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남숙 시인이 2015년 여름 첫 시집 <우포늪>을 펴냈습니다. 우포늪에 들러서 쓴 시편들이 아니고 우포늪에 들러붙어 살면서 쓴 시편들입니다. 시집에 우포늪만 담겨 있다고 여기면 착각입니다. 오히려 어쩌면 손남숙이 담겨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5년 전 10년 전에는 생태시들이 깨달음을 주제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았다든지, 생태계 조그만 움직임 안에도 우주의 원리가 들어 있음을 깨쳤다든지 하는 것들 말씀이지요. 


아웅다웅 다투는 인간세상을 그냥 그대로 맞물려 흘러가는 생태계와 빗대는 시편들도 많았지 싶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의 스스로(自) 그러함(然)에 빗대어 사람의 삶이 왜 그러하지 못한지, 또 인간사회 질서는 왜 그러함과 어긋나 있는지 등에 대한 한탄으로 이어지기 십상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무슨 구도(求道)를 하는 심정이 거기 담겨 있고, 그런 시를 쓰는 과정은 마치 득도(得道)에 이르는 길처럼 그려지곤 했던 것입니다. 



손남숙 시에는 그러한 득도나 구도나 깨달음이나 깨우침 같은 것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냥 새를 보니까 좋아 죽겠다는 느낌이나 그렇게 새를 살펴보니까 무척 즐겁고 재미있다는 느낌이 펼쳐질 따름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연말과 요즘 들어 이 시집을 읽는 도중에 여러 군데에서 키득키득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재미있는 표현, 산뜻한 착상, 즐거운 관점 등등이 곳곳에서 피어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담아내는 내용이 귀엽고 예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그렇게 파악하고 담아내는 시인의 자세가 그 시편들을 읽으면 정말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인은 지금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시인은 지금 눈 앞으로 펼쳐지는 풍경과 광경에 새삼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우포늪>이 담고 있는 시편들은 거의 전부가 표현 방법이 구체적입니다. 적어도 저는 어디에서도 모호한 표현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어떤 이는 그렇다면 시라기 보다는 산문(散文)에 가까운 작품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시다면 이렇게 말해두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덜 시적이라고 여기기 십상이지만, 저는 그게 편견 또는 선입견인 경우가 훨씬 많다고 봅니다. 


여태껏 수천 년 동안 생산돼 온 동서고금 갖은 시들을 되짚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호하고 추상적이고 어려우면서 아주 시적인 작품도 많지만 분명하고 구체적이고 쉬우면서 아주 시적인 작품도 마찬가지로 많을 것입니다. 


굳이 보기를 들자면 안도현이 쓴 ‘연탄재’, 신경림이 쓴 ‘농무’, 도종환이 쓴 ‘담쟁이’, 기형도가 쓴 ‘엄마 걱정’ 등등이 있을 것입니다. 이밖에도 더 많을 것이나, 제가 잘 알지 못하기에 여기 끄집어내 보여드리기가 어려울 뿐이겠습니다.



그러나 손남숙 이런 시편을 두고 어렵게 여기는 이들도 있을 수 있음을 저는 나름 잘 압니다. 손남숙 시인의 글솜씨나 생각의 깊이 등등이 그만큼 빼어나고 뛰어나지 않은 데서 말미암았을 수도 있습니다. 또 실제로 알아듣기 어렵거나 시인 혼자만 알아차릴 수 있는 표현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아울러 하나 더 말씀드려놓고 싶은 구석이 있습니다. 그것은 글감 또는 소재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바도 작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안도현의 연탄재라든가 신경림의 농악, 도종환의 담쟁이, 기형도의 엄마 등등은 그 소재가 죄다 사람들한테 아주 익숙하거나 매우 친근하게 여겨지는 것들입니다. 


그만큼 감정이입 또는 공감 형성이 이뤄질 여지가 크고 많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손남숙 시집 <우포늪>은 자연을 그리고 있습니다. 자연에서도 늪과 풀과 나무와 새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새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요즘 세상에 자연과 친한 사람은 드뭅니다. 인공 속에서 살다가 한 번씩 나들이를 자연으로 나와서 ‘좋구나!’ 한 마디 하고 돌아가면 그래도 좀 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새하고 친하게 지내는 경우는 드뭅니다. 



추상화된 새는 '하늘을 나는 저 새는 자유롭다'든지 하면서 오히려 친근하게 여겨도, 바로 앞에서 자유가 아니라 먹이를 위해 꼼지락거리는 구체적인 새에 대해서는 친근하게 여기거나 잘 아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형편이 이러니 새 나무 풀 늪을 자세하게 그려 보이는 손남숙 시들이 사람들한테 손쉽게 녹아들기를 바라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저는 여기는 것입니다. 손남숙한테 새는 머리 속을 맴도는 관념이 아닙니다. 새도 늪도 나무도 풀도 그냥 눈 앞에 있는 실체일 따름입니다.


그냥 하나 골라봅니다. ‘파랑새 무정한 사랑’의 전문(全文)입니다. 


파랑새 암컷이 전깃줄에 앉았다

수컷이 조심조심 다가와 옆에 앉는다

부리에 먹이를 가득 물었다

서로 수줍어하네 어머어머 눈치 보네

수컷은 먹이를 꽃다발처럼 물고 고백한다

내 사랑을 받아주오

분위기 딱 좋은데 갑자기 어디선가 부릉부릉

오토바이 소리에 깜짝 놀란 파랑새 암컷

사랑이고 뭐고 달아나기 바쁘다

속상하겠다 수컷


다시 파랑새 암컷이 전깃줄에 앉는다

파랑새 수컷 등장

어째 이상하다 서로 내외하듯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달콤한 순간은 사라지고

깨져버린 분위기

흠 시간은 자꾸 가는데 애가 타는데

수컷이 공중을 한 바퀴 돌고 온다

암컷에게 통통한 왕잠자리를 잡아주고 싶은데

몇 차례나 선회했는데 이런 낭패가 있나

공중에 버글버글하던 잠자리

오늘따라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다

암컷은 실망한 눈치

타이밍을 놓쳤다 이런 바보



무척 재미있습니다. 암수 파랑새 노닥거림을 바라보는 손남숙의 입가에는 웃음이 한 자락 물려 있고 목구멍에서는 탄성이 한 줄기 솟아나고 있습니다. 


새가 아니라 물풀을 그려보인 시도 있습니다. ‘물옥잠은 하트를’이라는 시의 전문입니다. 물옥잠은 늪을 벗어나 흐르는 강물에 들면 스르르 녹아서 없어져 버린답니다. 


흔들리다 보니 사랑을 하게 된 거지

밀려 다니다 보니 동지애가 생긴 거지

발밑에는 버적거리는 흙덩이가

늪에는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고

그러다 보니 서로 꼭 붙어 다니게 된 거지

보라색 꽃을 머리에 이고 늪 밖으로 밀려날까봐

불안했던 거지 강으로 나가기 싫었던 거지

거긴 물옥잠이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의 속도가 있거든

물옥잠의 사랑은 오직 늪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꽃이 왜 모르겠니

서로 어깨를 겯고 지내다 보니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되었지

자꾸 마음이라는 게 간질거리는 거지

비는 계속 오고 발은 푹푹 꺼지고 하트 모양 잎을

꼭 끌어안을 수밖에 


여기서 손남숙은 속이 좀 상한 표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웃고 있습니다. 


손남숙 시인이 펴낸 시집 <우포늪>에는 이밖에도 무척 많은 재미와 즐거움과 웃음이 내장돼 있습니다. 그 웃음과 즐거움과 재미는 뒤탈도 없이 깔끔합니다. 물론 안타까움이나 아픔도 통 없지는 않습니다만.


푸른사상. 117쪽. 8000원.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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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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