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황석영이 방배추 앞에선 맥을 못추는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15. 2. 28. 11:46
반응형

방배추(본명 방동규), 백기완, 황석영을 일컬어 '조선 3대 구라'라고들 한다. 이른바 방구라, 백구라, 황구라다.


유홍준 교수가 지난 2011년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황석영도 방배추 앞에선 입을 닫는다"고 말했다는데, 과연 그 배경은 뭘까.


방배추 어른이 쓴 <배추가 돌아왔다>는 책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황석영이 제압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가 황석영한테 ‘야, 너 2개월 노가다 생활을 하고 노동을 안다고 해?’ 하고 물으면 바로 꼬리를 내려버려. 노동이란 내 몸을 굴리지 않으면 바로 굶어죽을 수도 있는, 그렇게 절박하고 가혹한 거야.


먹물들이 몇 개월을 해본 다음에 ‘아, 그거!’ 하는 것과는 너무도 달라. 그건 관념에 불과한 거야. 하긴 그런 경험을 해봤다면서 바닥민중을 잘 안다고 말하고, 노동문제연구소 같은 간판을 잘도 내걸두만. 헛헛헛!"

-방동규 조우석 <배추가 돌아왔다2>(2006. 12, 다산책방) 22쪽


방구라 어른(왼쪽에서 두 번째) 앞에선 채현국 어른(오른쪽)도 다소곳해진다. @김주완


이들 3대 구라 외에 이른바 '신흥구라'도 있다.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 문학평론가 이어령, 미술사학자 유홍준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방배추 어른은 그들을 '교육방송' 쯤으로 치부해버렸다. 다음은 황석영의 전언이다.


"배추 형님, 지금 세상에서는 조선의 3대 구라는 모두 갔다고 합니다. 대신 백구라, 방구라, 황구라를 뛰어넘은 신흥 구라들이 몰려오고 있지요."

"신흥 구라라. 맨 앞줄에 선 친구가 누군데?"

"요즘 유홍준이 만만치 않습니다. 백만 권 이상이 팔려나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다음에 유명해져서 동네방네에 라지오를 풀고 다니면서…."

"인마, 걔가 무슨 구라꾼이야? 글쎄, 교육방송쯤이면 딱이겠지."


황석영은 그 일로 '조선의 3대 구라' 위치가 흔들리기는커녕 더욱 확고부동해졌다고 덧붙였다. 그 바람에 김용옥, 이어령, 유홍준은 '교육방송', '지방방송'으로 밀려나버린 결과가 됐다.

-앞의 책 174쪽


방배추 어른이 최고로 치는 '대륙형 구라'는 백구라다. 그는 "백기완은 일단 스케일이 엄청나고 웅장하면서도 때론 비감에 찬 맛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황석영에 대해선 "질척거리는 육담(肉談), 여자를 꼬여 재미보는 얘기로 한몫을 한다 해서 '양아치 구라'로 분류된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선 사람들이 '인생파 구라'로 분류한다고 말했다.


한 선술집에서 방배추 어른. @김주완


다음은 방배추 어른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표현한 대목이다.


"고백하지만 나는 메시지가 없는 사람이다. 사실 내 삶 자체가 그러하기도 하고 거창한 철학 따위를 앞세우려는 마음 같은 것도 전혀 없다. 더구나 자기미화는 내 체질도 아니다. 하지만 숱한 고비와 기회가 다가올 때마다 기꺼이 맨몸 하나를 내던져 새로운 세상을 뜨겁게 만났고, 부딪쳤다는 점 하나만은 자부한다.

나를 건달, 주먹, 깡패, 협객 뭐라고 해도 상관없지만, 그냥 '뜨거운 내 인생'을 찾아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사람으로만 받아줬으면 좋겠다."

-앞의 책1권 머리말 중


"나는 주먹으로 이름깨나 날렸지만 이들과는 다르다. 그리고 인생 선배 뻘인 시라소니나 김두한과도 다르다. 나에게 주먹, 그리고 싸움은 세상살이의 한 기술에 불과했다. 50년대 주먹들이 정치적으로 우파라면 나는 차라리 좌파에 가깝고, 이후 무리를 이루며 활동한 조폭에 비하자면 나는 철저히 '나홀로 주먹'이었다."

-앞의 책 1권 137쪽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