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역사는 읽는 것이 아니고 만지는 것이다

김훤주 2016. 11. 1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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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역사, 읽지만 말고 직접 찾아보자 

[아이들에게 지역 역사를 돌려주자] 

(1) 읽기를 넘어 찾아보기 

2011년부터 경남 지역의 역사·문화·생태 현장을 지역 사람들과 더불어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지역 사람이 지역을 잘 모르는 현상이 일반적이라는 사실이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대체로 그랬다. 다른 지역은 나름 알아도 자기 사는 지역일수록 더 모르는 경향도 있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조차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물론 자기 지역을 잘 아는 선생님이나 어른도 적지는 않았다.) 어른도 이와 같은데 자라나는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사정이 원래 이런데다 학교도 학원도 지역은 별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나 학원은 전국적인 것 세계적인 것을 중심으로 가르친다. 대학진학이 최고 목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입수능시험이 전국적·세계적인 것보다 지역적인 것을 더 다루면 좀 달라지겠지만. 

'초등학생을 위한 거제지역사 가이드북' 표지.

지역의 역사·문화나 생태·환경을 잘 모르면 자기가 사는 고장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도 생기지 않기 마련이다. 애정이나 관심이 적으면 자기 고장을 별볼일없는 존재로 여기면서 스스로를 얕잡아보기 십상이다. 

이처럼 자기 사는 고장과 자기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 삶이 즐겁고 보람차기는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시골로 갈수록 이런 현상이 심해지고 있어서 농·어촌 지역이 갈수록 텅텅 비어가는 악순환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에게 자기 사는 고장을 알게 할 수 있을까? 학교 교육도 요즘은 체험 중시·현장 강화로 방향을 잡는다던데 지역의 특징적인 역사·문화에 초점을 맞춘 가이드북을 만들어 학교에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을 돌아보게 하면 어떨까? 

이러는 가운데 마침 올 3월에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서 '창의주도형 지원 사업 공모'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저널리즘·공익성 활동 분야-공익을 위한 저널리즘 활동' 분야에 선정이 되면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최다 3000만 원까지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경남 전역 열여덟 시·군에서 한꺼번에 실행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힘에 부치니까 올해는 한 지역만 꼽아 시범 삼아 해보고 해마다 조금씩 넓혀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거제시를 대상 지역으로 골랐다. 인구가 20만이 넘는 도시지만 농촌이나 어촌도 광범하게 공존한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단박 보아도 들려주고 보여줄 거리가 풍부하다는 점 또한 확실했다. 

전체 구상은 이렇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에게 거제의 역사·문화를 알리는 책을 만들어 제공함으로써 읽게 하고 현장을 찾아보게 한다. 1~4학년은 어린 편이고 6학년은 졸업반이어서 이런저런 일이 많을 것 같아 5학년으로 잡았다. 물론 5학년이라 해도 언제나 5학년은 아니다. 해마다 아이들은 바뀐다. 이렇게 한 10년만 한다면 거제에 사는 모든 아이들에게 지역 역사·문화를 알릴 수 있겠다 싶었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는 4월 들어 경남도민일보의 이런 공모가 나름 합당하다고 여겼는지 지원 사업으로 선정했다. <초등학생을 위한 거제지역사 가이드북>을 제작하고 그 활용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을 바로 진행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을 위한 거제지역사 가이드북>은 거제 지역 초교 5학년 2500명 안팎과 선생님들에게 모두 보급된다. 103쪽 분량인 이번 가이드북은 특징이 뚜렷하다. 거제에만 있는 특징적인 역사 사실과 문화 유산을 크게 다루었다. 널리 알려진 사실은 작게 취급했다. 널리 알려졌어도 새로운 의미를 찾아볼 수 있으면 소개했다. 

옥산에 쌓은 옥산금성. 동문 들머리 일부.

역사적 단편 사실을 늘어놓는 대신 이를 통해 거제의 특징을 들여다보도록 구성했다. 거제 특정 지역의 흥함과 망함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대목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글자를 키우고 사진과 그림을 많이 쓰는 것은 기본이다.) 

△옛날 거제 앞바다에 해전이 많았던 이유 △거제가 섬이면서도 성곽이 많은 까닭 △통영보다 먼저 거제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사연 △칠천량해전의 패장 원균통제사와 배설경상우수사가 정말 나쁜 사람일까 여부 

그리고 △옥포대첩 때문에 고현읍성이 함락되었고 그러면서 지금 거제면이 새로 중심지가 된 사연 △거제면 옛날 관아 건물들이 지금껏 경관이 좋은 까닭 △으뜸 유배지였던 거제가 다시 최대 규모 포로수용소를 품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 △조선시대 마지막으로 쌓은 성곽이 거제에 있는 이유라든지가 되겠다. 

가이드북이 단지 읽히는 데서 그치지 않도록 활용을 위해서도 나름 장치를 마련했다.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역사·문화 현장을 찾아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있다. 

통영에 앞서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거제 가배량성.

이를 위해 가이드북 활용을 위한 전용 홈페이지(http://www.idominbiz.com)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여기에 현장을 찾아본 소감이나 인증샷을 올린다. 이에 대해서는 걸맞은 선정 절차를 거쳐 문화상품권을 간단한 선물로 주는 방식으로 재미와 관심을 끌어내면서 피드백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가이드북 속 현장을 찾아 인증샷 찍기 △가이드북 읽고 느낀 점 표현(글·그림·만화 등)하기 △가이드북 속 현장을 찾아 특정 유물 자세히 그리기 △역사현장 탐방하고 느낀 점 표현(글·그림·만화 등)하기 등이 해당된다. 주제별 탐방도 있다. 

△옥산금성·사등성·고현성·가배량성 가운데 2곳 이상 찾아 인증샷 찍기 △옥포대첩기념공원· 칠천량해전공원 두 곳 모두 찾아 인증샷 찍기 △거제향교·기성관·반곡서원 세 곳 모두 찾아 인증샷 찍기 △거제초교·해성고교 모두 찾아보고 인증샷 찍기, △그리고 이렇게 주제별 탐방을 하고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등 느낀 점 표현(글·그림·만화 등)하기 등이다. 

기성관 선정비 무리. 앞쪽은 쇠로 만든 철비.

현장 탐방도 진행한다. 주어진 예산에 맞추다 보니 올해는 네 차례만 하게 되었다. 거제교육지원청과 협의를 거쳐 학교별로 신청을 받고 대상 학교를 선정한 다음 버스를 타고 아이들이 몸소 역사·문화 현장을 둘러보도록 하는 계획이다. 

어른이 앞서가면서 설명하고 아이들은 뒤따르면서 듣는 수동적인 방법은 쓰지 않는다. '미션 수행'이나 '도전! 골든벨' 등 게임 형식을 버무려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살피고 알아보도록 능동적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지역민 힘을 모아 당등산에 세운 옥포대승첩기념탑.

거제에서 첫 발을 떼는 <초등학생을 위한 지역역사 가이드북> 제작·활용이 나름대로 뜻깊은 일이라 해도 첫 술부터 배가 크게 부를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가이드북의 내용과 진행에서 잘못이나 실수도 있을 수 있다. 어쨌거나 이런 시도를 통해 지역 아이들이 지역에 대해 좀더 많이 알 수 있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인식이 조금이나마 확산되면 좋겠다. 

앞으로 가이드북의 구체적인 내용과 현장탐방 과정, 그렇게 둘러보면서 무엇을 보고 만지고 느꼈는지 등을 담아내는 기획기사를 네 차례 더 실을 예정이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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