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덥거나 추우면 김해로 박물관 여행을

8월 17일 일곱 번째 생태·역사기행은 김해로 떠났습니다. 인간의 문화와 습지의 관계를 아주 잘 보여주는 현장이어서 김해로 골라잡은 측면도 있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서 이를 조금이나마 벗어나 보려는 까닭도 있었답니다.

지나치게 덥거나 추운 여름이나 겨울에는,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박물관을 거닐면 나쁘지 않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박물관만 둘러보지는 않았답니다.

김해에는 해반천이 있습니다. 바다와 짝을 이룬다는 해반천(海伴川)입니다. 김해 중심가를 북에서 남으로 세로지르다가 동쪽에서 들어오는 호계천을 쓸어담는 지점에서 진로를 남서로 바꾼 다음 북쪽에서 들어오는 봉곡천을 비스듬히 품습니다. 그러고는 북에서 남으로 뱀처럼 꾸불꾸불 나아가는데, 나중에는 서낙동강을 향해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조만강을 만나 제 몸을 맡기고 맙니다.

이 해반천과 김해에 터잡았던 가야 세력인 가락국의 관계는 분성산에 오르면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분성산은 그다지 높지 않은 높이로 김해를 동서로 가릅니다. 꼭대기는 분산성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 산성이 역사에서는 고려 말기에 처음 쌓은 기록이 나오지만 실은 가야 또는 신라 사람이 쌓은 자취를 품고 있습니다.

이 날 안내는 강충관 선생이 맡았습니다. 문화유산답사가로서 오랫동안 현지 해설을 해온 경력이 만만찮은 분이십니다. 강충관 선생은 일행을 거기서 가장 높은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지형 설명을 하는 강충관 선생. 제가 옆에 있는데, 동행한 박영주 형이 찍었습니다.

봉수대를 머리에 인 만장대 둘레에서 강 선생은 멀리 내려다보면서 오른쪽(북쪽)에서 왼쪽(남쪽)으로 해반천 물줄기를 따라 줄지어 있는 허왕후릉과 국립김해박물관과 대성동고분박물관과 수로왕릉과 봉황대 유적지, 그리고 그 바로 아래(동쪽) 회현동 조개무지까지 차례로 짚어 줬습니다.

봉황대 유적지는 조그만 언덕배기에 기대어 있으며 김해에서 가장 큰 생활유적으로 옛날 왕궁 자리로 짐작된다고 강 선생은 말했습니다. 또 그 왼쪽(남쪽) 지금은 너르게 펼쳐져 있는 들판이 옛날에는 들판이 아니었고 바다와 만나는 갯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 사람들이 지금 봉황대이라고 하는 둘레에 모여 살면서 바다에서 나는 갖은 생선과 조개를 잡아 먹었고, 남은 껍데기와 생선가시 또는 깨진 질그릇 같은 생활쓰레기는 바로 옆 언덕배기 너머에 버렸는데 그것이 지금 회현동 조개무지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살았던 가야 사람들이 죽어서는 어떻게 됐을까요? 강 선생은 그이들이 묻힌 자리는 해반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 바로 위 북쪽에 있는 수로왕릉에서 시작해 대성동고분박물관 둘레에 이르기까지였다고 얘기했답니다. 삶터 가까운 언덕배기에다 숨진 이들을 위한 무덤을 몇 백 년에 걸쳐 만들었던 셈입니다.

분성산에서 내려온 일행은 수로왕릉 가까운 한 밥집에 들러 점심을 먹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요. 다음 수로왕릉과 수릉원을 지나 김해민속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수로왕릉의 왕버들 그늘.

수로왕릉은 허왕후릉과 함께 신라 고분을 닮아 봉분이 큰데 이는 후대에 새로 보탠 것으로 다른 가야 고분과는 모양이 달랐습니다. 수릉원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곳곳에 우거져 있었습니다. 습지에서 주로 자라는 왕버들이 많은 편이었는데, 이는 김해 가락국의 가야 문화가 습지를 바탕으로 삼았음을 말해주는 또다른 지표가 되겠습니다.

이어 들른 김해민속박물관은 농경 유물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대표 평야 가운데 하나인 김해평야가 여기 있기에 가능했겠다 싶었습니다. 1층과 2층에 가득찬 유물들에게 대부분은 한참 동안 눈길을 던졌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일수록 더욱 그랬습니다. 어리고 젊은 시절 일할 때 쓰거나 자주 봤던 물건들이 유리창 너머에 있으니 하고픈 말도 많고 떠오르는 생각도 많을 법도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봉황동 유적 공원에서 봉황대 유적과 회현동 조개무지를 차례로 들렀습니다. 잘 가꿔진 공원은 습지를 품고 있었으며, 습지에는 가야시대의 배 한 척이 다소곳이 떠 있습니다. 김해서 나온 가야 토기에 새겨진 배 모습을 원형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봉황대 유적에 있는 가야 전사상. 창 끝에 잠자리가 앉아 있습니다.

가야의 배와 고상가옥.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상가옥(高床家屋)도 여러 채 재현돼 있는데 이 또한 습지를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겠지요. 언덕배기나 평지는 물론 습지나 물 위서도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집이니까요. 원두막을 닮은 망루도 있었는데, 가야 시대 바다를 방어하려고 갯벌에 꽂았던 목책(木柵)도 여기서 발굴이 됐습니다.

이어지는 회현동 조개무지. 발굴 당시 만들어진 단면이 커다란 유리 너머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굴껍데기가 가장 많지만 백합이나 소라 같은 다른 껍데기도 보이고 아래턱이 완강해 보이는 들짐승의 뼈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돌화살촉, 여러 가지 토기 조각, 불에 탄 쌀알과 왕망전(王莽錢)도 여기서 출토됐다고 합니다.

왕망전은 중국 전한이 망하고 후한이 새로 들어서기까지 서기 8~23년 존속했던 신(新)나라의 동전입니다. 이처럼 만들어진 시기가 확실해서 함께 있는 유물의 연대를 알려주는 구실을 합니다. 한편으로 가야 세력이 중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와 교류했다는 증거도 되겠지요.

다음은 대성동고분박물관. 지금도 발굴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줄곧 발굴을 해야 하는, 바로 옆 대성동 고분군에서 나온 유물을 주로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대성동 고분군과 김해 예안리 고분군에서 나온 사람 뼈를 바탕으로 재현해 놓은 남녀 인물상도 있고 옛날 무덤 만들던 방식도 알기 쉽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가야 군대가 갈대밭에서 서기 400년 고구려 군대 공격을 받아 스러지고 있습니다.

김해 가락국이 서기 400년 고구려 5만 군대의 공격을 받고 힘을 잃어가는 과정도 비춘답니다. 여기에 강충관 선생은 새로운 얘기를 보탭니다. 가락국을 멸망으로 이끄는 실제 핵심 사건은 한 세기 앞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강 선생의 해석입니다. "가락국은 쇠가 주력산업이에요. 철광석 등에서 뽑아낸 쇠는 화폐가 됐고 무기가 됐으며 수출도 했습니다. 그런데 판로가 막혔습니다. 고구려가 4세기 초반 낙랑·대방 등 한사군을 없애는 바람에 쇠를 팔 대상이 하나 사라졌지요.

게다가 가락국 철광석보다 질이 좋은 토철(土鐵)이 나는 울산 달천철장( 達川鐵場)을 신라가 장악하고 본격 개발에 나선 시점이기도 해요. 달천철장에서 나는 쇠가 왜에 팔려나갔으니 가락국으로서는 왜에도 쇠를 팔기 어려워진 된 데 더해 무기의 질도 신라가 앞서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노출전시관 모습. 옛ㄴㄹ 발굴 당시 맡을 수 있었던 냄새가 지금도 났습니다.

1600년 전 얘기를 들으며 산책로를 따라 노출전시관에 갔습니다.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옆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이 더 실감이 났습니다. 돌무덤과 함께 묻힌 유물과 사람 뼈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답니다.

대성동 고분군 발굴 현장.

아래쪽 한가운데에 사람뼈가 보입니다.

왼쪽 그늘막 아래에 사람뼈가 2인분이 보입니다.

마지막 찾은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가 전문이랍니다. 여기에는 김해의 가락국뿐 아니라 함안·창녕·창원·의령·고성, 부산이나 경북 또는 전라도에 있었던 가야 나라들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더운 날씨였지만 박물관 탐방은 에어컨 덕분에 그렇게 덥지는 않았습니다.

가락국의 대표 토기.

가락국의 부뚜막. 일본에도 많다고 합니다.

김해박물관에 이어서 가야 나들이는 구지봉을 거쳐 허왕후릉까지 걷는 산책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오후 5시 조금 넘어 일행은 버스를 타고 창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기행은 경남람사르환경재단이 후원하고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와 경남도민일보가 함께 주관했답니다.

허황후릉에서 마무리를 하고 있는 강충관 선생.

김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