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부산 출판사 산지니의 10년 지역출판 생존기'를 읽었다. 은근히 재미있다. 잘 읽히기도 한다.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던 덕분이 큰 것 같다. 

2015년 11월 산지니에서 펴낸 책이다. 글쓴이는 8명, 강수걸·권경옥·권문경·양아름·윤은미·문호영·박지민·정선재. 모두들 산지니 식구들이다. 

책날개 소개를 보면 강수걸은 대표, 권경옥은 편집장, 권문경은 편집디자이너, 양아름·정선재는 편집자, 박지민은 디자이너다. 나머지 윤은미와 문호영은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는 않고 다만 '이야기를 모으는 중'이거나 '편집일도 얻어 걸린' 사람이다. 

책 제목에 '지역', '출판'이 들어 있으니 책, 출판, 편집, 지역 이런 얘기가 들어 있고 그래서 무겁고 어둡고 힘들고 하지 않을까 싶었다. 제목에 들어 있는 '행복'은 이런 무거움과 힘듦을 가리기 위한 레토릭으로 여겨졌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가볍고 밝고 손쉽고 재미있었다. 물론 책, 출판, 편집, 지역 관련 얘기도 당연히 있었고 또 크게 보면 그게 줄기이기는 했지만, 출판사라는 일터의 일상 풍경과 에피소드·생각거리 그리고 그러면서 알아챈 삶의 이치 등등이 보석처럼 함께 반짝이고 있었다. 

산지니 블로그에서.

지역 출판 이야기

96쪽 : 온전히 시집 만들기에 빠져들었기에 나는 시집이 세상에 나오고 당당하고 홀가분할 수 있었다. 그때야 어렴풋이 그 맛을 느꼈던 것 같다. 시가 주는 갈등과 시집이 주는 은은함 그리고 새로운 걸 만들어가는 고통과 기쁨을. 

이제는 시집 차례지. 사람들의 베개 아래 혹은 책상 위, 옆구리 사이로 들어가 그때 내가 느꼈던 취기가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나는 산지니시인선 첫 호 <금정산을 보냈다>를 웃으며 세상 밖으로 보낼 수 있었다.(96쪽)

106쪽 : 이 책(<이야기를 걷다: 소설 속을 걸어 부산을 보다>)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부산을 다시금 바라보게 하는 책이여서 우리가 만들어놓고도 많은 감동과 생각거리를 얻은 책이었다. 또한 이런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부산에 있었구나 하는 말들을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 

부산은 다양한 콘텐츠가 살아 숨쉬는 곳임을 깨달음과 동시에, 이후 부산 콘텐츠를 어떻게 책으로 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인연이 된 조갑상 교수와는 이후 두 권의 책을 더 진행했는데, 소설집 <테하차피의 달>은 문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이 되었고, 2012년 출간한 <밤의 눈>은 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됨과 동시에 2013년 만해문학상에 선정되었다. 

6·25전쟁 당시 가상의 공간 대진읍을 배경으로 국민보도연맹과 관련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작품이다. 6·25 당시의 민간인 학살을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이 희소하다는 점에서 주목받은 장편소설로, 맹렬한 작가정신으로 둔중한 역사를 끄집어올린 소설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산지니 블로그에서.

113~115쪽 : 강수돌 교수가 원고를 보내왔다. 강 교수는 충남 조치원 신안1리 마을 이장이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지만 마을 이장 직책을 더 선호한다. 고층아파트 반대 운동을 3년 동안 이끌면서 마을 가꾸기 운동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 

물론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시간도 없는데 굳이 내가 이 일에 뛰어들어야 하나, 내가 나선다고 확실히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대자본이나 건설회사와 싸워봐야 이기기 어렵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고, 맨땅에 헤딩하는 꼴이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비록 힘든 일이 있더라도 지금까지 공부해온 것들이 바로 이런 삶의 현장의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직접 부딪쳐 해결하는 데 쓰려는 것이었다는 생각으로 강수돌 교수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투쟁에 뛰어든다.

118쪽 : 강수돌 교수의 저작은 이전부터 읽어왔고 존경할 만한 학자라고 생각해왔지만 강수돌 교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고, 앞에서도 밝혔듯이 무작정 연락해서 출간을 청했을 뿐이다. 

서울의 유수 출판사들이 출간 제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수돌 교수가 우리 출판사로 원고를 보낸 것은 지역 출판사를 응원하는 뜻이지 않았을까 짐작해보면서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195쪽 : 처음에 사회자가 "사명감을 가지고 지역출판을 열심히 하고 계시는 분들"이라고 발제자들을 소개할 때 별 사명감 없는 나로서는 약간 민망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는데 서너 시간에 걸쳐서 지역출판이 지역문화 발전에 왜 중요한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지역출판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하고 제안하는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감동스럽기도 하고 뿌듯함과 함께, 없던 사명감이 마구 샘솟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일상 이야기와 이런저런 생각들 

81쪽 : 삶이란 게 어디 주인공만 등장하는 모노드라마이던가.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일지언정, 넓게 바라보면 이 사회 속 주인공이라 할 수 없는 주변부 인생에 불과하다. 주인공을 꿈꿨던 나였지만, 결국 나는 관객 역할에 충실하고자 다짐한다. 

87쪽 :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자리에서 엄마의 부재가 만든 곤란한 한 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재미나게 전개된다. 부재로 인해 그 자리가 소중한 걸 알게 되는 가족의 모습이다. 우리는 일상을 바쁘게 보내면서 가족의 빈자리를 생각하지 못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엄마의 자리, 아내의 자리의 소중함을 느낀 시간이었다.

산지니 블로그에서. 부산일보 그림.

152~153쪽 : "사실 독서의 '쓸모'를 중시하는 것은 모두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마음으로 진정한 독서를 방해하는 것이다." …… 책에 관해서는 어떠한 규범이나 제한도 필요치 않습니다. "읽지 말아야 할 책도 없고, 반드시 읽어야 될 책도 없다. 내 영혼의 주인은 나다"라는 말에서 아직도 금서목록이 돌아다니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해봅니다. 

책읽기를 통해 무언가 성과를 바라는 학부모들과 권장도서라는 이름으로 목록을 만들어 책읽기를 강요하는 독서교육의 현실이 오히려 책읽기를 방해하고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186~187쪽 : 박물관에 놓인 나비를 보며 인간의 운명이 떠올랐다고 하더군요. 왼쪽 날개를 과거로, 오른쪽 날개를 미래로 본다면 나비의 몸뚱아리는 곧 인간이 정박해 있는 현재에 해당된다며, 원래는 애벌레였고, 누에고치였을 나비의 운명이 마치 인간의 삶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마르차 커러터레스쿠는 나비와 같은 우리네 인생 또한 날개가 접혀 있을 때는 마치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천천히 날갯짓을 해나간다면 그것이 바로 인생이 되는 게 아니겠냐고 하더군요. 

세미나 도중 책을 펼쳐 보이시며 책도 마찬가지라며 책을 날갯짓해 보이기도 하셨고요.(책의 한쪽 날개는 이미 읽은 부분, 다른 한쪽은 읽을 부분이겠죠?

212쪽 : 작년 제 나이가 무려 서른넷이었죠. 결코 제가 결혼이나 육아라는 거창한 이유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게 아니었고, 어쩌면 사소한 계기로 일을 그만뒀던 거죠.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율무차를 맛있게 탔어요. 가루를 넣고 따뜻한 물을 부어서 말이죠. 그런데 이걸 안 마시고 까먹고 놔뒀더니 위에는 맹물만 남아 있고 밑에는 가루가 가라앉아 있던, 그런 상태. …… 

일종의 매너리즘이자 열정이 고갈된 상태였죠. 개인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 일 못하겠다!' 하고 일어선 거죠.

238~239쪽 : 비 오는 날 모래밭을 바라본 적이 있는데 옆에 흙이 많은 부분은 진흙탕처럼 되는데 모래밭은 물을 다 빨아들이면서 오히려 가는 길을 푹신푹신하게 하더라고요. 

모래 하나하나는 작고 흩어져 있는 것 같은데 그 틈새와 여유 덕분에 훨씬 큰 힘을 발휘하고 포용적인 차이를 구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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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나 출판과 전혀 무관한 사람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바로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부산 출판사 산지니의 10년 지역출판 생존기>였다. 271쪽. 1만5000원.

김훤주

송인서적 부도로 산지니가 많이 어렵다고 한다. 4000만원 넘는 어음은 휴짓조각이 되고 8000만원을 넘는 재고책은 회수 불능 상태가 되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 산지니가 지난 12년 동안 무슨 책을 어떻게 하면서 출판을 해 왔는지는 인터넷에서 '산지니'로 검색하면 금세 알 수 있다. 

이런 출판사 하나가 지역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앞으로 지역에서 이런 축적이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부산에 뜻있는 사람들이 어지간하면 지켜내어야 하는 가치로운 출판사다. 부산 사람들의 분발을 응원하며, 나도 경남에 살기는 하지만 작으나마 힘을 보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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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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