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보건진료소 소장으로 있던 시절 마을 주민들의 건강상태와 집안 상황을
색깔별로 표시해 ‘자신만의 마을 지도’를 가지고 있던 사람,

1983년 가덕도가 섬이던 시절,
보건진료소에서 낮에는 진료하며 틈틈이 섬마을 아이들을 불러 놀이와 공부를 가르치고
밤에는 마을 집집을 돌던 사람,
그 아름다운 그림 속의 사람이 지금은 요양을 해야 하는 어르신들의 든든한 벗이 되고 있답니다.


1.직접 그린 마을지도, 주민 건강상태 색깔 표시해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수정 마을 사람들은 ‘김연희’라는 이름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있습니다. 1986년부터 스무 해 넘게 마산보건소 수정진료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지역 주민들과 성심껏 동고동락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김연희(59) 소장은 2008년 4월 수정 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황철곤 선수가 시장으로 있던 당시 마산시가 김 소장에게 징계를 먹이고 시락진료소로 발령을 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수정 마을 사람들은 김 소장을 위해 기자회견을 열기까지 했습니다.  


마을 진료소 소장을 위한 기자회견은 아마 대한민국 전역에 걸쳐 찾아보기 어려운 일입지요. 이 때 사람들은 “새벽에도 아프다고 전화하면 김 소장은 자다가도 달려왔다. 20년 넘게 식구처럼 지내며 온 동네 혼자 사는 노인들 병수발도 도맡아 했다. 그런 사람을 하루아침에 내쫓다니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김 소장의 진료실에는 색다른 마을 지도가 붙어 있었습니다. 김 소장이 손수 그렸는데 집집마다 색깔이 달랐습니다. 빨간색은 고혈압, 파란색은 당뇨병입니다. 노란색은 어르신이 혼자 사는 집이고 식구들이 건강한 집은 초록으로 나타냈습니다. 마을 모든 주민들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면 그릴 수 없는 지도였습니다.
 

2. 수정마을 주민 총회 발언으로 징계 먹고 전출 당해

알려진대로 수정 마을은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STX조선은 조선기자재 공장을 수정만 매립지에 들이려 했고 마산시는 이를 적극 거들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STX보다 더 STX스럽게 밀어붙였습니다. STX의 뻔한 불법조차 합당하고 당연한 사실로 여겼으니까 말씀입니다.
 

STX 조선기자재 공장의 수정만 매립지 진입은 주민 반대에 부딪혀 2011년 꺾였습니다.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생긴 상처는 어쩌면 영원히 치유할 수 없을는지도 모릅니다. 평화롭던 마을이, 마을 주민이 쪼개지고 만 것입니다.
 

2007년 12월 9일 열린 주민 총회에서 김 소장은 ‘주민이 찬반으로 나뉘어 이웃과 친척이 서로 다투게 되니 신중하게 하자’는 취지로 발언했습니다. STX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마산시는 ‘갈등을 조장하고 STX 유치 반대를 선동했다’며 공무원 품위를 손상하고 성실 의무를 어겼다는 이유로 인사위원회에 넘겼습니다.

그리고 인사위는 넉 달 동안 김 소장을 샅샅이 턴 끝에 ‘견책’ 결정을 내렸습니다. 여섯 달 동안 호봉 승급이 안 되는 징계였습니다. 하지만 수정진료소 발령과 동시에 이사 들어와 수정 주민이 된 김 소장의 주민 총회 참여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4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당시 상황에 대해 김 소장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마을이 분명히 발전은 해야 하니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짚어서 천천히 가더라도 제대로 가자, 불목(不睦)을 하게 되고 이런 것은 하지 말자’고 했을 뿐입니다. 이를 마산시는 '반대 옹호 발언'이라고 몰았어요.

마을이 깨지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민 90% 반대해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산시가 ‘어촌계원은 농사짓는 사람보다 곱절로 보상해주겠다’는 식으로 하면서 갈라졌습니다. 또 제대로 보상해 주면 떠나지 않겠다던 사람도 떠날 생각을 하게 될 텐데, 그렇게 안했어요. 시가 100만원짜리를 30%도 안 되는 공시지가에 넘겨라, 였지요.” 


김연희씨는 당시 정황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도 억울해 밤새 울기도 했지만, 이제는 관련 문서까지 모두 버렸다고 했습니다. 23년 동안 살아왔던 수정 마을에서 이사도 했답니다. 그런데 새로 발령받아 간 시락진료소는 썰렁했답니다. 수정진료소와는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자꾸 수정 생각이 났어요. 젊음을 다 바쳐 일한 수정에는 마을 건강원들도 있었지요. 부녀회장, 새마을회장 이런 분들, 응급처치 요령 등을 가르쳐드리고 진료 활동에 다리 구실을 해 주도록 조직돼 있는 건강원이 15명이 있었는데 시락에서는 처음부터 새로 해야 했어요.

수정처럼 만들려면 적어도 10년은 걸리는데 저는 정년이 이태밖에 남지 않았으니 엄두가 나지 않아요. 노인 생활체조, 질병 예방·건강 증진 사업은 하지 못하고 그래도 한 달에 두 번 65세 이상 어르신 목욕시키는 일은 했네요.  


수정에서처럼 집집마다 방문도 다니기는 했어요. 그런데 무릎만 아프고 성과는 없었어요. 아니네요, 고혈압 환자 50명을 찾아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어요. 마을 끄트머리에 살고 있는 장애인을 제가 찾아갔는데 이렇게 말하더군요. ‘지난 20년 동안 진료소에서 한 번도 안 왔는데 소장님은 어떻게 한 달도 채 안 돼서 찾아왔어요?’

이렇게 구석구석 찾아다니면 재미랑 보람이 쏠쏠합니다. 개인적으로 속상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렇게 해 놓고도 살아지는구나 싶을 정도로 여겨지는 때가 많지요. 그러면서 스스로 어려움이나 힘듦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줄 알게 되더라고요. 많이 겸손해지고 겸허해지고 했습니다.”


3. 낮에는 진료하며 틈틈이 아이들 가르쳐


1976년 마산간호보건전문학교(지금 마산대학)를 졸업한 김연희씨는 마산파티마병원과 경남도립 마산의료원을 거쳐 보건진료소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합니다. 1981년 3월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보건진료원직’ 과정을 수료하고 나서 함안군 산인진료소에서 일하다가 1983년부터 3년 동안 가덕도 대항진료소에서 근무했습니다.

지금 가덕도는 거가대교 등으로 뭍과 이어져 더 이상 섬이 아니지만 당시는 의창군 천가면 소속으로 하루 한 차례만 배가 드나드는 외딴 섬이었습니다.
  

“의창보건소 직원이 찾아와 가덕도에서 좋은 사람 하나 보내달라는데 가지 않겠느냐 했어요. 남편은 ‘소설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지 어떻게 당신을 보내느냐?’ 했지요. 어쨌든 가덕도 유지들이 한 번 와보기라도 해 달라 해서 소풍 가는 마음으로 식구가 함께 갔습니다.

그런데 마을 유지들이 대접을 융숭하게 차려 갖고 하도 절실하게 ‘와서 일 좀 해 주면 안 되느냐’ 해서 너무 부끄러웠어요. ‘내가 뭐라고.’ 며칠 고민한 끝에 남편과 다섯 살짜리 큰아들은 마산에서 시어머니랑 살고 저는 세 살짜리 둘째아들과 함께 가덕도 대항진료소에 들어갔지요.  


부산대 의대에서 교육을 이렇게 받았어요. ‘진료소 흥망은 소장 손에 달려 있다.’ 한편으로는 ‘서두르지도 쉬지도 말라’는 가톨릭 신앙도 발동됐습니다. 낮에는 늘 진료실을 지키고 저녁에는 밥 일찍 먹고 자기 전에 방문해 대화하면서 믿음을 쌓았지요.

사비를 들여 사탕이나 빵이라도 한두 개씩 가져가고 집안 어려운 일, 자녀 문제 취직 문제 등등도 함께 얘기했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학교 들어갈 때가 돼 1986년 나왔어요. 가정기록부, 진료기록부 이런 것들 다 만들어 놓았기에 누가 와도 잘할 수 있지 않겠나 여겼지요.  


이렇게 떠나고 나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어요. 대항진료소 있을 때 아이들 불러다가 놀이도 가르치고 그림도 그리게 하고 글자 공부도 시키고 했는데 가덕도 분들이 이를 갖고 추천을 했던 모양입니다. 하하.”


4. 몸살로 앓아누워도 환자 진료는 나가고

1986년 시작된 수정진료소 소장 일이 2008년까지 이어졌답니다. 당시 수정진료소 관할 인구는 한 2500명 됐습니다. 이들과 스무 해 넘게 어울리면서 김연희씨에게는 이런저런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많이 힘들었지요. 열심히는 했습니다. 진료소는 독립채산제로 움직이기 때문에 운영비를 들여 간호조무사를 보조원으로 두기도 했습니다. 물론 급여가 얼마 안 되기에 그 또한 봉사 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노릇이기는 하지만요. 사람 눈이 많고 성향도 제각각이어서 처신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습니다.

몸이 아프다고 연락이 오면 새벽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나갔습니다. 평일은 물론 공휴일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떤 이들은 근무 시간 말고는 전화를 받지 말라고도 했지만 집에 전화가 울리는데 어떻게 받지 않을 수 있나요? 또 받고 나면 사람이 아프다는데 나가보는 수밖에 없지요.  


남편 도움이 컸어요. 어떤 공휴일이었어요. 몸살이 나 있었지요. 그래서 오늘은 작정하고 푹 쉬어 보자, 이러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남편이 전화를 받더니 ‘반동에서 왔는데 배가 아픈데 와서 진료 좀 해줄 수 있느냐’ 그래요. 제가 ‘너무 아픈데요……’ 이랬더니 ‘아흔아홉 잘하고 하나 못하면 못하는 것이다’, 남편이 말해요. 어쩔 수 없이 나갔습니다.  


같이 수정에서 살면서 아이들이랑 남편,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 받고 나가야 했고, 한밤에 주민들이 싸움이라도 해서 살갗이 찢어지면 단순 봉합은 제가 하는데 그것 옆에서 거들기도 했고요, 트집 잡거나 행패 부리는 사람 있으면 막아주기도 했지요. 한밤중에 임신부 출산 분만을 거들거나 병원으로 동행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5. “마지막 가는 길 지키는 일은 복을 짓는 일”

김연희씨는 지금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일동리에 있는 아름다운 요양원 원장으로 있습니다. 2009년 9월부터 일이랍니다. 장기요양전문시설로 만성질환을 앓거나 치매 등에 걸린 어르신을 돌봅니다.

“호스피스 활동을 좀 했습니다. 1991년부터요. 당시는 암에 걸리면 전부 개인 돈으로 치료를 해야 했습니다. 부담이 컸고 그래서 병원서 나와 집에 와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수정진료소 있을 때 대구 계명대학교 호스피스전문간호사 과정을 1년 했습니다. 진료소 있으면서 유일하게 필요에 의해 받은 교육이었습니다.

어르신은 혼자서 끙끙 앓고, 식구는 일하러 나가고, 그러면 외로워서 더 고통이 크게 옵니다. 진료소 달력을 만들어 집집마다 걸어놓았어요. 급할 때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전화번호도 생각이 나지 않거든요. 전화가 수시로 왔습니다. 진료소는 보조원에게 맡기고 달려가 밥도 차려주고 같이 이야기도 하고…….  임종 6개월 정도 남은 사람…… 마지막 가시는 길을 편안하게 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고 봅니다. 


아름다운 요양원은 숲이 우거진 가운데 있어 경관이 좋고 한옥으로 돼 있어서 자기 집에 사는 것처럼 안락한 마음을 줍니다. 요양보호사들이 시골 출신들이라 인정이 넘치는 점도 좋고요. 여기서도 임종 간호나 영적 간호를 병행합니다. 게다가 저희는 단순히 연명(생명 연장)만을 위한 치료는 하지 않습니다. 물론 보호자가 동의할 때에 한해서 말입니다. 


부산에 있는 한 병원에서 여기로 어머니를 모시고 온 가족이 있었어요. 세상 떠나신 다음 ‘정말 잘 돌봐 줘서 고맙다’고 할 때 힘들었지만 흐뭇하고 고맙지요. 돌아가시고 나서도 부모 기일이 되면 찾아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잊을 만도 한데 찾아주니까 고맙습니다.  


23명이 정원으로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분위기가 가정적이지요. 가까운 병원에서 촉탁의사가 두 주마다 찾아와 진료를 합니다. 병원으로 가셨다가 다시 오시는 어르신도 계십니다. 그러다 때가 돼서 한 장 낙엽이 되기까지 마지막 가는 길을 편하게 가시게 정성껏 돌보는 일, 바로 하늘이 복을 내리게 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연희 원장은 시인이기도 하답니다. 원래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대한간호협회 신문에 수기를 냈다가 칭찬과 격려를 받고 시와 수필도 함께 썼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1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고 같은 해 시집 <갯내음 버무린 진료소의 나날>을 펴냈습니다. 2003년에는 두 번째 시집 <꽃메아리>, 2010년에는 세 번째 시집 <시간의 숲>을 냈겠지요. 모두 진료소와 호스피스, 요양원 생활이 주된 소재입니다.
 

“보물은 진짜 숨겨지잖아요. 드러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첫 시집도 내지 않으려 했는데 주위에서 나이가 더 들면 내기가 더 어렵다고 해서 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 권까지 냈어요. 동인지나 이런 데서 해마다 몇 편씩이라도 내야 하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지금은 어르신들하고 지내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몇 년 뒤 늘그막에 한 권이 더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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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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