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와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가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2013 경남도민 생태·역사 기행'이 무더위를 피해 7월과 8월을 쉬었다가 9월 들어 25일에 다시 나섰습니다.
거제를 찾았습지요. 먼저 거제대교를 건너기 앞서 통영타워에 올라 견내량 일대를 눈에 담고 이어서 점심을 먹은 다음 거제도 동쪽 끝 서이말을 거쳐 공곶이와 와현(臥峴)을 들렀습니다.
나름 더위를 피해 날을 잡는다고는 했지만 요즘 날씨가 어디 그렇습니까? 하도 제 멋대로라서, 9월이라 해도 8월 못지 않은 때가 많았고 이날도 좀은 그랬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비가 조금씩 뿌려줬습니다. 그래서 덕분에 걷기에는 딱 알맞은 날씨가 되고 말았습니다.
1. 이순신장군이 왜병을 대파한 견내량
요즘 사람들은 '견내량'이라 하면 잘 모릅니다. 한산대첩 승전지라 하면 잘 알지요. 저는 그냥 통영과 거제 사이에 있는 바다를 이르는 말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을 이룩한 바다가 바로 견내량입니다.
장군은 주력을 한산도 일대에 숨겨놓고 척후선으로 견내량에 있던 왜선을 너른 바다로 끄집어내 한산도 앞바다에서 학익진으로 승리했습니다. 당시 이순신 장군의 장계(狀啓)는 '견내량파왜병(見乃梁破倭兵)'으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견내량에서 왜병을 쳐부쉈습니다"쯤 되겠지요.
그러니까 '한산대첩'이라는 말을 후대에 누군가가 붙인 셈이고 당대는 '견내량' 전투쯤으로 여겨졌을 법하다고 짐작해 봅니다.
그나저나 어째서 여기서 이런 전투가 있었을까요? 부산에서 고성에 이르는 바다를 장악한 왜 수군과, 더 밀리지 않고 나아가 빼앗긴 해역을 되찾으려는 조선 수군의 경계선이 왜 여기가 됐을까요?
여기가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중요한 거점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하나뿐인 물길이 견내량이었다고 합니다. 여기를 거치지 않으려면 거제섬 남쪽 바깥 바다로 나가야 했는데 그러면 파도가 거칠어 진퇴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 현장을 찾는 보람도 이번에는 한 번 누려봤습니다. 사람들은 높다랗게 들어선 통영타워에 올라서는, 여기서 여기저기 섬들이 알알이 박혀 있는 바다를 바라보다가 무심한 듯 발길을 돌려 내려갑니다.
2. 쥐 귀 끝 같이 생긴 거제의 동쪽 끝
거제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밥집에 들러 점심을 먹고는 버스를 타고 서이말 등대 들머리로 갑니다. 등대 있는 데까지 가면 앞과 양옆이 툭 트여 전망이 시원합니다. 생긴 모양이 서이말, 쥐(鼠) 귀(耳) 끝(末) 같다는 얘기입니다.
오른쪽으로 석유비축기지 담장을 끼고 이어지는 길은 그늘이 이어집니다. 간간이 볕이 나는 곳이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양옆으로 나무가 우거져 있기 때문입니다. 바닥은 줄곧 콘크리트가 깔려 있는데요, 이는 그 서이말등대 그리고 등대 바로 너머에 있는 군부대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동차가 자주 오가지는 않습니다. 길을 걷는 데 성가시게 할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사람들은 끼리끼리 무리지어 얘기를 나누며 걷기도 하고 아니면 일행과 떨어져 혼자서 걷기도 합니다. 이러나저러나 숲 속 오솔길을 걷는 보람은 다르지 않습니다.
3. 공곶이 가는 길은 요즘 보기 드문 흙길
이렇게 2km남짓 걷고 나면 길 왼편에 커다란 안내판이 서 있고 오른편으로 내려가는 길이 두 갈래 나옵니다. 공곶이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둘 다 공곶이로 이끌어주지는 않고 좀더 예각으로 꺾어지는 길만 공곶이로 이어집니다. 이제는 콘크리트길과도 작별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바닥이 오로지 흙으로만 돼 있습니다. 어느 정도 들어가면 길이 너비가 크게 좁아져서, 자동차는 전혀 다닐 수 없는 길이 됩니다. 그러니까 오직 사람에게만 허용돼 있는 길입니다. 바닥은 부드럽습니다.
사람들도 이런 사정을 알기 때문에 "우와, 좋다!"는 소리를 내지르는 입이 절로 벙글어집니다. 바닥에 낙엽이 깔려 있으면 느낌도 실감도 더욱 푹신해집니다. 대체로는 그늘이 알맞게 내려앉아 있지만 때로는 어둑어둑할 정도로 내려앉은 그늘도 있습니다. 숲이 매우 우거진 때문입니다.
길 따라 갔더니 끝에 떼무덤이 달려 있습니다. 이태 전에 걸었을 때는 공곶이에 터잡고 살면서 동백과 수선화 따위를 가꾸시는 강명식 어르신 부부 사시는 데로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어르신 부부 일상 생활 보호를 위해 길을 빼내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봤습니다.
무덤이 있는 고개마루에서 바다를 바라봅니다. 날씨가 흐려 멀리까지 내다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시원했습니다. 여기 공곶이는 세찬 바람으로 한편 이름나 있기도 하거든요.
여기서 아래로 내려나는 길은 좁은 동백터널입니다. 양쪽으로 동백이 자라는 밭이 다락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로 돌계단이 나 있습니다.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걸울 수 없을 정도로 동백이 울창합니다.
4. 바람도 불고 비도 뿌리는 날의 공곶이 바닷가
사람들은 여기를 내려가다가도 곳곳에 멈춰 탄성을 내지릅니다. 동백 잎이 좋은 때문일 때도 있고, 슬쩍 한 걸음 비껴서 바라보는-그래서 동백 사이로 내다보이는 바다 풍경이 매우 그럴 듯해서 그런 때도 있습니다.
어르신 부부 돌보는 수선화·종려·선인장·동백 따위는 뒤로 한 채 곧장 바닷가로 갑니다. 먼저 일행은 줄줄이 앉아 바다를 바라봅니다. 바람이 세게 부는 가운데, 빗발이 엉성하게 뿌리고 있습니다.
이런 날씨에 이런 바다를 누리는 일도 흔한 일은 아닙니다. 다들 표정이 싱그럽고 입가에는 웃음이 물려 있습니다. 하기야 인상을 쓰기가 오히려 어려운 풍경입니다.
어떤 모녀는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고는 바다에 들어갑니다. 물론 둘이 손은 꼭 잡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바닷가 파도가 넘실대도 옷이 젖지 않을 만한 데에 줄지어 앉았습니다.
그이들한테 다가가 가져온 막걸리를 한 잔씩 권합니다. 적지 않게 가져왔는데도, 한 잔씩 돌리고 나니 한 방울도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입에 대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아쉽지는 않습니다. 일행 대부분이 오늘 나들이를 만족스럽게 여긴다는 지표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길을 나섭니다. 온 길을 되짚어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고개를 넘어 예구마을 쪽으로 내려갑니다. 일행을 서이말등대 들머리에 내려줬던 버스가 미리 와 기다리고 있습니다.
5. 와현해수욕장까지 남김없이 누리고
오늘 적지 않게 걸어서 피곤해하시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싶어서, 와현해수욕장에서 잠깐 내리는 일정은 건너뛰면 어떻겠느냐 여쭸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와현에도 조금 들렀다 가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가을 들머리 아직은 초록이 짙은 바다지만, 그래도 이렇게 떠나기는 사뭇 아쉽다는 표정이 여기저기서 묻어났습니다. 해수욕장은 텅 비어 있습니다. 그 비어 있는 가운데 가을 냄새 가을 분위기가 잔뜩 끼어 있습니다.
걸으면서, 서 있으면서, 긴의자에 앉아 있으면 만들어 내는 우리 일행들의 모습이, 와현해수욕장의 가을 냄새와 분위기를 완성해 줬습니다. 여름의 벅적거리는 품이 조금은 남아 있으면서도, 조금은 느낌이 보송보송하면서 썰렁한, 그런 가을 풍경입니다.
와서 보니 와현에서 찍은 사진이 없었습니다. 대신해서 공곶이에서 찍은 메밀꽃 사진을 올립니다. 양해 바랍니다.
와현(臥峴)은 토종말로 '누우래재'인데, 중국 진시황이 불사초를 구해 오라면서 보낸 신하 서시(徐市)가 여기 누워잤다는 데서 온 말이랍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그리고 이런 사대주의 취향은 제가 좀 싫어합니다만, 그만큼 아름답고 편안한 마을이라는 얘기는 되겠습니다.
이 모두가 짠물이든 민물이든 물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겠고, 그런 물을 머금은 땅이 곧바로 생명을 일구는 습지인 것입니다. 이 날도 일행은 도착 예정 시각인 오후 6시를 넘겨서야 창원에 와 닿을 수 있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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