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지역 인문학 민간 조직은 어떻게 가능할까?

김훤주 2014. 3.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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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인문학 협동조합을 꿈꾼 근거

 

지역 인문학은 없거나 적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역에서 지역 인문학을 할 사람이나 소재는 넘친다고 봤습니다. 지역 인문학을 들을 사람도 넉넉하게 많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지역 인문학을 강의할 사람과 들을 사람을 묶어내고 모아내는 틀로 협동조합을 생각했습니다. 필요한 사람들이 자발해서 모이는 조직이 바로 협동조합이고 그 안에서는 누구나 똑같이 권리를 누리고 의무를 지기 때문입니다.

 

주체와 객체의 구분·대립, 주는 이와 받는 이의 구분·대립을 협동조합 조직 활동 속에서 어느 정도 필요한 만큼 해소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아직 누구도 하지 않은 영역이 바로 지역 인문학이니만큼, 이런 자발성과 평등성을 바탕삼아 지역 밀착과 생활 밀착으로 나아가면 언젠가는 제대로 굴러가는 지역 인문학 협동조합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광주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인문학 강의는 되도록 하지 않는 쪽으로 잡았었지만, 대중성 확보를 위해서는 때때로 한 번씩은 해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김해도서관. 경남도민일보 사진.

 

연회비 1만원에 2000명 조합원을 꿈꾼 까닭

 

사람이 많을수록 다양성은 커집니다. 생각도 다양해지고 말도 다양하게 나오고 행동도 다양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도 인문학도 협동조합도 다양해지고 거기에서 벌어지는 여러 강의·모임·활동도 다양해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가입비 1만원에 연회비 1만원, 그리고 조합원 2000명은 한 해 경비를 2000만원으로 잡고 거기 맞춰 계산해 숫자입니다. 인건비 한 달 100만원씩 한 해 1200만원, 그리고 강좌를 한 해 서른 안팎으로 잡고 한 차례 경비로 30만원씩으로 셈한 결과였습니다.

 

가입비와 연회비를 걷을 생각을 한 까닭은, ‘돈 가는 데 마음 간다’는 말에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일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버리듯이 내놓을 수 있는 금액이 1만원 정도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3월 27일 경남대 인문관 2층 강의실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인사를 하고 있는 인문과학연구소 강인순 소장. 옆으로 오른쪽부터 김남석(발제) 배대화(사회) 김재현(발제) 교수.

그리고 이렇게 내는 1만원 2만원이 그 돈을 낸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협동조합의 주인으로 여기게 만들고 나아가 이런저런 강좌를 열심히 찾아들어도 ‘어쩐지 신세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갖지 않도록도 만든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지역 인문학 협동조합 꿈을 깬 까닭

 

아주 간단합니다. 저희 해딴에에 실무 전담 인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강의 공간은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을 아쉬운대로 쓰면 됩니다. 지역 인문학 강의를 생각하고 준비하고 기획하고 조직하고 진행할 사람을 저희가 구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 해딴에 인력으로 지역 인문학 협동조합을 할 수 있다고 여겼었는데, 사정이 그렇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재빨리 꿈에서 깨어나 생각과 활동을 바로 접었습니다.

 

장유문화대학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초청 특강. 경남도민일보 사진.

 

지금도 가능하다고 보는 연회비 1만원 조합원 2000명

 

저는 한 해에 1만원 내는 지역 인문학 협동조합 조합원 2000명 조직은 지금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꾸리고 추슬러 나갈 사람만 한 명 있다면 말씀입니다. 지역에서 지역 인문학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들이 힘과 뜻을 모은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보기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고 느끼고 있는 지역에 관한 인문학스러운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우리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 한 사람이 스무 명 서른 명 사람 모아 지역 인문학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가입시키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 스무 명 서른 명 가운데 가입비 1만원(탈퇴하면 돌려주는)과 연회비 1만원을 아까워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문학·예술하는 사람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더욱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강의는 자기가 하겠다고 나선다 해서 무작정 다 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형식과 내용이 어느 정도 수준에는 이르러야 가능하겠습니다.

 

지금도 때때로 떠오르는 고민거리들

 

첫째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두고 인문학이라 하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옛날에 했던 노동교실이나 교양강좌랑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경남주부교실. 경남도민일보 사진.

 

그냥 유행하는 인문학에 우리도 그냥 얹혀 실려가는 존재는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입니다. 만약 이런 문제가 풀린다면, 이름에서 인문학을 내다버려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행복한 인문학 교실이 아니라 행복한 지역 교실, 지역 인문학 협동조합이 아니라 지역 공부 협동조합 이렇게요.

 

또 하나는 운동권 중심주의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즘 보면 지난 세월 이런저런 방식으로 운동권을 구성해온 단체들이 무슨 인문학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런 운동권 단체들이 ‘헤쳐 모여’ 하는 식으로는 새로운 지평을 여는 지역 인문학 공부터가 마련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운동권 단체·조직들은 자기한테 고유한 목표·가치관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유롭고 다채롭게 지역에 대해 그리고 인문학에 대해 상상도 하지 못하고 조직도 하지 못한다고 저는 봅니다.

 

그리고 길게 말씀드리면 구질구질해지겠지만, 운동권 사투리도 뜯어고쳐야 합니다. 운동권 사투리는 이미 멀어져간 대중을 더욱 멀어져가게 만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간 역량의 자립과 자율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기업에 운영을 기대는 데 대해서는 저는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자생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데서 하는 지원이 이미 하고 있는 역량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지역 인문학을 하는 민간의 역량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다음, 특별한 주제나 대상을 정해 프로젝트를 꾸미고 그 프로젝트에 대해 지원을 받는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있고 또 더나아가 바람직하다고도 봅니다.

 

창원도서관. 경남도민일보 사진.

지원을 받으면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자율성 침해입니다. 이를테면, 인문학 강사를 시쳇말로 ‘빨갱이들’로 모두 채웠을 때, 지원을 해주는 지방자치단체 등이 개입하지 않으리라고 믿을 수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관·단체·기업 등이 민간 지역 인문학 역량을 지원하리라 여기는 것도 오산입니다. 기관·단체·기업 등은 이미 자기가 손수 또는 자기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이런저런 조직들을 통해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상황이 이렇는데, 자기 말을 잘 듣게 생기지도 않은 민간 역량에다 ‘옛다’ 하고 많든적든 돈을 던져줄 그런 기관·단체·기업은 손쉽게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겠나 싶은 것입니다.

 

김훤주

 

※ 경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가 3월 27일 마련한 제92차 인문학 세미나 : 인문학과 시민의 만남 - 인문학 시민강좌의 성찰과 방향에서 토론문으로 내놓았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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