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오랜 지인들을 만나러 세종시에 왔다. 우리 일행은 모두 6명.
다들 저녁은 먹고 만난 터라 간단히 맥주를 한 잔 하고, 세종시에서 나름 시설이 좋다는 찜질방으로 갔다.
샤워를 하고 담소를 나눈 후, 시간을 보니 이미 밤 열두 시. 다들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자려다 보니 내 손목에 탈의실 옷장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분실한 건가?'
생각해보니 탈의실에서 찜질복을 입고 열쇠를 거기 꽂아 둔 채 온 것 같았다. 탈의실로 갔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혹시 그 사이에 누군가 이걸 보고 내 지갑이나 가방을 훔쳐 갔다면 어쩌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옷장을 열었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힌 지갑이 반쯤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꺼내서 점검한 결과 역시 도둑이 손을 댄 건 사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현금만 쏙 뽑아가고, 카드나 이런 건 전혀 손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달러화와 유로화, 위안화도 각 한 장씩 있었는데, 그것도 손 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사라진 현금은 4만 원이었다.
참 신사적인(?), 그리고 기특한 도둑님이다. 만일 지갑을 통째로 가져간 뒤, 필요한 것들을 빼내고 나서 지갑을 아무 데나 버렸다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하다.
지갑 주인의 그런 곤란함을 배려한 참 깔끔한 도둑님이다.
고맙다! 도둑이여!
아침에 일어나 일행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신고하여 cctv를 확인하자' '탈의실인데 cctv가 있겠냐' '그래도 얘기는 해야지' 의론이 부분하다. 나는 "내 과실이고, 좋은 경험이니 그냥 넘어가자"고 마무리 지었다.
낮에 마산에서 참석하지 않을 수 없는 행사가 있어 아침 일찍 먼저 찜질방을 나섰다. 세종시에 사는 김용택 선생님이 극구 택시 타는 곳까지 슬리퍼를 신고 나와 배웅을 하신다.
택시 뒷좌석에 오르는 순간 김 선생님은 빠르게 만 원 짜리 두 장을 내 무릎 위에 놓고 택시 문을 닫았다. 카드가 있어 괜찮다고 해도 그래도 현금이 있어야 한단다.
쩝. 선생님에게 또 빚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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