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민주노총 지도부 패권주의와 통합진보당

김훤주 2012. 4.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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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원래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해 왔습니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은 2007년 12월 대선까지 유효했습니다. 대선을 마치고 나서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으로 쪼개지면서 배타적 지지 방침도 사실상 쪼개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없습니다.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참여당 등과 합치면서 이름을 통합진보당으로 바꿨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 민주노총은 이번에 총선 방침을 정하려고 나섰던 모양입니다. 대의원대회에서 하려고 했으나 일부에서 반대하는 등 반발이 일었고 결국 성원이 차지 않아 대의원대회는 무산됐습니다.

뒤엣글은 민주노총 경남본부에서 3월 26일치로 발행한 <경남 노동자> 43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조합원 총회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의결기구인 대의원대회에서 처리 못한 안건을 그 아래 집행기구에서 할 수 있는 어처구니 없는 구조를 말씀입니다.
 

아래 얼굴은 김천욱 본부장과 손석형 창원성산 통합진보당 후보의 것입니다.


"민주노총은 1월 31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성원 미달로 총선방침을 확정하지 못하자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조합원에게 직접 의사를 물어 정당 명부 비례대표 지지 정당을 결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지정당 여론조사를 실시할 정책결정참가단을 모집했고, 조직 또는 개인별로 총 22만2천17명이 참여했다. 이 중 ARS 조사에 응한 조합원은 2만3천9994명(정책결정 참가단의 10.8%)이다."

이렇게 해서 지금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을 정당투표 지지정당으로 결정했습니다. ARS 조사에 참여한 2만3994명 가운데 1만9028명이 통합진보당을 지지했고 나머지 4311명과 655명이 저마다 진보신당과 사회당을 지지했습니다. 그 뒤 사회당과 진보신당이 합당했으니 사회당 지지는 진보신당 지지가 되겠군요.
 


저는 이런 결정이 우습습니다. 가능하지 않은 결정을 어거지로 밀어붙인 것 같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전국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 지부도 민주노총 소속이기에 이런 포스터가 나붙어 있기는 합니다. 절차상 문제는 앞에서 이미 말씀드렸고요, 이번 결정에는 패권주의도 한편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결정이 통합진보당 위주임은 분명합니다. 이는 조합원 대중이 중심인 결정이라 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여러 논리가 있겠지만, '통합진보당에 정당투표를 몰아주자'는 주장의 바탕에는 통합진보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민주노총의 포스터를 보면 '여소야대 창출'과 '진보정당의 국회교섭단체 진출'이 목표로 돼 있습니다. 여소야대 창출은 야권단일후보 지지로, 진보정당 국회교섭단체 진출은 정당투표 통합진보당 집중으로 하려 하겠지요.

이는 제도권의 달콤한 늪에 빨려들어갈 준비를 민주노총이 벌써 마쳤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민주노총의 대중투쟁은 보기 어려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는 통합진보당 또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의지나 관점일 뿐 조합원 전체 의사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대의원대회가 무산됐다는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통합진보당 중심으로 이뤄진 이같은 패권주의적 결정은 진보정당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결정은 여러 진보정당들의 공정한 경쟁과 이에 바탕한 다양한 발전을 뒷받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옛날 진보정당이 민주노동당 하나뿐이던 시절과는 조건이 크게 달라져 있는 것입니다.

지금 민주노총이 내걸고 있는 진보의 가치에 나름대로 걸맞은 정당으로는 통합진보당말고 진보신당과 녹색당도 있습니다. 안 그래도 안팎에서 진보신당이나 녹색당에 투표하면 야권 분열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얘기가 나도는 데 더해, 민주노총의 이런 방침까지 더해지면 다양한 진보정당들의 자유로운 발전은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정당명부 비례대표 투표에서 진보신당과 녹색당은 3% 이상 지지를 얻어야 자기 정당이 그대로 존립하는 사활이 걸려 있습니다. 그만큼 절박합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은 원내교섭단체가 되느냐 마느냐 또는 비례대표 출신 국회의원이 10명이 되느냐 11명이 되느냐 정도만 걸려 있습니다.

게다가 조합원의 선택권을 짓밟는 측면도 있습니다. 집중투표하기로 한 통합진보당이 온전한 진보정당이라면 그나마 낫겠지만, 알려진대로 국민참여당과 유시민 선수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우파(한미FTA추진을 반성하기는 했지만)까지 끌어안은 '순수하지 못한' 진보정당이기에 이런 측면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세력이 세지 못하다는 까닭 말고 진보신당이나 녹색당을 위해 민주노총 조합원이 투표하면 안 되는 까닭은 없지 않습니까? 민주노총은 여태 힘이 센지 여부를 갖고 지지나 참여 여부를 결정해온 조직도 아닙니다. 오히려 약하고 어려운 상태를 견디며 스스로를 키워온 조직이 바로 민주노총이라는 점에서 볼 때 더더욱 가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전국금속노조 마창지역 금속지회에서 만든 포스터를 봅니다. '내 머리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정당 투표'라는 제목이 걸려 있습니다. 기호 4번 통합진보당과 기호 11번 녹색당과 기호 16번 진보신당이 차례대로 놓여 있고 그런 다음에 해당 정당의 선전 내용이 이어지도록 돼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민주노총 포스터보다 훨씬 소중한 가치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민주노총 포스터는 결정됐으니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왜 그래야 하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합당한 설명이 보기에 따라서는 없습니다.

마창지역 금속지회 포스터를 보면서 저는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의 바람직한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한 번 더 해 볼 수 있었습니다. 패권주의는 한편으로 괴물을 낳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소외와 불통을 낳습니다. 하나 더 있군요. 조직 안에서는 불신을 낳거나 더욱 키웁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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