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창원~김해 98번 시내버스서 겪은 수모

김훤주 2011. 1. 1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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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모'에 나오는 한자 '모(侮)'를 찾아보니 '업신여긴다'는 말이더군요. '수(受)'는 '받는다'는 뜻이고요. '업신여기다'를 다시 사전에서 찾아보니 '상대방을 낮춰보거나 하찮게 여기다'로 나왔습니다.

가만 생각해 봤습니다. 업신여기다는 말의 뿌리는 무엇일까? 제 짐작으로는, '없이+여기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존재가 있어도,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무시(無視)한다는 것입지요. 

저는 이런 제 짐작이 맞을 것 같다고 여겨 봅니다. 이번에 시내버스를 타고 취재를 가면서 '업신여김=없이 여김'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11년 1월 14일 낮 1시 10분에 창원대학교에서 98번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창원대학교와 김해 인제대학교를 오가는 노선입니다. 저는 수로왕릉에서 내릴 요량이었습니다.

1시 10분에 출발한 시내버스는 엄청난 빠르기로 달렸습니다. 저는 제일 뒷자리에 앉았는데, 다리에 바짝 힘을 줘서 지탱을 하지 않으면 넘어질 지경이었습니다.

98번 시내버스 내부 모습.

요금통에 붙어 있는 표지들.


그렇게 달리던 시내버스가 창원지방법원 앞 신호등에 걸려 멈춰 섰습니다. 그러니까 나이가 일흔 안팎으로 보이는 어르신 한 분이 일어나 "여기 법원 앞 아니냐?"면서 좀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운전기사가 "내리다가 다치면 책임 어떻게 지느냐?"면서 꼼짝도 안했습니다. 자기가 버스 정류장에 멈춰서지 않은 잘못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손님이 좀 내려주라고 독촉을 하자 그제야 마지 못해 뒷문을 열어줬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며 내려갔습니다.

가만 돌이켜보니 그때까지 안내 방송이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르신께서 당신 내리실 데를 놓쳤던 것도 다 까닭이 있었습니다. 저도 겁이 났습니다. 98번 타고 수로왕릉 가기가 초행이었거든요.

운전기사한테 가서 말했습니다. "안내 방송 좀 틀어주세요." 운전기사가 뭐라 말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안내방송 안 나옵니까?" 저는 제 자리로 돌아와 방송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도 안내방송은 나오지 않았고 과속 난폭은 이어졌습니다. 버스를 왼쪽 차로로 바꾸듯이 가다가 오른쪽으로 틀거나 그 반대로 하는 식으로 손님들은 자주 흔들렸습니다. 딛고 있는 발에 들어간 힘은 빠질 틈이 없었습니다.

운전기사한테 다시 갔습니다. "안내방송을 틀어주든지 아니면 수로왕릉에서 내릴 수 있게 미리 일러주세요." 운전기사는 말했습니다. "방송은 고장났습니다. 수로왕릉 가기 전에 (나는) 내리고 다른 기사가 탑니다."

전광판 노선 안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주문한 둘 다를 들어줄 수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완전 두 차례에 걸쳐 '업신여김=없이 여김'을 당했습니다. 제가 한 말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라는 손님 또한 있으나마나 한 존재였습니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거들었습니다. "뭐가 저래 당당하노. 고장났으면 말이라도 잘해야지." 고마웠습니다. 운전기사는 흘깃 돌아만 볼 뿐이었습니다. 저는 돌아오면서 궁시렁댔습니다. "완전 똥배짱이네."

그런데 이보다 심한 일이 다음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류장에서 그 운전기사가 내리고 다른 운전기사가 탔습니다. 새 운전기사가 자리를 잡고 버스를 출발시켰습니다.

그랬더니 고장났다던 안내방송이 바로 나왔습니다. "다음은 수로왕릉입니다." 어쩌구하면서 말입니다. 앞에 운전기사가 고장나지 않았는데도 일부러 방송을 틀지 않았던 것입니다.

황당했습니다. 바뀐 운전기사한테 가서 고장난 것 맞느냐고, 앞에 운전기사 있을 때는 방송이 안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운전기사, "GPS(위치정보시스템)가 연결이 잘 안 된 모양이지요" 하며 어물거렸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연결되지 않던 GPS가, 운전기사가 바뀌자마자 아무 탈 없이 연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저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동안 세 차례나 업신여김을 당했습니다.

다른 손님들과 함께, 과속 난폭 운전으로 온 몸이 흔들리고 다리에 힘을 주지 않으면 안되는 업신여김도 당했습니다. 또 할아버지 한 분도 내릴 데에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업신여김을 겪었습니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려고 서 있는데 창문에 요금 인상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버스를 운행하는 가야IBS주식회사가 만든 것입니다.


"더 나은 친절서비스와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승객 여러분을 더욱 정성을 다하여 모시겠습니다." "직원 모두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더욱 최선을 다해 정성껏 승객 여러분을 모시겠습니다."

저는 이것이 다짐이나 약속이 아니고 비웃음 또는 빈정거림으로 여겨졌습니다. 내려서 시각을 보니 2시 10분 어름이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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