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내가 집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15. 8. 1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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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본능과 집밥 신드롬이 불편하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와 검정색 사각형 상에서 겸상을 했고, 누나와 여동생들은 둥근 도레상에서 따로 밥을 먹었다.


어머니는 정지(부엌)와 연결된 샛문을 오가며 음식을 날랐고, 부뚜막에서 대충 때우거나 도레상 귀퉁이에서 남보다 늦은 밥을 먹기도 했다. 그렇게 밥을 먹다가도 아버지가 먼저 수저를 놓으면 벌떡 일어나 숭늉을 떠다 바쳤다.


산이나 들에서 농사일을 하다가도 저녁때가 되면 30분쯤 먼저 가서 밥을 차렸다. 새벽에 눈을 떠도 어머니는 항상 먼저 일어나 정지에서 달그락거리고 있었다. 이게 이른바 '집밥'에 대한 내 기억이다.


나처럼 어린 시절을 보낸 남자들은 '집밥' 하면 으레 엄마가 해주는 밥으로 생각한다. 그걸 모성 본능에 따른 당연한 일로 여기기도 한다.


정말로 모성애는 여성의 본능적인 감정일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상상력 사전>에서 단호하게 "그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다. 19세기 말까지 서양의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대부분의 여자들은 자녀들을 유모에게 맡겨놓고는 더 이상 돌보지 않았다. 시골의 아낙네라고 해서 아기에게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녀들은 아기를 얇은 천에 돌돌 말아서 아기가 춥지 않도록 벽난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벽에 매달아 두곤 했다고 한다.


집밥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TV 프로그램 포스터.


엘리자베스 바댕테르 또한 <만들어진 모성>에서 모성 본능은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양 국가의 중상주의 정책으로 노동력이 중요하게 되자 국가가 여성에게 모성을 강요하며 그것을 본능으로 포장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 장남인 나에게 이렇게 털어놨다. "평생 시어머니와 남편, 자식만을 위해 살아온 세월이 억울하다"고. 나도 어머니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함께 울었다.


요즘 나는 집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시장을 봐와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하고 상을 차리고, 먹은 후에도 남은 반찬을 담아 넣고 설거지를 하고 음식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이 얼마나 귀찮고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사와서 해먹고 싶은 음식이 있을 때 외엔 '집에서 먹자'는 얘길 절대 꺼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요즘 세간의 집밥 신드롬이 참 불편하다. 집밥을 해먹여야 좋은 엄마 혹은 좋은 부모라는 인식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다.


베르베르는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아이들이 좀 컸다 싶으면 어머니가 자기들을 제대로 돌봐 주지 않았다며 원망하기 일쑤"이며 "심지어는 정신분석가를 찾아가서 어머니에 대한 자기들의 유감과 원망을 마구 쏟아내기까지 한다"고 꼬집는다.


아이들아. 그냥 대충 먹어라. 특히 맞벌이 부모라면 그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란다. 집밥을 잘 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널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란다. 엄마도 자기 삶이 있고, 아빠도 자기 삶이 있단다. 엄마 아빠가 행복해야 널 더 사랑해줄 수도 있지 않겠니?


그리고 부모들이여. 집밥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자기 삶의 행복부터 먼저 찾아라. 자식에게 출세만 강요하지 말고, 부자가 아니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걸 가르치자. 내 자식만 챙기지 말고, 날 낳아 길러준 부모나, 나보다 힘든 이웃도 좀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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