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함안, 박물관~사자석탑 걷고 싶은 산책로

김훤주 2016. 8. 15.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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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에도 아주 걷기 좋은 길이 있습니다. 길목마다 보석 같은 문화와 역사가 촘촘하게 박혀 있어 몸과 마음이 모두 아름다워집니다. 함안군청 뒤편에 함안박물관이 있습니다. 함안박물관은 말이산고분군이랑 이어집니다. 함안군청은 말이산고분군을 따라서 걷기 좋도록 산책로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여기 아라가야 수장들의 무덤들은 다른 여느 가야 집단의 유택들과 마찬가지로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줄줄이 누워 있습니다. 그래서 분위기가 고즈넉할 뿐만 아니라 가풀막 비탈도 심하지 않아 누구에게나 걸어다니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함안박물관에서 아라가야 역사와 문화를 슬몃 엿본 다음에는 말이산고분군을 한 바퀴 둘러보아야 마땅하겠지요. 함안박물관에서 말이산고분군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면 마치는 지점은 도항리 도동마을 언저리가 되겠습니다. 

함안박물관 앞 아라홍련 시배지.

함안박물관에서 등잔 모양 토기를 사진에 담고 있는 블로거 실비단안개님.

말이산고분군 산책길은 1km 남짓 되는데요, 도동마을을 등지고 콘크리크 포장길을 따라 나오면 만나지는 아스팔트 도로에서는 오른쪽 말고 왼쪽으로 꺾어져 걸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쪽에 명품 도로가 있거든요. 여기 도로는 왕복 2차로인데 양쪽으로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줄줄이 서 있습니다. 


말이산고분군 산책로가 끝나는 자리에 있는 고분. 사진에 보이는 콘크리트길에서 왼쪽으로 나가면 됩니다.

거기서 이수정(=무진정)을 지나 함안면 소재지까지 3.5km 가량 줄곧 이어지는 길인데요, 특히 이수정 있는 1.8km 지점까지 은행나무가 더욱 장한 편입니다. 은행나무는 아시는 그대로 여름철 싱싱하게 녹음 짙은 잎사귀도 나쁘지 않지만 가을철 연두를 거쳐 진노랑으로 물드는 단풍이 더 멋들어집니다.

말이산고분군 끝나는 데서부터 함안면 소재지까지 줄곧 이어지는 은행나무 가로수.

지금은 너무 더워 제대로 걸을 수 없지만 9월 10월이 되면 한 번 걸어보기 좋은 길입니다. 단풍 든 은행잎은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만이 아니라 바닥에 떨어져서도 한참동안 아름다운데요, 그래서 11월 늦가을에 걸어도 좋은 길이 바로 여기랍니다. 은행잎 노란색은 부드럽고 따뜻하고 환한 느낌을 주는지라 걸어보면 푹신한 비단 위를 걷는 기분이 듭니다. 

이렇게 해서 도중에 마주치는 이수정은 또 얼마나 멋진가요! 나무들은 이수정 앞 연못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품이 무척 대단해서 여기 왕버들이라든지 하는 나무 아래로 들어서면 한낮에도 어둑어둑할 정도입니다. 

무진정(=이수정) 나무그늘을 찾아와 자리 깔고 노니는 이들.

무진정 멋들어진 정자 들머리에는 오래된 배롱나무가 몇 그루 자라나 지금 한여름을 맞아 붉은색 꽃기운을 만방에 떨치고 있습니다. 이 배롱나무 또한 꽃이 져서도 아름다운 것은 은행나무 단풍잎과 마찬가지여서 그 꽃핀 아래에 서면 고개를 아래위로 주억거리는 보람을 나름 누릴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멋진 정자에 가면 자칫 잘못하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는데 바로 정자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옛적 사람들이 정자를 들이세울 때는 거기서 다른 무엇-이를테면 둘레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서이지 정자 자체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진정 같은 좋은 정자를 찾아갔을 때는 그 정자 예쁘거나 멋진 모습도 놓칠 수 없지만 그보다는 정자가 품은 경관에 좀더 눈을 돌려야 합당합니다. 여기 무진정도 그러해서 앞에 놓인 연못과 그를 둘러싼 나무들을 눈에 넣고 살펴보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면 아무래도 아쉽겠지요. 

부자쌍절각과 충노대갑지비도 있습니다. 부자쌍절각은 주인공들이 무진정을 지은 이의 후손입니다. 아버지는 정유재란을 맞아 왜적이 조상 산소를 파헤치는 데 대해 지키지 못하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孝) 그 아들은 정묘호란 때 출전했다가 평안도 의주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忠)고 합니다. 

부자쌍절각과 그 앞에 있는 충노대갑지비.

그러면 충노대갑지비는 무엇이냐고요? 충성스러운(忠) 종놈(奴) 대갑(大甲)의(之) 빗돌(碑)입니다. 말하자면 아들을 따라 종군해서 평안도 의주까지 갔다가 거기서 주인이 죽자 돌아와 부음을 주인집에 전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누구한테나 다 좋았는데 주인 아들 시신을 거두어 오지 못했으니 살아 무엇 하겠느냐며 바로 앞 냇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충노가 되었고 그렇게 해서 부자쌍절각 앞에 빗돌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사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북쪽 끝 평안도 의주에서 남쪽 경상도 함안까지 그것도 혼자 몸으로 어떻게 시신을 가져오겠습니까! 굶어 죽지 않고 돌아온 것만으로 장한 노릇인데, 시신을 거두지 못했다고 죽다니, 당시에도 아마 말도 안 되는 일이었겠지 싶습니다.) 

(이수정에서는 성산산성에 한 번 올라가 볼 수도 있습니다. 성산산성은 가야 시대 처음 쌓아졌고 신라시대에도 요충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목간(木簡)이 대거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거기 적힌 글자를 통해 당시 관직이나 지명 그리고 생활상을 좀더 잘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산산성. 여기 성곽 위에 서면 아래로 멀고 가까운 정경이 모두 품에 안겨옵니다.

성산산성 안에 있는 무슨 건물터.

성산산성은 아직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멀리 대숲이 보입니다. 대숲 아래 땅은 옛날에 농경지였을 것입니다. 산꼭대기인데도 물이 솟아나거든요.

물론 산책에는 이런 사실이 필요없습니다. 한 바퀴 두르면서 바라보는 전망이 아주 좋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산성이 있는 조남산이 그리 높지 않아 거리는 700m 정도 시간도 5~10분밖에 안 걸립니다. 왕복 1.5km에 산성 한 바퀴 1km 남짓으로 짐작되니까 모두 2.5km 더해진다고 보면 되겠네요.) 

이수정(=무진정)에서 산책을 접어도 좋지만 이와 내친 김에 함안면소재지까지 모두 걸으면 더욱 좋습니다. 거기에는 먹을거리도 풍성하게 있고 볼거리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한 5.5km를 기분 좋게 걸으면서 역사와 문화도 살피고 홀쭉해진 배도 불릴 수 있는 함안면 소재지 일대입니다. 

여기 오면 먼저 함성중학교를 찾아가 볼 일입니다. 거기 가면 주리사지사자석탑이 버티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썩 잘 생긴 석탑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사자석탑이 몇몇밖에 없어서 희소성이 인정되는 문화재입니다. 

바로 옆에는 옛날 절간 부재로 쓰였음직한 석재들이 널려 있는데요 거기 나무그늘이 있고 앉을 자리도 있어서 잠깐 발품을 쉬기에는 안성맞춤이랍니다. 그러고는 바로 붙어 있는 함안초등학교로 갑니다. 여기에는 함안민속박물관이 있는데 별나게도 함안초교에서 운영하는군요. 옛날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함안 이런저런 유물들을 내어 놓아 나름 눈길 던지며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명소라 하겠습니다. 

주리사지사자석탑. 원래 짝을 잃어버려 요즘 만들어 끼운 부분도 있답니다.

박물관·전시관은 보통 월요일에 문을 닫고 공휴일 일요일은 열지만 함안민속박물관은 함안초교가 운영하는 때문인지 공휴일 일요일은 문을 열지 않습니다. 개방 시간도 평일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와 토요일은 아침 9시부터 낮 1시까지로 짧은 편입니다. 개방 시간대인데도 문이 닫겨 있을 수도 있는데요 이런 경우에는 함안초교 행정실(055-583-4019)로 전화를 하면 열어준답니다. 

이윽고 마지막입니다. 한참을 걸었으니 배가 고프기 십상입니다. 여기 함안면 소재지에는 이에 뭊춘 듯이 한우국밥촌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한우국밥촌에서 가장 이름이 잘 알려진 데는 대구식당입니다. 이번에 가서 먹어봤더니 과연 맛이 좋았습니다. 돼지수육 또한 질기지 않고 부드러워 좋았습니다. 

하지만 대구식당만 음식을 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달라붙을 수도 있을 테고요. 이런 까닭으로 저는 다른 식당으로도 문을 쓱 열고 들어가 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실비단안개님 사진.역시 실비단안개님 사진. 대구식당 소고기수육 써는 모습.

돌아올 때는 어떡하느냐고요? 간단합니다. 도로 걸어도 되고요, 아니면 택시를 불러서 타면 됩니다. 택시요금 별로 비싸지 않습니다. 한우국밥촌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물으면 택시 부르는 전화번호는 제대로 일러준답니다.

(여기서 1km 정도 떨어진 데에 함안향교도 있는데 만약 가신다면 들머리에서 멋진 은행나무를 볼 수도 있고 대성전과 명륜당 등 옛날 교육기관으로 쓰였던, 그리고 구조가 퍽 독특한 건물들도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처럼 함안박물관에서 이수정을 거쳐 함안면 소재지 한우국밥촌까지 5.5km 남짓 이어지는 이 길을 제대로 가꾸면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답니다. 산책하는 길 자체도 아름답고 훌륭하지만 곳곳에 함안의 역사와 문화가 빛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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