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계승사 보살 마음씀도 물결무늬로 남을까

김훤주 2014. 4. 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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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승사 엄청난 물결무늬화석

 

고성군에 있는 계승사(桂承寺)라는 절간을 다녀왔습니다. 여기 있는 1억년 전 물결무늬 화석이 대단하다는 얘기를 어디서 전해 들었거든요. 마침 올해 지역 역사·문화를 주제로 삼아 책을 한 권 낼 계획도 있고 해서 책 펴낼 때 쓰려고 사진을 찍으러 갔던 것입니다.

 

고성은 은근히 골짜기랍니다. 이를테면 해발 1000m를 넘는 높은 산은 없지만 바다와 바로 붙어 있어서 500m나 600m짜리 산도 깊고 그윽합니다. 계승사 있는 골짜기도 그러했습니다. 마을에서 1km 올라가면 된다는 표지를 봤는데 올라가다 보니 끝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가서 봤는데, 정말 물결무늬가 좋더군요. 아주 넓기도 하고 그 하늘하늘 물결이 허트러지지 않고 제대로 남았더군요. 같은 바위에 공룡 발자국 화석도 있고 빗방울 화석도 있다는데, 일부러 찾지는 않았습니다. 다음에 한 번 더 오고 싶을 때 핑계로 써 먹으려고요. 하하.

 

 

계승사는 신라시대부터 있어온 절간이라는데, 그런 오랜 자취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는데, 그랬다가 1960년대 들어 스님 둘이 나서 절을 지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둘러보니 대광보전을 비롯해 들어앉은 몇 칸 집들이 가파른 벼랑에 올라서 있었습니다.

 

엄청난 바위산인 것 같은데, 그런 바위들을 깎아내고 떼어낸 끝에 지은 모양이었습니다. 다시 물결무늬 화석으로 돌아가 얘기하자면, 아직 모습을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여기 있는 바위들이 그와 같은 무늬를 안으로 품고 있는 것이 아주 많지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그 물결무늬 화석도, 이처럼 절간을 짓느라 바위를 파내고 떼어내는 과정에서 노출되게 됐음이 틀림없거든요. 어쨌거나 이렇게 좋은 풍경 눈에 잘 담고 절문을 나섰습니다.

 

2. 떡도 주고 밥도 주고 바나나까지 챙겨주는 보살님

 

 

계단을 다 내려갔지 싶은데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들고 가라고 떡 좀 챙깄는데 벌써 다 나갔네. 우야노, 들어올라요? 아니면 봉지에 좀 싸 주까?” 저는 두 말 않고 오던 길 돌아서서 부리나케 올라갔습니다.

 

예전 같으면 무안스러워하고 당황스러워했겠지만, 호의는 절대 거절하는 법이 아니라는 얘기를 누군가에게서 듣고부터는 일부러라도 반갑게 그런 것들을 맞이하게 바뀌었던 것입니다. 올라가니 스테인리스 쟁반에 호박떡을 비롯해 세 가지 떡이랑 바나나 두 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처음 받은 떡과 바나나.

 

평상에 앉아 반갑게 떡을 한 조각 입에 무는데 보살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밥은 드싰는가?” 먹었을 턱이 없습지요. 아직 정오에서 10분 정도 모자랄 때였으니까요. 그래 그냥 웃음을 배시시 베어 물고 있었더니, 바로 밥을 차려 들고 오셨습니다.

 

공양은 밥상에 놓고 하는 것 아니라면서, 또다른 쟁반에 푸성귀랑 김치랑 절인 깻잎이랑 채워서 또 나물도 비벼 먹을 수 있도록 잔뜩 담아 갖고 오셨습니다. 저는 입이 찢어졌습니다. 제가 이름을 모르는 나물 반찬 하나는 흙냄새조차 향기로웠으며, 김치는 짜지 않아 좋았습니다.

 

 

 

특히 저는 절인 깻잎이 마음에 들었는데, 깻잎에 고유한 맛이 이렇게 절였는데도 그대로 간직돼 있었습니다. “보살님, 깻잎이 진짜 좋습니다!” 했더니 보살님 입에 웃음을 머금으면서, “지난 가실 단풍 들 때 뚝뚝 따다가 된장에 찔러넣었던 거라” 합니다.

 

가을 단풍 들 때 깻잎은 그 꼬신 맛이 이렇게 오래가나 봅니다. 조금 있으니 처사 한 명이 나와서 목탁을 쳤습니다. 그러니까 아래와 위에서 각각 스님이 한 명씩 나와 공양간으로 들어갔습니다.

 

평상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

 

3. 스님, 손님, 신도 그런 구분과 나눔도 없었고

 

순간, 짧으나마 감탄이 나왔습니다. 그 보살님, 무애(無碍)했습니다. 막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보통 절간에 가면 스님이 공양을 하고 난 다음에라야 다른 사람한테 밥을 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마치 대웅전 한가운데 문짝 아래 댓돌에 ‘스님 전용’이라 써놓고 양쪽 옆구리 문에다 ‘신도용’이라 써놓는, 그러한 구분과 막힘이 여기 이 보살님한테는 없었던 것입니다. 좀 있다 보살님 밥 한 그릇이랑 나물 한 보시를 더 가져와서 양이 차지 않으면 더 들라며 줬습니다.

 

대광보전 뒤로 올라가는 계단. 온통 바위입니다.

 

스님도 공양을 마치고 나오더니 빙긋 웃으며 뭐 모자라는 것 있으면 더 달라 하라고 말을 보태줬습니다. 저는 말씀만으로도 이미 배가 터질 것 같다면서, 더 챙겨준 밥과 나물은 손대지 않고, 이미 버무려 놓은 밥과 나물일랑 깨끗하게 해치웠습니다.

 

 

그러고는 보살님한테 인사를 하고 나섰습니다. 그렇게 돌아서 활짝 핀 꽃 아래로 들어서는데 고맙고 반갑고 즐거운 마음이 물결치듯 밀려들었습니다. 이런 보살님 마음도 오랜 세월 1억년이 지나면 저기 바위에 새겨진 물결무늬처럼 남으려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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