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거제 내도 거칠 것 없는 산·바다·바람

김훤주 2015. 11.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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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 (5) 


8월은 혹서기라 건너뛰고 9월 16일로 날을 잡아 떠난 생태역사기행이었습니다. 목적지가 원래는 거제 지심도였어요. 지심도는 알려진 대로 천연으로 이뤄진 동백나무숲이 그지없이 아름답고 멋지답니다. 


아울러 진해만 들머리에 툭 튀어나와 있다는 지형 특성으로 말미암아 일제강점기 1930년대 들어선 일본군 포대 군사시설도 잘 남아 있습니다. 근대역사유적지이기도 한 셈입니다. 


지심도는 또 물이 적지 않게 나고 줄곧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원래 살던 조선 사람들을 쫓아낸 일본군이 그 물을 갖고 수력발전을 하기까지 했다고 하네요. 덕분에 지심도를 도는 탐방로 어느 어귀에는 내륙 산골에서 볼 수 있는 습지 생태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지심도는 이렇듯 생태적으로 아름답고 독특할 뿐 아니라 역사유적까지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래서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주관하는 생태역사기행의 취지와 딱 들어맞는 지역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돕지 않았습니다. 일행의 지심도 탐방을 허락지 않는 날씨를 안겨줬습니다. 장승포에 있는 동백섬지심도여객선터미널에다 예약까지 했건만, 바로 전날만 해도 아무런 기상특보도 없었는데, 당일 아침이 되자 바람이 세고 물결이 높아 배가 뜰 수 없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이럴 때는 사전 대비가 없으면 난감해지는 법이지요. 지심도 가는 뱃길이 뜻하지 않게 자주 끊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꿩 대신 닭으로 내도(안섬)를 예비 탐방지로 꼽아두고 있었기에 다행이었습니다. 


탐방로 들머리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이러면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지 않나요? 같은 날씨인데도 어째서 지심도 가는 배는 뜨지 못하고 내도 가는 배는 뜰 수 있을까? 답은 뜻밖에 간단하답니다. 지심도는 바깥바다에 있고 내도는 안바다에 있기 때문이지요. 


바깥바다는 같은 날씨라도 물결이 높게 일고 바람이 세게 불지만 안바다는 그렇지 않습니다. 장승포에서 지심도 가는 뱃길은 불어오는 바람과 밀려드는 물결을 걸러줄 만한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구조라에서 내도 가는 뱃길은 서이말(鼠耳末=쥐귀끝)의 반도처럼 튀어나온 지형이 그 막아주는 구실을 톡톡히 해준답니다. 


내도 대숲길.


이런 사정은 옛날에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이를테면 임진왜란 당시 주요 해전은 죄다 너른 바다가 아니고 좁고 암초도 많은 해협(=목)에서 벌어졌습니다. 저 유명한 한산대첩은 통영과 거제 사이 좁다란 견내량에서 일어났습니다. 


원균이 목숨을 거둔, 조선 수군 유일 패전인 칠천량해전도 그러합니다. 바로 뒤 전세를 단박에 뒤집은 명량(鳴梁=울돌목)해전도 마찬가지이며 이순신 장군이 목숨 바쳐 승리를 일군 임진왜란 7년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도 똑같았습니다. 


당시 왜군이 너르디 너른 바깥바다를 버려두고 좁디좁은 안바다로 기어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고 이는 지형지물을 상대적으로 잘 알게 마련인 조선 수군한테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던 것이지요. 


시원하게 펼쳐지는 바다.


이렇게 해서 '꿩 대신 닭'으로 골라잡은 내도였지만 그 '닭'은 결코 '꿩'에 못지 않았답니다. 바람이 평소보다 조금 거세졌다 하지만 오히려 시원함을 더해주는 정도였습니다. 오히려 맞은편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공곶이의 바닷가와 산자락 풍경은 지심도에서는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었습니다. 


또 공곶이 쪽을 버리고 계단을 올라서면 왼편으로 출렁출렁 바다가 한 번 바라봄에 거칠 것 없는 기세를 보여줍니다. 그러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나무로 옷치레를 하지 않고 거친 굴곡을 그대로 드러낸 바위들이 파도와 뒤엉기는 모습이 눈맛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내도 동백나무.


게다가 내도 동백숲은 지심도 동백보다 사람 손을 덜 탔기에 그 자연스러운 맛이 훨씬 더했습니다. 생태를 전공하는 이들로부터 내도가 지심도보다 생태면에서는 오히려 낫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이쪽저쪽 기웃대다 보니 그 말에 금세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굳이 더 좋다 못하다를 가릴 필요야 없지만, 동백이 충분히 잘 우거져 있으면서도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지심도보다 좀더 다양한 것 같이도 여겨졌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시간이었답니다. 창원 만남의 광장에서 아침 8시 출발해도 구조라보건진료소 앞에서 11시에 떠나는 배밖에 탈 수 없는데, 돌아나오는 배편이 촘촘히 있으면 좋으련만 오후 1시 다음에는 오후 3시였습니다. 그래 두 시간만에 한 바퀴 돌 수밖에 없어 너나없이 걸음을 서둘러야 했습니다. 


그래도 할 일은 다해서 끼리끼리 그늘이 시원하고 경치도 좋고 자리도 평평한 데를 골라 앉아 가져간 김밥을 먹으며 얘기를 주고받는 즐거움도 누렸습니다. 발 빠른 어떤 이는 거기 바다에서 잡은 낙지를 삶아달래서 소주까지 한 잔 곁들였고 거기 사람들이 잡아 말린 멸치 등등도 몇 무더기 팔렸습니다. 시간이 30분만 더 있었어도 내도 사람들 매상이 좀더 올랐을 텐데. 


아주 한적한 내도 탐방로.


그렇지만 한적함은 아주 대단한 매력이었습니다. 아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내도지만, 그래도 휴일이나 주말에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밀려듭니다. 너무 많이 알려져 있는 지심도는 평일에도 사람이 쏟아지지만 내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 일행이 전부였고 앞에도 뒤에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내도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정한 국립공원 명품마을이라 합니다. 제1호 전남 진도군 관매도(다도해해상국립공원)와 더불어 2012년 2월 제2호로 올랐다지요. 


바람의 언덕이 있는 도장포마을 동백숲.


내도에서 일찍 나오는 바람에 돌아오는 길에는 시간 여유가 생겼습니다. 덕분에 예정에 없었던 도장포 바람의 언덕에도 잠깐이나마 들를 수 있었습니다. 길 따라 내려가 다시 한 번 바람을 쐰 다음 일행은 통영 중앙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중앙시장은 이웃한 동피랑마을이나 통제영 일대와 어울려져 있어 한층더 명품이 됐고 붐비게 됐습니다. 이날은 추석을 앞둔 때문인지 사람이 좀더 붐비고 활기가 좀더 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생선이나 건어물 따위 시장에 볼일이 있는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고 일없이 어슬렁거리는 사람도 있었으며 잠깐이나마 동피랑에 올라갔다 오는 일행도 있었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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