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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들을 대안학교에 보내는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10. 12. 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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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부부에겐 아들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마산 중딩 태윤이의 놀이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김태윤입니다.

지난 4월 말 '독일교육 이야기'를 운영하고 있는 무터킨더 님의 태봉고 방문을 계기로 100인닷컴에 태봉고등학교를 소개하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자유로운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그 때 아들녀석에게 이 학교를 소개했더니 부모와 헤어져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싫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녀석 나름대로 학교 홈페이지에도 들어가보고 담임선생님과 상의도 해본 모양입니다. 한참 후에 다시 '태봉고에 가고싶어요'라고 하더군요.

그 후 녀석의 고등학교 진학 목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공립대안학교인 태봉고등학교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는 대안학교로 가고 싶습니다-태윤이)

그런데, 이 학교는 가고 싶다고 모두 갈 수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경쟁률이 거의 3:1에 육박하더군요. 게다가 학생의 자기소개서가 아주 중요하다더군요. 학생 소개서에는 학부모가 써야 할 내용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1차 합격 통지를 받았고, 이어 아들녀석과 함께 학부모 면접도 봤습니다.

면접을 보던 날 태봉고등학교를 휴대폰 카메라에 담고 있는 태윤이.


그리고 오늘 드디어 최종 합격자 발표가 있었고, 그 명단에 아들녀석도 들어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합격한 것처럼 기쁘고, 아들녀석이 대견하더군요.

그래서 기록삼아 학교에 제출했던 소개서 중 학부모의 입장에서 제가 썼던 내용을 여기 올려봅니다. 학부모에게 묻는 질문은 총 4개였는데, 그 중 하나는 제가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거나 나눔활동을 한 사례를 적어달라는 것이어서 여기서는 뺐습니다.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려는 저와 제 아내의 생각이 여기에 담겨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생각(철학)을 가지고 자녀를 키워왔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왜 태봉고등학교에 진학시키고자 하는지 그 이유를 솔직하게 기술하여 주십시오.

저희는 우리 태윤이가 부자로 살기 보다는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저희는 결코 돈과 행복이 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 피폐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한국의 정규직 노동자 평균임금보다 소득이 적지만, 재벌그룹의 회장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보람과 재미를 느끼는 일을 하고 있고, 저희 가족이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은 집에서 살며, 굶주리거나 헐벗지 않을뿐 아니라 가족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태윤이 또한 스스로 하고 싶은 일(직업)을 찾아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자신의 행복뿐 아니라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서로 배우고 함께 나누는 행복한 사람 육성'이라는 태봉고등학교의 교육목표가 우리 태윤이를 그런 사람으로 키워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태봉고등학교 벽면에 걸려 있는 신영복 선생 글씨를 찍고 있는 태윤이.


- 자녀를 키워오면서 가장 큰 갈등상황은 무엇 이었는지, 그리고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였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주십시오.

태윤이가 나이에 비해 마음이 넓고 정이 깊은 데다 착해서 지금까지는 별다른 갈등이 없었습니다.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교육관도 서로 비슷하여 성적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무리하게 공부를 강요한 적도 없었습니다.

다만 최근들어 중학교 3학년 기말고사를 모두 마친 후, 규칙적인 생활이 흐트러지는 듯하여 걱정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자율성이 강조되는 태봉고에 진학할 것에 대비하여 스스로 공부하고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하려고 아버지가 '하루 한 시간 스스로 공부하기'와 '하루 한 건 이상 블로그 글쓰기'를 권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태윤이가 '무조건 하루 한 시간 공부하기는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여, 세 식구가 회의를 한 결과 융통성 있게 탄력적으로, 그리고 태윤이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걸 지켜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자녀의 십년 후 삶이 어떤 모습이기를 기대하는지 기술해 주시고 자녀의 그러한 삶에 태봉고등학교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기술하여 주십시오.

10년 후라면 태윤이가 스물 여섯 청년이 되는군요. 명문대학을 바라진 않지만, 자기 적성에 맞는 전공을 골라 대학에는 진학했으면 좋겠고, 그 때쯤에는 통일이 되어 군대는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태윤이가 성적경쟁에 내몰려 청소년기를 고통스럽게 보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만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지식을 쌓아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면 좋겠습니다.

태봉고등학교는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와 달리 학생들을 성적경쟁에 내몰지 않고, 스스로 공부의 즐거움을 깨닫게 함으로써 자기주도적 학습과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육성해주리라 믿습니다.

저희 부부와 태윤이의 이번 선택이 태윤이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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