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 작가/조현오의 구겨진 제복

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기록하는 사람 2015. 6. 1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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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후마니타스)의 작가 서형이 이번엔 조현오를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허위발언'으로 8개월 징역을 살고 나온 바로 그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다.


서형 작가는 사법피해자 취재를 전문으로 해왔다. 취재 중 조현오 전 청장의 다른 면에 대해 듣게 되었고, 그의 진면목을 취재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조현오'라는 이름 석자는 차명계좌 발언 하나만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 있는 사람. 이명박 정부의 경찰청장이었다는 것으로도 다른 쪽 진영에선 공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몇몇 매체에 연재를 타진해보았으나 모두 난감한 기색으로 거절했다. 그러나 블로그 '지역에서 본 세상'은 그런 세간의 시선에 개의치 않기로 했다. 글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오로지 독자의 몫이니까. 근거없는 비난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글만 아니라면 이 블로그는 글쓰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편집자 김주완]



구겨진 제복 10화. 조현오와 황운하, 디도스 사건 수사


조현오는 서울구치소 안에서 이경백과 마주쳤다. 구속된 김광준 검사도 거기 있었다. 조현오 구속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 중에 황운하도 있다. 그는 경찰 안에서 ‘수사권의 상징’으로 불린다. 그리고 이경백, 김광준과 관련이 깊다.


황운하는 경찰대 1기 출신으로 1985년 입문했다. 2003년 용산경찰서 형사과장일 때 경찰이 검찰 비리를 직접 수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른바 법조브로커 ‘오달이’ 사건이다. 수사는 체포, 압수수색 등 강제력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인신구속, 압수, 수색에는 반드시 법원 영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찰은 법원에 영장을 신청할 수 없다. 반드시 검찰 힘을 빌려야 한다. 수사권 핵심은 경찰이 피의자를 구속하거나 증거물을 압수하기 위해 영장청구권을 갖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황운하가 신청한 ‘오달이’ 계좌 추적 영장을 수차례 기각했다.


2005년 경찰청장인 허준영은 황운하를 경찰청 수사권개혁팀장으로 불러들인다. 하지만, 대통령 노무현이 공약했던 경찰수사권은 국회 입법화 과정에서 지지부진했다. 그동안 경찰이 부당함에 스스로 맞서야 한다는 주문도 불거졌다. 황운하는 2005년 전국 경찰에 공문을 보낸다. 공문에는 검찰과 잘못된 관행을 14개 항목으로 정리하고 앞으로 거부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그 중에는 ‘검사 면전 인치 요구 거부’도 있었다. 공문은 수사구조개혁팀장 이름으로 뿌렸다. 청장인 허준영에게 보고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공문을 받고 일선에서 나설 사람이었다. 누가 총대를 멜 것인가.


충남지방경찰청 소속 경감 한 명이 시발점이 됐다. 대전지방검찰청이 전화로 긴급체포한 용의자를 데려오라고 하자 거부한 것이다. 경감은 피의자 인적사항에 검찰 관련자가 눈에 띌 때부터 거부감이 들었다. 마침 경찰청에서 온 공문도 힘이 됐다. 검사 요구를 거부한 그는 검찰에 직무유기 등으로 기소됐고 재판에 넘겨졌다.


2006년 9월 5일 대전서부경찰서 서장이 두 번째였다. 그는 2006년 이택순이 경찰청장으로 부임하면서 경찰청 수사권개혁팀장에서 대전서부경찰서 서장으로 자리를 옮긴 황운하였다. 그는 다시 경찰·검찰 사이 갈등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으로 좌천된다.



2007년 4월 한화 회장인 김승연이 보폭 폭행을 저지른다. 이후 한화 고문과 경찰청장인 이택순이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고, 이택순은 결백을 증명하고자 검찰에 수사를 맡기겠다는 뜻을 내비친다. 황운하는 경찰 내부 게시판에 청장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고 다시 징계를 당했다.


2010년 대전지방경찰청 생활안전과장이던 황운하를 서울청 형사과장으로 발탁한 이는 조현오였다.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되자 황운하를 경무관으로 승진 인사하고 경찰청 수사기획관에 전진 배치한다. 수사기획관은 수사국이 맡는 중요 사건에 대해 수사 업무를 챙기는 자리였다. 당시 대검찰청도 중수부장이 수사기획관을 거느렸다.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지능수사대와 범죄정보과 등을 지휘한다. 모두 조현오가 경찰청장이 되면서 만든 새로운 기능이다. 조현오는 검찰 중수부와 범죄정보과 역할을 맡을 부서가 경찰에도 있어야 서로 감시·견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능범죄수사대는 고위공무원 비리, 경제사범과 같은 대형 사건을 인지해 직접 수사한다. 범죄정보과 역시 검사 등 비리 공직자 범죄 정보를 캐내고자 만든 기구다.


황운하가 수사기획관으로 처음 맡은 사건이 이른바 ‘디도스 사건’이다. ‘디도스 사건’은 2011년 10월 26일 보궐선거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와 서울시장 후보 박원순 홈페이지가 사이버테러를 당한 사건이다. 사건 당일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서 수사에 들어갔다. <나꼼수>는 10월 29일 26회 방송에서 이 내용을 짚었다. 선관위 홈페이지 전체가 마비된 것이 아니라 일부 메뉴만 작동하지 않았다는 증언을 바탕으로 단순 사이버테러가 아니라 선관위 내부자 공모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경찰은 12월 1일 디도스 공격을 한 강 씨와 일당 3명, 이를 지시한 공현민을 검거했다. 공현민은 한나라당 국회의원 최구식의 수행비서관이었다. 형사소송법을 보면 경찰은 피의자 구속 열흘 안에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야 한다. 이쯤이면 누구나 예상하는 앞날이 보이기 시작한다. 당시는 경찰과 검찰이 ‘수사권 조정’을 놓고 어느 때보다 예민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경찰 수사 허점을 놓칠 리 없었다.



선거 부정 관련 사건은 여야가 날카롭게 맞설 수밖에 없고 언론도 중요하게 다루는 사안이었다. 만약 경찰 수사 결과가 각종 의혹을 잠재울 만큼 명확하지 않으면 야당은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요구한다.


경찰은 2011년 12월 6일 국회의장인 박희태의 전 비서 김태경을 소환한다. 공현민과 김태경은 분명히 돈거래가 있었다. 사건 발생 전에 1000만 원, 사건 발생 후 9000만 원 등 모두 1억 원이 오갔다. 김태경은 사건 관련성을 모두 부인했다. 경찰은 사건 이후 오간 9000만 원은 범죄와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사건 직전에 건넨 1000만 원은 충분히 의심을 살만 했다. 그러나 공모 증거가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황운하는 이를 ‘대가성’으로 몰아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이제 수사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민감한 사안이인 만큼 누구를 비호한다는 인상을 줘도 안 된다.


황운하는 12월 9일 자신감 있게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시간제한이 있었던 점을 상기하거나 미흡한 부분은 검찰 수사에 넘기는 출구 같은 것을 애초부터 만들지 않았다.


“공 씨 단독범행이며 우발적인 사건입니다.”


이 발표가 나가자 여론은 경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다고 몰아붙였다. 경찰과 다른 검찰 판단도 축소·은폐 비난 여론을 부추겼다. 검찰로 사건이 송치되자 서울중앙지검은 첨단범죄수사2부를 주축으로 40여 명이 참여하는 수사팀을 꾸린다. 검찰은 2011년 12월 30일 박희태의 전 비서인 김태경을 구속한다. 당시 <나꼼수>는 32회 방송에서 이 내용을 언급하며 경찰 수사를 비판한다.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렸을 때 이미 뭔가 잡은 것이 있다. 1억은 검찰이 거둔 쾌거.”


하지만, 황운하가 예상한대로 검찰이 기소한 김태경은 2013년 3월 29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는다. 하지만, 그때는 사건에 대한 관심이 이미 사라진 시기였다.


당시 언론은 12월 16일 조현오가 준비한 기자간담회를 주목했다. 보도를 보면 조현오가 기자간담회에서 함께 앉은 황운하를 질책했다고 나온다. 조현오가 배후를 거론하며 단독범행이 아닐 가능성을 열어두려 하자 황운하는 경찰 수사가 옳다고 받아친다. 조현오는 “가만 좀 있어봐라”며 황운하를 면박했다. 이를 언론은 ‘극단적 언쟁’, ‘적전 분열 양상’ 등으로 정리했다.


조현오와 황운하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당시 경찰 조직 안에서는 황운하를 인사 조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미숙한 발표가 조직에 너무 큰 부담을 줬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도 조현오는 황운하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황운하는 자신이 발표한 수사 내용 근거를 더 설명하려는 듯했다. 길게 얘기해봤자 부작용이 더 커질 듯했고 조현오는 말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여론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오히려 화살은 조현오를 겨누기 시작했다. 조현오가 경찰 수사 발표 전인 12월 7일 청와대 정무수석인 김효재와 나눈 두 차례 전화통화를 문제 삼은 것이다. 경찰은 행정안전부 소속이고 행정안전부는 정무수석 소속이므로 김효재가 조현오에게 전화한 게 이례적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기가 문제였다. 당장 청와대가 돈 거래 부분을 발표하지 못하도록 압박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청와대 압력을 받은 조현오가 황운하에게 지시했고 막판에 혼자 살겠다고 황운하에게 모든 책임을 씌웠다는 해석이 나왔다. <나꼼수> 32회 방송 내용이다.



“경찰이 수사를 잘 해놓고 마지막 발표를 하는데 있어서 망가지고 있습니다.”(주진우)

“조현오 청장 때문이야. 청와대에서 오더가 왔어도 조현오 청장이 막았어야지.”(김어준)


그러나 황운하 예상대로 검찰 수사도 경찰과 차이가 없었다. 2012년 3월 26일 디도스 특검이 출범한다. 특검보 3명과 파견검사 10명을 비롯해 100여명이 특검에 참여했다. 특검도 윗선이 수사 과정에 개입했는지 파악하고자 4월 19일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직원 2명을 불러 조사했다. 그리고 5월 21일 수사국장 강신명과 수사기획관 황운하, 마지막으로 5월 23일 조현오를 불러 조사한다.


조사 순서에는 의도가 있다. 우선 수사진을 조사한 내용은 상급자를 캐는 데 활용된다. 조사는 계단식으로 진행됐지만 언론이 원하는 건더기는 나오지 않았다. 특검은 2012년 6월 21일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먼저 김효재를 불구속 기소했다. 수사 상황을 국회의원인 최구식에게 알려줬다는 혐의였다. 하지만, 새로운 내용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의혹 무마용’, ‘혈세 낭비’라는 비난이 특검을 향했다.


당시 사건 관계자는 여전히 디도스 사건을 ‘공현민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단독범행’으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당시 <나꼼수>가 의혹을 제기한 근거가 됐던 증언들은 어떻게 봐야할까? 일반적으로 수사 담당자는 ‘진술’보다 과학을 우선했다. 예를 들어보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물속으로 가라앉은 후에도 탑승한 학생에게 전화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하지만, 경찰이 통신기록을 조회한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전 세모그룹 회장인 유병언이 변사체로 발견된 시점을 둘러싼 의혹도 떠올려보자. 유병언 변사체가 6월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 이전에 발견됐다는 진술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경찰 수사를 불신하는 목소리는 높아졌다. 하지만, 경찰은 전산으로 남은 112 신고 시각과 사건 처리 기록을 바탕으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디도스 사건에서 <나꼼수>가 선거관리위원회 내부 공모 의혹을 제기한 근거가 된 진술을 보자. 이용자는 인터넷으로 홈페이지 서버에 접속한다. 화면에서 늘 같은 부분은 홈페이지 서버에 저장돼 있고, 바뀌는 부분은 데이터베이스 서버에서 가져와 화면에 표시된다. 당시 <나꼼수>는 디도스 공격 중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화면 일부(데이터베이스 서버에서 가져오는 ‘투표소 정보’ 부분)만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누군가 홈페이지 서버와 데이터베이스 서버 연결을 차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가 분석한 결과는 홈페이지 서버와 데이터베이스 서버 사이 통신은 정상이었다. 이러한 결론은 검찰수사와 특검을 통해서도 다시 확인됐다. <나꼼수>가 ‘선관위 내부 공모’를 의심한 것은 일부 화면은 보이고 일부 화면은 보이지 않았다는 진술이 ‘진실’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경찰이 말하는 과학수사를 바탕으로 검토하면 거꾸로 그런 진술이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 


공현민을 비롯해 몇 명이 모여 벌인 일이 여야 정쟁, 종편 출연 같은 변수를 맞으며 순식간에 정국에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황운하에게는 권력을 비호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경찰 수사에서 윗선으로 지목된 박희태, 최구식 모두 디도스 사건과 관련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황운하조차도 생각한 그림이 아니었다. 황운하가 첩보를 입수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수사가 바로 ‘김광준 검사’ 사건이다.


(다음11화-형사소송법 개정 그 이후)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블로그 4day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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