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기자인 나도 기자를 믿지 않는다

기록하는 사람 2008. 7. 1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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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자이긴 하지만, 언론은 물론 같은 기자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팩트라도 교묘히 비틀어 쓸 수 있고, 상황과 조건만 주어진다면 팩트 자체를 180도 뒤바꿔버리는 것도 가능한 게 기자이며 언론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가 쓴 책에도 있는 내용이지만, 마침 주어진 주제가 ‘내가 보는 언론’인지라 다시 한 번 예를 들지 않을 수 없다. 1991년 경남 진주에서 일어난 이른바 ‘지리산결사대 사건’이 그것이다.

그 해 가을 진주전문대 총학생회장 선거가 있던 날이었다. 이 학교 운동권 후보 측의 신변보호 요청에 따라 강의실에서 얌전히 대기 중이던 진주·충무지구총학생회협의회(진충총협) 소속 경상대 학생 33명이 각목으로 무장한 비운동권 후보 측 학생들의 습격을 받았다. 그들은 아무런 대항도 못한 채 일방적인 폭행을 당했다.
※참고 : 지리산결사대 사건의 진상(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6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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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지리산결사대 사건 신문보도.

그러나 뒤늦게 출동한 경찰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완전히 바꿔치기해 버렸다. 경찰은 폭력 피해자 19명을 거꾸로 ‘타 학교에 난입해 난동을 부리고 폭력을 행사했다’며 구속했다. 정작 무기(각목)를 사용하여 ‘특수폭행’ ‘감금폭행’ ‘집단폭행’의 중죄를 범한 가해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180도 팩트 바꿔치기도 서슴치 않는 언론

문제는 이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였다. 지역일간지는 물론 조선·동아·중앙 등 전국일간지와 방송사들은 아무런 확인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경찰의 거짓 발표를 받아 대서특필했다. ‘극렬·소수화 운동권의 전위대, 경상대 지리산결사대의 정체’라는 식의 특집해설기사도 줄을 이었다.

전국 모든 언론의 완벽한 180도 왜곡이었고 100% 오보였다. 강의실에 가만히 있던 학생들을 ‘개표장에 난입’했다고 한 것도 오보였고, 얻어맞기만 한 피해자들을 폭력범으로 둔갑시킨 것도 오보였다. 비열한 언론이었고, 비겁한 기자들이었다.

경찰의 발표를 그대로 보도한 <동아일보> 91년 10월 11일자 사회면 기사를 보자.

“10일 오후 5시반경 진주시 하대동 진주전문대 201호 강의실에서 진행된 이 학교 총학생회장 선거 개표장에 경상대 써클인 지리산결사대 소속 유형민군(19.경상대 무역과 1년) 등 대학생 33명이 쇠파이프와 최루탄을 갖고 들어가 20여분동안 난동을 부렸다. 경상대생들은 진주전문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운동권 후보인 천재동군(19.전자계산과 1년)의 낙선이 예상되자 선거무효를 유도하기 위해 강의실 유리창 2장을 깨고 들어가 최루탄 1발을 터뜨리고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이 기사는 짧은 2개의 문장 대부분이 오보로 구성돼 있다. 사실보도의 구성요소를 6하원칙이라고 할 때 이중 사실과 부합되는 것은 단 한가지도 없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우선 언제(when)에 해당하는 ‘오후 5시반경’이 틀렸다. 학생들간에 충돌이 일어난 시간은 오후 4시께였다. 또 어디서(where)에 해당하는 장소도 틀렸다. 경상대생들은 개표장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개표장과 다른 101호 강의실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누가(who)에 해당하는 난동과 폭력을 주체도 오히려 뒤바뀌었다. 무엇을(what), 어떻게(how)에 해당하는 행위도 잘못된 것이다. 주체가 바뀌었으니 유리창을 깨고 최루탄을 터뜨리고 쇠파이프를 휘두른 행위도 당연히 틀릴 수밖에 없다. 이유를 설명하는 왜(why)도 마찬가지다. 기사는 ‘운동권후보의 낙선이 예상되자 선거무효를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나, 실상은 그 반대였다. 심지어 천재동 후보의 나이도 안맞다. 그는 1학년이었으나 늦깍이 입학으로 실제나이는 24세였다.

※참고 : '지리산결사대' 사건 당시 언론의 왜곡보도(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6432)

그 때 나는 현장을 목격한 유일한 기자였다. 모든 사람이 임금님의 옷이 보인다고 외치는 속에서 혼자 발가벗었다고 말해야 할 상황이었다.

80년 광주가 그랬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91년 진주도 그랬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이런 일은 찾아보면 부지기수다. 요즘의 촛불집회에 대한 조중동의 보도도 마찬가지다. 수십만 명의 군중 속에서 일부의 일탈적인 폭력과 철저히 명령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경찰의 조직적 폭력을 동일하게 배치하는 것도 명백한 왜곡일진대, 아예 시민의 폭력만 부각시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하나. 앞으로도 언론의 이런 왜곡은 얼마든지 되풀이될 것이다.

솔직히 옛날엔 군부독재가 무서워서 그랬다고 이해하자. 지금도 입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사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기자들도 있다고 치자.

군부독재의 감시나 억압도 없고, 사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기자들도 그러는 건 어떻게 봐야 하나. 최근 불거진 부천시청 출입기자들의 문제가 과연 각 신문사 사주들의 압력 때문에 그랬을까? 사주의 압력이 없다면 모든 기자는 양심적일까?

비열한 언론, 비겁하고 치사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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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도 돈의 노예가 된 것일까.

나보다 훨씬 젊고 5·6년차밖에 안된 기자들이 해괴한 논리를 들먹이며 촌지나 선물, 공짜해외여행을 합리화하는 것도 봤다. 나보다 월급이 2~3배나 많은 서울지역 신문이나 방송사 기자들이 추접스럽게 10만 원짜리 촌지에 목을 매고, 1~2만 원짜리 공짜 초대권을 서로 챙기려고 다투는 것도 봤다. 기자이기 이전에 역겨운 인간들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경남도민일보>는 그나마 이런 역겨운 인간들을 안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속내는 어떨지 모르지만 드러내놓고 그럴 수 있는 조직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조직도 언제, 어떻게 바뀔 지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으려면 적당한 타협은 어쩔 수 없다는 조직보존논리 때문이다. 또한 조직의 정체성도 결국 사람이 만들고 지켜가는 것일진대, 똑바른 정신을 갖춘 신입기자들을 대학에서 계속 수혈 받을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경영이 계속 어려워지면 우리의 의지와 노력부족을 탓하는 대신 대자본을 영입하자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다.

그런 상황까지 간다면 깨끗이 실패를 인정하고 장렬히 전사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문의 정체성보다 구성원의 생존권이 우선이라면 그 역시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그 땐 절이 싫은 중이 떠날 수밖에….

기자인 나도 이렇게 언론과 기자를 믿지 못하는데, 상식이 있는 시민들이 어떻게 그들을 믿겠나.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발행하는 <시민과 언론>에 실렸던 글을 일부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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