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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후원하고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와 경남도민일보가 함께 주관하는 '2012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이 7월에는 경남을 넘어 전남의 담양으로 나들이를 했답니다. 더운 여름날, 나무가 우거져 숲을 이룬 데를 찾다 보니 그리 됐지요.
담양은 죽물(竹物)로 예전부터 이름이 높았습니다. 식영정 소쇄원 면앙정 송강정 명옥헌 취가정 같은 정자들로도 유명하답니다. 이번에 가서 보니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죽물은 중국산 베트남산 따위에 밀려 한 물 가고 말았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 담양 여기처럼 정자가 많고 좋은 데는 다시 찾기가 어렵다는 사정은 예나 이제나 한가지지만, 그렇다 해도 정자에 대한 반응은 아무래도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보다는 꽤 시큰둥해진 느낌이 없지가 않습니다.
대신 숲이 사람에게 주는 이로움을 일러주는 현장으로는 오히려 이름이 높아져 있었습니다. 기초나 광역의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그리고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같은 같은 이른바 중앙 정치인도 여기 와 숲을 한 번 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숲은 조용히 일러줍니다. 당장 눈앞에 도로 내고 다리 만들고 하기보다 나무를 많이 심어 가꾸면 한 세대 30년이 채 가기 전에 좋은 보람과 누림과 즐거움을 안겨주게 마련이라고 말입니다. 들을 사람은 듣고 듣지 않을 사람은 듣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7월 20일 아침 9시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2동 경남도민일보 앞을 떠난 버스는 2시간 30분 남짓 달린 끝에 전남 담양군·읍 향교리 죽녹원(竹綠園) 앞에 닿았습니다. 죽녹원은 예부터 있던 정원은 아니고요, 담양군이 2003년 들어 동네 동산 하나를 통째로 들여 부러 만든 대나무 숲이었습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입니다. 담양의 또다른 명물 '국수거리'는 예서 다리 하나 건너 오른편으로 이어집니다. 여기 한 식당에 들러 국수를 말아 먹었습니다. 갖은 약재와 함께 달여 삶아냈다는 약달걀도 곁들이고요 담양산 막걸리와 파전도 밥상에 올렸습지요.
아주머니 한 명이 쟁반에 국수를 담아 들고 길을 건넙니다.
이윽고 담양천을 건너 죽녹원에 오릅니다(입장료 2000원). 왕대나 오죽(烏竹) 따위 일부러 가꾼 티가 곳곳에서 나지만 그렇다고 천박하지는 않았습니다. 대도 좋고 길도 그럴 듯했습니다. 날이 맑아 대나무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면서 더욱 가늘게 쪼개지는 품이 아주 멋집니다. 더러는 꿈결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길은 좁지 않고 자가용 자동차조차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너르지만 양옆으로 높이 자라 우거져 있는 대들 덕분에 휑한 느낌은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곳곳에 만들어져 있는, 댓잎을 먹고 산다는 중국 팬더 모양이 좀 성가십니다. 그래도 참을만은 합니다. 하하. 운수대통길·사랑이 변치 않는 길 같은 이름이 붙은 여덟 개 길을 모두 거닐면 꽤나 시간이 들겠다 싶었습니다.
죽물 파는 전시장에도 들릅니다. 인간문화재들이 만든 물건들은 매우 비쌌습니다. 중국산 죽부인은 대형 유통점 같은 데서 5000원이면 살 수 있지만 여기서는 5만원이랍니다. 어떤 삿갓은 150만원이나 했습니다. 잘 갈라낸 대를 겹으로 대어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정성 들여 만든 제품이라 합니다.
이런 물건에는 그냥 손만 한 번 대 볼 뿐, 어지간해서는 살 엄두는 내지 못합니다. 일행은 1만원짜리 죽비, 8000원짜리 쥘부채, 2만원 하는 대바구니를 하나씩 집어들었습니다. 인간문화재는 아닌 사람들이 그저 담양산 대로 만든 물건이라 합니다. 죽비로 두드리니 어깨와 배와 가슴이 무척 시원하다고 했습니다.
담양에서는 숲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죽녹원을 벗어나면 곧바로 관방제림이 이어집니다. 대숲의 청신함을 누린 바로 뒤에 어버이처럼 감싸주는 이 활엽수 숲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 숲이 끝나면 빛나는 청춘처럼 기운이 씩씩한 메타세쿼이아 숲이 다시 이어지게 돼 있습니다.
관방제림(官防堤林). 담양천을 다시 건너 국수거리 맞은편으로 넘어가면서 이어지는 둑에 있는 숲이랍니다. 관(官)에서 물길을 막아(防) 만든 둑(堤)입니다. 여기 숲(林)은 조선 인조 때인 1648년에 먼저 만들어졌고 철종 연간인 1854년에 한 번 더 만들어졌답니다. 느티나무 푸조나무 팽나무 벚나무를 비롯해 열다섯 가지 나무 320그루 남짓이 아름드리 자라나 있습니다.
둥치가 매우 굵은 나무들.
둥치가 덜 굵은 나무들.
관방제림은, 사람이 나무를 가꾸고 숲을 이뤄주면 그 나무와 숲이 사람에게 무엇을 어떻게 갚음을 하는지를 일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 구실을 합니다. 시원한 그늘도 주고 바람도 막아주고 홍수 같은 재앙도 막아주고 한 것은 여느 숲 공통의 공적이겠습니다.
저녁이 되면, 뒤쪽 납작한 집에서 밥을 먹은 사람들이 여기 평상으로 나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읍내에 바짝 붙어 들어선 이 숲은 이런저런 역사를 개인 맞춤형으로 만들어줬겠다 싶습니다. 담양읍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남녀들 치고, 이 숲에서 설익은 데이트를 한 번이라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짐작을 해 보는 것입니다.
이에 더해 이제는 전국 각지에서 담양으로 사람을 끌어모으는 구실까지 톡톡히 하고 있는 바, 그것이 담양 경제에 작지 않게 이바지함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쩌면 명물인 국수거리조차 이렇게 사람이 모여들지 않는다면 이런 규모로 유지되지는 못하겠지 싶었습니다.
2km남짓 이어지는 관방제림은, 높게 솟았거나 넓게 퍼져 있는 이파리가 무리지어 만들어주는 그늘도 무척 멋졌답니다. 그늘에서는 동네 사람들 일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꾸미지 않은 원래 그대로 있는 집들을 아래쪽에 배경으로 깔았습니다.
일하다 지쳤는지 담배 하나 물고 들어와 앉은 중년도 있고, 부채를 들고 평상이나 긴의자에 앉아 잡담을 주고받는 노년도 있습니다. 물론, 관광용 2인용 발수레나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청춘도 많이 있습니다.
그 끄트머리에서 널찍한 아스팔트를 건너면 왼쪽으로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이어집니다.(입장료 1000원) 사람이 나무 또는 숲을 제대로 가꾸면 그 나무와 숲이 인간에게 어떻게 갚음 하는지 일러주기는 관방제림과 마찬가지랍니다.
관방제림이 370년 묵은 교과서라면,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30년남짓밖에 안 된 교과서라는 차이밖에 없답니다. 1970년대, 여기는 국도였고 사람들은 국도를 따라 가로수로 메타세쿼이아를 심었습니다. 30년 뒤에 울창해지면 거기서 무엇이 생기리라는 기대 따위는 당연히 없었습지요.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 잘 자란 여기 이 숲이 아름다움과 즐거움으로 알려지면서 빼어난 관광 상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담양군은 여기 1.8km 정도 되는 거리에서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흙길을 만들었습니다.
여기 흙길 메타세쿼이아는 걷는 내내 향기를 내뿜고 그늘을 만들고 바람을 일렁였습니다. 오가는 이들은 이런저런 몸짓과 행동으로 그 풍경을 새롭게 했습니다. 자동차를 다니지 못하게 한 때문에 길이라는 느낌은 적잖게 가셨지만 걸으며 쉬며 누리는 공간으로는 매우 훌룡했습니다.
물론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더 많이 이어진답니다. 흙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전북 순창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이 그렇습니다. 양쪽으로 메타세쿼이아를 거느린 품이 얼핏 봐도 대단하답니다. 흙길 메타세쿼이아 숲에서 얻을 수 있는 보람을 넘어 더 큰 만족을 얻으려면 여기 이 길까지 내쳐 걸어도 좋겠습니다.
하지만 일행들의 걷기는 오후 3시 30분 즈음 흙길에서 멈췄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빠듯했기 때문이지요. 대신 흙길 끝머리에서 순창까지 이어지는 7km 정도 되는 메타세쿼이아는 그 아래 아스팔트길로 버스를 타고 오가며 둘러보는 데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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