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진실화해위원회 직원들의 마지막 호소

기록하는 사람 2010. 12. 2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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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12월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이 31일을 끝으로 공식 종료되는군요. 1999년부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활동에 참여해왔던 저로서도 참 착잡하기 그지없습니다.

착잡한 이유는 이번 활동 종료가 위원회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마무리되는 게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은 갈수록 위축되어 왔고, 급기야 뉴라이트 계열의 위원들이 대거 자리를 차지하면서 오히려 진실이 축소 또는 왜곡되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제 메일로 진실화해위원회 공무원직장협의회(대표 임채도)의 편지가 들어왔군요.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이영조 진실화해위원장의 기자회견과는 사뭇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침울해졌습니다.

이 정권 하에서는 더 이상 진정한 진실과 화해가 불가능해졌다는 체념이 더 굳어지네요. 진실화해위원회 직협의 편지에서도 그런 체념과 착잡한 마음을 행간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나온 마지막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이 편지의 전문을 블로그에 올려두려 합니다. 직협이 밝힌 앞으로의 과제와 호소를 우리는 언제나 되어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종료에 즈음하여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진실화해위원회 사건 신청인, 유족과 피해자 여러분.
조사활동에 참여하여 주신 참고인, 조사대상자 여러분.

지난 2005. 12. 1. 출범하여 5년 여 활동하였던 진실화해위원회가 오는 2010. 12. 31.자로 공식 조사활동을 종료합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국민통합에 기여하기 위해 독립적인 국가조사기관으로 출범하였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5. 12. 1.부터 1년 동안 국민들로부터 신청사건을 접수하였고, 총11,172건의 조사대상사건을 확정하여 민족독립조사분야, 한국전쟁 전후의 집단희생조사분야, 인권침해조사분야에서 160명의 조사관을 포함 총240명의 직원들이 현장조사, 자료발굴, 참고인 진술조사와 조사결과보고서를 작성하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10. 6. 30. 진실화해위원회는 신청사건에 대한 최종 의결을 완료한바 있습니다.  

출범과정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에 관하여 많은 우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년간 활동과정에서 비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국민여러분께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 전국 경향각지와 해외에서 전개된 조사활동과정에서 귀중한 증언과 자료를 주신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조사관, 직원들은 주어진 역사적 책무를 다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위원회가 마감되는 시점에서 다수의 사건들이 충분한 심의없이 불능·각하처리된 점, 노태우 정권은 권위주의 정권이 아니라는 의결, 부실한 '종합보고서' 작성, 이영조 위원장의 독단적인 조직운영, 포항지역 미군폭격사건의 졸속 처리 등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의 취지와 위원회의 존립 근거를 망각한 행태라 할 것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들로서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깊은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울러 우리 조사관들은 위원회 활동 종료를 앞둔 시점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의 엄중한 과제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회의실.


우리는 진실화해위원회 5년 활동의 성과와 의미가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 더 차원높은 진실규명과 국민통합의 장이 열리기를 바라며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히고자 합니다.

1. 2008년부터 2009년 동안 진실화해위원회가 전국 10개 시군을 대상으로 시행한 피해자현황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신청율은 5%를 밑돌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피해자 100명 가운데 5명 미만이 사건을 신청하였다는 것입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의 경우 홍보부족으로 인해 신청율은 더욱 낮습니다. 우리 위원회가 1년동안 1만여 건의 사건을 신청 접수하였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 할 것입니다. 아직도 평생의 한을 가슴에만 간직한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한 과거사정리, 혹은 국민통합이라는 과제는 요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대통령께 호소하고 촉구하고자 합니다. 은폐되고 왜곡된 과거사의 진실을 밝혀 화해와 국민통합을 이루는 시대적 과제는 이념의 차원이 아니라 인권과 평화라는 보편적 당위의 문제입니다. 과거사의 철저한 진실규명은 그 자체로 화해의 디딤돌이라는 것을 우리 조사관들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만나면서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는 대통령께서 험난했던 우리의 과거사를 직시하고, 국가폭력 아래 희생된 피해자들의 피멍든 가슴을 해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2.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대해 희생자들에 대한 배·보상 특별법 제정, 과거사재단 설립, 희생자유해안장시설 건립 등을 포함한 여러 내용의 권고사항을 전달하였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사항들은 최소한의 기준과 조치를 담고 있습니다. 위법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들은 마지막 희망을 다시 국가에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화답해야 할 때입니다. 

 여야 정당은 진실화해위원회 권고사항을 숙고하여 과거사정리와 국민통합을 이룰 구체적인 후속 입법대책을 마련해 주실 것을 촉구합니다. 아울러 정부는 현재 행정안전부 소관의 권고사항처리단의 위상과 역할을 제고하고 신속하고 성의있는 행정적 노력을 다해 줄 것을 호소합니다.

3. 우리는 과거사정리라는 역사적 과제를 먼저 제기하고 실천한 많은 선각자들과 시민사회의 줄기찬 노력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부차원의 한시적 진실화해위원회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음으로 양으로 우리 위원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것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우리는 다시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일제강점기, 전쟁, 독재정권에 의해 피해를 입지 않은 국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고통스런 과거사를 현재와 거리가 먼 것으로 이해하는 때 전쟁과 독재는 되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사를 직시하고 은폐되고 왜곡된 진실을 깨우쳐 나갈 때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각자 다른 처지와 환경에서 과거사의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해 우리에게 남겨진 소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목격한 진실을 국민과 함께 나누고 다같이 화해하는 길을 찾는 새로운 진로를 열어가겠습니다.

지난 5년간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을 도와주신 모든 국민께 존경과 사랑을 드립니다.

2010. 12. 29.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공무원직장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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