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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후릿그물체험에 공동체가 생각났다

김훤주 2013. 11.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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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설천면 문항마을 박성아(010-2224-4787) 사무장이 말했습니다. 10월 4일과 5일 이틀 동안 진행된 ‘2013 보물섬 남해 파워블로거 팸투어’에서였습니다. 이번 팸투어는 남해군 홍보를 위해 저희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주관했습니다.

 

“물이 빠질 때 갯벌에서는 세 가지 일이 벌어집니다. 가장 가까이서는 개맥이를 하고 가운데서는 조개 캐기를 하고 가장 멀리서는 후릿그물을 합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줄 몰랐지만 조금 지나고 나니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너르고 편평한 갯벌이 있습니다. 갯가에 꽂힌 높지막한 바지랑대에 줄줄이 그물을 걸어서 쳐 놓았습니다. 바닷물이 밀려들었다가 이제 빠져나갑니다. 밀물과 함께 들어왔던 고기랑 오징어 같은 해산물들이 이 그물에 걸립니다. 이를 두고 ‘개맥이’라 한답니다. 가장 얕은 데에 있습니다.

 

왼쪽이 문항마을 박성아 사무장. 후릿그물 체험에 앞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그야말로 너르게 펼쳐지는 갯벌입니다. 군데군데 바닷물이 남아 있고 조개 따위가 스며 있는 데서는 꼬물꼬물 거품이 입니다. 이것들을 호미와 바구니를 들고 들어가 캐냅니다. 어쩌면 개맥이가 가장 쉽고 다음으로 조개캐기가 어렵습니다.

 

하늬바람님 사진.

 

가장 깊은 데서는 배를 띄워놓고 있습니다. 배는 그물을 싣고 있습니다. 여기서 물이 빠지기 시작할 즈음에는 그물을 칩니다. 가운데 배가 있는 데서부터 왼쪽과 오른쪽으로 둥글게 칩니다. 그 길이는 길면 500m, 짧아도 300m라 합니다.

 

배에서 그물을 내리는 장면입니다. 사람들 배꼽까지 물이 차 있습니다. 김천령님 사진.

 

이렇게 쳐진 그물은 끄트머리 아래와 위에 기다란 줄이 달려 있습니다. 윗줄은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데 쓰고요, 아랫줄은 그물이 땅바닥과 벌어지지 않도록 다져 누르는 데 쓰입니다. 물이 좀 빠져서 허벅지 즈음에서 출렁일 정도가 되면 양쪽에서 그물을 힘껏 잡아당깁니다.

 

오른쪽 배에서 왼쪽으로 그물을 내리고 있습니다. 김천령님 사진.

 

보통은 한 쪽에 서른 사람, 그러니까 양쪽으로는 예순 사람 안팎이 잡아당깁니다. 물론, 앞에서 잠깐 말씀한 바처럼, 그물 아래쪽이 바닥에 딱 붙도록 하면서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기들이 거기로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갯벌을 사람들이 세 겹으로 활용하는 모양입니다. 저는 박성아 사무장이 말을 하고 있을 때 이런 모습을 머리에 그려봤습니다. 지금은 문항마을 같은 갯마을에는 사는 사람이 적고 체험하러 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김천령님 사진.

 

하지만, 예전에는 이렇게 물이 썰면 체험객은 있을 까닭이 없고 동네 사람들만 온통 갯벌에 달라붙어 일을 했겠지 싶었습니다. 10월 4일 오후에, 스물 남짓 되는 일행은 바로 이 후릿그물 체험을 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 쳐져 있는 그물을 들고 이리저리 끌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러고는 40분 남짓 있는 힘을 다해 그물을 당겼습니다. 저는 아래쪽 그물도 맡았는데요, 바닥이랑 떨어지지 않게 하느라 갯물에 몸을 담그다시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20분동안은 그물 안쪽에 얻어걸린 물고기랑 갑오징어랑 게랑 새우랑 따위를 거둬들이고 뭍으로 옮겼습니다.

 

앞쪽 두 사람이 그물 아래쪽을 누르고 있습니다. 고기가 아래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셈입니다. 김천령님 사진.

 

이렇게 자기 몸을 자기 근육을 움직여서 먹을거리를 장만해 보기는 무척 오랜만이었습니다. 2008년부터는, 조그맣게 가꾸던 텃밭 농사도 그만뒀습니다. 일옷 입고 땀 뿌릴 수 있는 고향도 그해 사라졌습니다.

 

운동을 하거나 바삐 걷거나 산을 오르거나 하지 않으면 힘을 쓸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이렇게 그야말로 온 몸을 움직여 ‘생산 노동’을 했습니다. 성과도 적지 않았습니다. 체험삼아 한 우리가 어설프게 후릿그물질을 했음은 틀림없지만 소출이 제가 보기에는 쏠쏠했습니다.

 

박성아 사무장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여기 갈매기가 많이 날고 있습니다. 고기가, 먹을거리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후릿그물을 치고 있을 때 그 위에 날아와 있는 갈매기를 두고서 말입니다.

 

하늘에 갈매기가 군데군데 보입니다. 실제는 더 많았습니다. 김천령님 사진.

 

우리가 후릿그물을 치고 있을 때, 그물이 조금씩 범위를 좁혀나가자 갇혀 있던 고기들은 그 위로 훌쩍 뛰어넘어 달아나곤 했습니다. 그렇게 날아서 달아나는 물고기를, 손으로 탁 쳐서 막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고기는 자기한테 닥치는 위험을 곧바로 알아차리는 모양입니다.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바로 앞에 위험이 있어도 자기가 하는 위험한 일을 멈추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자기것 또는 자기것이 될 수 있는 것을 놓지 못하는 욕심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보면 물고기는 욕심이 없습니다.

 

김천령님 사진.

박성아 사무장은 한 얘기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한 체험은 전통 방식 그대로입니다. 대신 사람 숫자가 적었기 때문에 규모(길이)는 500m에서 300m로 줄였어요. 힘이 많이 들었고 그물 밑으로 고기가 많이 새서 수확은 별로 좋지 않지만요.”

 

“후릿그물 체험은 올해 들어 여러분이 처음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체험하러 오면 오늘 한 것들을 줄이면서 그물 한가운데 고기가 잔뜩 든 통을 마련해 뒀다가 막판에 탁 터뜨려줍니다.” 아무래도 고기 잡는 재미를 주려고 그러나 봅니다.

 

후릿그물로 잡은 고기를 뭍으로 가져가고 있습니다. 김천령님 사진.

 

물론 이를 두고 나쁘다거나 좋지 않다고 얘기해서는 안 됩니다. 삶의 양태가 한결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쩌면 오히려 한결같아서는 안 되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여기 이런 체험을 하러 오는 까닭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올해 들어 후릿그물 체험은 여러분이 처음’이라는 말이 한편에 걸렸습니다. 후릿그물 체험은 개맥이나 조개캐기에 견주면 엄청나게 힘이 많이 듭니다. 참가하는 규모 또한 적어도 쉰 사람 안팎은 돼야 합니다.

 

같은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있는 다른 사람들 모습. 김천령님 사진.

 

그래야 양쪽에서 그물을 제대로 당길 수 있거든요.(우리 일행은 스물 남짓밖에 안 됐고, 그나마 몇몇은 사진을 찍느라 빠질 수밖에 없었기에, 줄을 잡은 이들은 좀더 힘들었습니다만 그날 갯벌에 나와 있던 다른 체험객들 도움 덕분에 그럭저럭 해낼 수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이런 후릿그물 체험을 하는 이들이 줄었다는 얘기는 한편으로는 힘을 들여야 할 수 있는 일을 사람들이 갈수록 즐기지 않게 됐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이런 갯벌 체험을 하는 사람들의 단위가 갈수록 적어지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김천령님 사진.

 

막바지 작업입니다. 이쪽과 저쪽 그물 잡아당기는 사이에 고기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번 떠올려 봅니다. 후릿그물 체험을 할 때 박성아 사무장은 오른편과 왼편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잡아당기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물 윗줄과 아랫줄을 당기면서도 서로 맞춰서 어그러지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집단 노동입니다. 공동체의 공동 노동입니다. 단순한 노동일 뿐만 아니라 그 노동을 뛰어넘어 서로가 서로에게 교감하고 소통하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어려운 그런 체험입니다. 옛날 이런 어촌에서는, 한 달에도 몇 차례씩 되풀이됐던 그런 작업이었겠습니다.

 

후릿그물 체험 막바지에 그물에 걸린 고기들을 잡아내고 있습니다.

 

학교나 기관·단체 같은 데서, 이렇게 공동체를 되새길 수 있는 후릿그물 체험 같은 것을 즐겨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래서 들었습니다. 사람의 삶이 아무리 개별화돼도-어쩌면 그럴수록 더욱 더-후릿그물 체험에서 느낄 수 있는 협력과 공동 노력은 소중한 미덕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날 저녁에, 박성아 사무장은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에다 우리가 후릿그물로 잡은 고기에 더해 마을에서 갓 잡은 해산물을 듬뿍 가져다 줬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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