한 인물 윤학철로 나오는 이경영은 더욱더 흠잡을 데가 없었다.(윤학철 캐릭터의 사실성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말하겠다.) 

소지섭과 송중기는 아마도 미스캐스팅

소지섭과 송중기는 아쉬웠다. 소지섭은 이번 <군함도>에서도 그간 본인에게 주어져 있던 고정된 이미지를 떨치지 못했다. 잘 단련된 몸매를 적절하게 드러내는 한편 시크한 매력도 살짝 던지는 이미지를 그대로 되풀이했다

시크한 매력과 잘 단련된 몸매는 이번에도 충분히 멋졌다. 소지섭 본인은 제대로 도드라져 보였다. 소지섭의 액션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맞물려 돌아가지 못했다. 나는 소지섭과 영화가 잘 어울린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보는 내내 람보의 근육질이 자꾸 떠올랐다. 다른 배역을 압도하는 근육질이었다

송중기도 미스캐스팅이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인기를 얻은 톱스타를 상업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을 감독의 욕심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런 욕심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하고 욕심 그대로 남았다. 

송중기는 군함도에 수용되어 있는 대단한 독립운동가 윤학철을 구출해 오는 독립군 역을 맡았다. 후반부에서 제대로 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면 충분히 원톱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해서 형식상으로는 주연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조연에 그치고 말았다.

먼저 송중기는 얼굴이 지나치게 곱상했다. 실전을 통해 혹독하게 단련되어 백절불굴이라는 강인한 인상을 주어야 했다. 우락부락하면서도 섬세한 울림 또는 떨림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실제에서는 얼굴에 피를 묻혀 놓았어도 소꿉놀이 하다가 긁힌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송중기를 캐스팅했으면 감독이 그렇게 바꾸어야 마땅하지 않나 싶은데 그냥 기왕의 이미지에 업혀 가는 것으로 그쳤다. 감독이 그런 노력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노력이 느껴지는 국면이 한 군데도 없었다.

송중기의 입에서 나오는 절제된 서울말도 나는 거슬렸다. 여태 우리나라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서 점잖고 중후한 서울말은 전라도·경상도·충청도·강원도·평안도·함경도 지역말을 쓰는 다른 사람들과 차별지어 초월적인 존재로 여겨지게끔 하는 데 이바지해 왔다

사투리 쓰는 천것들과 달리 고매한 존재로 보이게 하는 것이 서울 중류층이 쓰는 점잖은 표준말의 역할이었다.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이번에 송중기가 쓴 표준말도 그런 역할을 했다. 송중기 캐릭터의 리얼리티를 더욱 떨어뜨린 요소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 왜곡과는 거리가 먼 영화 군함도 

그렇다 해도 <군함도>가 형편없는 영화라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제대로 확인된 역사 사실이 영화 전체를 떠받치기 때문이다.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탄탄했고 시간이 지나도 힘을 잃지 않는 영화였다

강제로만 이루어진 강제 징용은 없었다. 이것이 팩트다. 직접적인 강박도 있었지만 수많은 회유와 협박과 속임수와 꼬드김이 함께했다. 일본 사람이 하기도 했고 조선 사람이 하기도 했다.(뒤집어 말하자면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일본 사람도 있었다.)

징용에 나가면 나중에 집 한 채 값은 벌 수 있다는 사탕발림도 있었다. 징용에 나가면 돈도 벌 수 있고 총알받이로 군대에 나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꼬드김도 있었다. 징용과 무관하게 일본에서 돈 벌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등떠밀어 놓고는 징용에 끌고 가는 속임수도 있었다

그러한 앞잡이로는 조선 사람이 당연히 많이 나섰다. 자발적으로도 나섰고 마지못해서도 나섰다. 영화 속 이정현의 대사처럼 조선인 포주와 조선인 면장과 (조선인 순사도 나왔었나?)…… 등등이 그런 식으로 일제에 진충보국(盡忠報國)을 한다면서 자기 주머니를 불렸다

이 모두는 일제의 강압이라는 큰 틀 안에서 행해졌다. 친일파 문제가 중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일제의 의도는 일제 스스로만으로는 절대 관철될 수 없었다. 무단 통치로 직접 관철된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인 친일파를 통하여 간교하게 더욱 폭력적으로 관철된 측면이 많다

이런 디테일의 배치를 통해 영화 전편에서 일제 징용의 강압성이 오히려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런 것을 두고 역사 왜곡이라 하면 옳지 않다. 물론 불만스러워 할 수는 있다. 나는 그를 두고 민족주의 소아병이라고 병명을 붙이겠다

리얼리티와 재미 모두를 드높인 윤학철의 이중성 

마지막으로 이경영이 연기했던 윤학철의 이중성은 어떻게 보아야 합당할까? 물론 나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고 실제로도 그런 상황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배신과 협잡은 엄혹한 시기 민족해방운동의 피할 수 없는 동반자였다.

표면적으로는 항일의 용장으로 행세하면서 이면에서는 일제에 붙어먹은 인물이 과연 없었을까? 없을 리 없었다. 그러면 한둘만 있었을까? 아마도 곳곳에서 버글버글했을 것이다. 항일반제 독립운동의 모든 국면에 다 있었을 국면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에 더하여 일제의 지배·침탈이 그만큼 교활하고 악랄하고 끈덕졌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윤학철의 이중적 행태는 영화의 재미를 더하는 반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박무영(송중기)의 독립군이 처음 상정했던 대로 윤학철을 그대로 구출해 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면 어땠을까. 더없이 밋밋하고 재미가 없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해도 영화 <군함도>를 비난하는 한국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물어주고 싶다.(물론 100% 옳은 질문은 아닐 수 있다.) 영화 <군함도> 이전에 일제 강제징용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아셨습니까

영화 <군함도>만큼 일제 강제징용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알린 작품이 여태까지 있었습니까? 영화 <군함도>만큼 세계적으로 대중적으로 일제 강제징용의 비인간성을 광범위하게 폭로한 작품이 이전에 있었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영화 <군함도>를 헐뜯고 깎아내리는 것은 일본에 있는 수구꼴통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하여는 선생님 생각이 어떻습니까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