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귀농·귀촌 생각이 없어도 읽어볼만한 책

김훤주 2017. 2.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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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식이 쓴 <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를 게으르게 읽었다. '농부 전희식의 귀농·귀촌 길잡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내가 읽어본 바로 이 책은 단순히 '귀농·귀촌 길잡이'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몸으로 자기 인생을 살아내면서 얻은 깨달음이 보석처럼 곳곳에서 반짝인다. 귀농·귀촌을 할 생각이 없더라도 한 번 쭉쭉 읽어보면서 "아하, 그렇지!" 하며 무릎을 칠 그런 책이다. 

나로서는 굳이 귀농·귀촌을 하지 않더라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산다면 적어도 스스로나 세상에 해코지는 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1. 망상을 짓지 말자

"우리 일상 자체가 이런 망상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관련 얘기가 이어진다. 집을 떠나 명상 수련을 열흘 하는 동안 소나기가 며칠 왔다. 집뒤 축대가 무너져 내리는 꿈을 꿀 정도로 걱정이 컸다. 지난 여름 장맛비에 축대 일부가 무너져 있었는데 그 부실해진 축대가 완전 무너져 내리는 것이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그런데 집에 와 보니 너무도 멀쩡했다. 멀쩡한 축대가 저를 보고 '더 있다 오지 벌써 왔느냐' 하는 듯했다. 멀쩡한 축대를 붙들고 몇 날 몇 밤을 전전긍긍했듯이 갈망하고 혐오하는 시간들로 우리 삶을 채우고 있지 않나 싶었다.(10~11쪽) 

2. 자기 몸을 부려라

"자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만들 줄 아는 사람. 자기가 먹는 모든 것을 키우는 사람. 그래야 비로소 '농부'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혼자서 힘들면, 작은 마을 안에서는 가능할 것입니다. 퇴화되었을 뿐, 우리 인간의 DNA 구조 속에는 그런 능력이 내장되어 있습니다."(28쪽) 

그러니까 연대와 순환, 내 목숨이 누구 덕에 연명되고 있는지를 생각할 줄 알게 되면 농민이 되지 않더라도 조금은 인간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여기게 만들어주는 글이다. 

"어떤 경우에도 농사의 최소 규모를 유지하려 하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없어지지 않게 하는 게 제가 살아가는 원칙입니다."(54쪽) 

'굳은살이 없어지지 않게 하는' 게 무슨 뜻인지는 대부분 알 것 같다. 그리고 앞뒤 맥락을 보면 '농사의 최소 규모를 유지하려 하고'는, '농사를 최소 규모라도 유지하려 하고'로 읽힌다. 다른 데서 소득이 더 나고 벌이가 더 되더라도 자기가 바탕으로 삼은 소임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나는 읽었다. 

"자기 밥상은 자기가 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 밥을 떠먹여주는 경우는 환자뿐입니다. 자급식에서 멀어진 딱 그만큼 환자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고 여깁시다."(74쪽) 

이 또한 도시에서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도 실천할 수 있는 덕목이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이렇게 하면 100을 얻겠지만 도시에서 농사를 짓지 않아도 이렇게 하면 50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 고마운 줄 알아라

"저는 좋은 음식을 자연식, 전체식, 소식, 공동식, 느린식, 감사식, 자급식으로 보고 여기에 채식을 더합니다. 정기적인 단식도 중요합니다. 뭐가 이리 복잡하나 싶겠지만 한마디로 하면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면 된다는 말입니다."(60쪽) 

충분히 이해가 된다. 시골에서 전희식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면 100% 실천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조건에서도 전희식의 마음가짐에 제대로 공감하고 공명하면 그 절반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자연식, 전체식, 소식, 공동식, 느린식, 감사식, 자급식, 채식을 모두 다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면 그만큼 보람은 있을 것 같다는 얘기다. 

"하루 꼬박 세 차례 밥상 차리는 일을 하고 처음으로 남이 해준 밥상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2007년 6월쯤이었습니다. 이때 실감했습니다. 제 몸의 수고 없이 밥상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황송하고 고마운 일인지를요. 

밥때가 되면 그냥 식탁으로 가서 차려놓은 밥상을 받았는데 그리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반찬거리 걱정으로 지내다가 끼니마다 다른 반찬이 올라오는 밥상이 무지 감사했습니다."(71쪽) 

이런 마음이 꼭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마음이다.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으면 건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4. 스스로를 책임지는 정성으로

"시행착오와 힘듦이 깨달음으로 연결되느냐 아니면 체념과 불만이 되느냐는 건 전적으로 자신의 정성에 달렸다고 보면 됩니다."(86쪽) 

달리 더할 말이 없다. 언제 어디서든 사람살이 기본 원칙이 이런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성이 무엇을 뜻하느냐는 그냥 사심 없음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나는 본다. 시행착오나 힘듦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 그만인 것이다. 

"사람한테 인간성이 중요하다면 식물은 뿌리가 중요합니다."(90쪽) 농사를 지으면서 이런 깨달음을 전희식은 얻었다. 별 것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은 아니다. 

전희식은 뿌리를 키우기 위해 식물을 기르면서 지지대에 묶지 않았다. 지지대를 세워주면 뿌리가 약해도 쑥쑥 잘 자라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성을 가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욕망과 능력의 균형을 배우는 것만큼 큰 공부가 없습니다."(183쪽) 그러면서 그 앞에 이렇게 적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되 스스로 그 조건을 마련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것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 부모가 그것을 대신해 해 주면 아이를 망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전희식은 이렇게 적었다. "18살만 되면 스스로 먹고살 수 있도록 나라의 모든 교육과 학제가 재편성되어야 옳다고 봅니다." 

5. 교육자본에 휘둘릴 까닭이 무엇이냐

이는 귀농·귀촌과 관련이 없어도 소중한 지적이다. 

"교육자본은 인간의 기초교육 기간을 획기적으로 늘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학 나와서도 취직도 안 되고 어중간하니까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밥벌이 못하는 박사가 지천입니다. 

교육자본은 권력과 결탁해 자격증과 졸업장을 무수히 만들어내서 그것에 매달리는 풍토도 만들었습니다. 불황일수록 이 자격증, 저 학위를 따놔야 할 것처럼 부추겼고, 사이버대학을 만들어 정원도 없이 수많은 학생을 모집해 쓸데도 없는 공부를 하게 합니다."(185쪽) 

교육이 오히려 제 앞가림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제 앞가림을 할 줄 아는 시기를 뒤로 늦추어 버렸다는 얘기다. 

전희식은 농사를 지으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렇게 할 수 없는 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귀농·귀촌하지 않더라도 이런 마음을 가지면 좀더 일찍 제 자식이 앞가림을 하도록 이끌 수 있다. 대신해 주지 말자. 

참 좋은 책인 것 같다. 귀농·귀촌을 했거나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바로 도움이 되는 책이다. 귀농·귀촌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나름 울림이 있는 책이다. 이런 정도밖에 이야기할 수 없어서 아쉽고 안타깝다. 

전희식. 도서출판 한살림. 247쪽, 1만4000원.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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