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핵발전소, 문제는 지역이고 형평이다

김훤주 2012. 3. 1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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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에서 일흔셋 연세 되시는 어르신이 숨을 거뒀습니다. 2012년 1월 16일 일입니다.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사는 이치우 어르신은 이날 저녁 8시 즈음에 분신 자살했습니다.

한전에서 마을 둘레에 76만5000볼트 송전철탑을 여럿 세우려는 데 반대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장례는 두 달 가량 지난 뒤인 3월 7일 치러졌습니다. 덕분에 장례도 치르기 전에 49재를 해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은 2005년 시작됐습니다.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가장 큰 까닭은 전자파 위험이라 합니다. 충남 청양군 화성 지역에서도 전자파 위험은 현실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마을은 76만 5000볼트가 아닌 34만 5000볼트가 지나는데도 마을 어른들이 몇 년 사이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보라 마을 사람들은 고압 송전탑이 지나가는 곳을 전국에서 여러 군데 찾아다녔습니다. 이들이 가는 데마다 들은 얘기는 "죽어도 막아라"였습니다.

이치우 어르신 분신 이후 모습. /경남도민일보 사진.


고압 송전탑 때문인지 아닌지 이른바 과학이 밝혀주지는 못하지만, 송전탑이 들어선 다음부터는 기르던 가축이 까닭없이 죽어나가고 멀쩡하던 사람이 까닭없이 몹쓸 병에 걸리는 일이 부쩍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76만5000볼트 송전탑 문제는 생존권 문제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상을 받아 다른 동네로 옮겨가 살면 되지 않느냐?" 그럴 듯하지만 그럴 듯하지 않습니다.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도록 법령이 돼 있기 때문입니다.


30년 들여 일군 밤밭에 송전선이 지나가는 바람에 밤농사를 못 짓게 된 경우 보상금이 154만 원이라 합니다. 시가로는 1억 5000만원에 이르는 땅입니다. 퇴직금을 비롯해 재산을 죄다 털어 마련한, 시가로 3억원이 넘는 집과 땅의 경우도 보상금이 700만원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치우 어르신 빈소. 앞에서 절하는 아이들은 어르신의 손자 손녀들이랍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문제는 지역입니다. 서울 강남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세상이 바로 온통 뒤집어졌겠지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사는 농민들한테 벌어진 일이다 보니 세상은 조용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왜 생겼을까요? 밀양에만 69개 송전탑이 들어서게 되는 등 경남 북부 지역과 경북 청도에 이르는 76만5000볼트 송전선로 공사는 핵발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21기이고 5기가 건설하는 중이며 여기에 6기를 더 세우려고 한답니다. 부산 기장군과 울산 울주군에 있는 고리에 1~4호기, 신고리 1호기가 가동 중이고, 신고리 2~4호기가 건설 중이고 앞으로 6호기까지 더 세우려 합니다.

이렇듯 여기에 핵발전소가 집중되면서 적어도 5~6호기가 들어서면 새로운 송전선로가 필요해집니다. 바로 이 신고리 5~6호기 때문에 지금 이치우 어르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그러므로 신고리 5~6호기를 세우지 않으면 이번 송전탑 문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모여 살면서 전기를 쓸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좋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칩시다.

3월 7일 장례식에서 이치우 어르신 부인이 마지막 가는 길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문제는 형평입니다. 한전이 처음에는 이 송전탑을 통해 수도권까지 전기를 갖다나를 것이라 했습니다. 물론 요즘 들어와서는 영남권에만 공급한다고 말을 바꾸긴 했습니다.

어쨌거나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그리고 수도권이 아닌 데서도 도시 사는 사람들이 전기를 많이 씁니다. 이번에 분신 자살한 이치우 어르신이 살던 시골에 사는 사람들과 견주면 이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도 타지 않고, 헤어드라이어도 쓰지 않고, 온풍기나 에어컨을 틀어대는 건물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날마다 물을 데워 목욕을 하지도 않고 비데도 쓰지 않으며 김치냉장고도 따로 가동하지 않습니다. 고작해야 전기 장판 정도 씁니다.


그래요, 핵발전소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형평만 맞추면 됩니다. 형평을 맞추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전기가 필요한 지역에 핵발전소를 세우는 것입니다.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 엄청난 전기가 필요하다면 바로 거기에 핵발전소를 지으면 됩니다. 그러면 송전탑이 이토록 많을 까닭이 없습니다. 혜택은 도시가 주로 누리는데, 고통은 왜 시골이 옴팡 뒤집어써야 하나요?

김훤주
※<기자협회보> 3월 7일치에 실은 글을 조금 고쳤습니다.
원자력신화로부터의해방세계적인반핵운동가이자시민과학자인다카기?
카테고리 과학 > 물리학
지은이 다카기 진자부로 (녹색평론사,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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