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야권단일정당, 진보정당들에 불리할까?

김훤주 2010. 11. 16.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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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권 단일 정당 만들자는 문성근의 100만 민란

'유쾌한 100만 민란' 운동을 시작한 문성근이 경남도민일보 초청으로 11월 11일 창원을 찾았습니다. 그이는 이날 저녁 7시부터 마산회원구 양덕동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아시는대로 문성근의 '유쾌한 100만 민란' 운동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는 시민"들을 향해 "시민의 힘으로 민주진보진영을 하나의 정당으로 묶어내자"는 데 취지가 있습니다.

문성근이 말하는 민주진보진영을 정치판에서 보면 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그이가 보기에 민주진보진영의 가장 큰 단점은 뿔뿔이 흩어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흩어져 있어 갖고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극우 보수 정치 세력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대안으로는 야권 단일 정당 건설 하나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문성근의 '유쾌한 100만 민란' 운동은 상식을 믿는 시민 100만명을 모아 그 힘으로 정치권을 압박해 야권 단일 정당을 건설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치르자는 것입니다.

2. "'모자'는 벗고 '명찰'만 단 채로 경쟁하자"

저는 도대체 저것이 가능할까 되지도 않을 일일 텐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성근 말을 들으면서 어쩌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습니다.

문성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자'는 벗고 '명찰'만 달고 경쟁하자." 지금 쓰고 있는 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같은 당명은 벗어버리자는 얘기였습니다.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그런 당명을 버리고 다같이 한 모자를 쓴 다음 저마다 정치 성향과 추구하는 이상(이념)에 따라 정치 그룹(정파)을 형성해 국민을 두고 경쟁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자는 당명이 되고 명찰은 고유한 정치 색깔이 되는 셈입니다. 물론 이런 문성근의 생각은 '정당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유쾌한 100만 민란'은 "야권 단일 정당이 만들어지면 나도 당원으로 참여하겠다"고 서약하는 운동입니다.

국민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실망해 야당에게 표를 몰아줄 준비를 마쳤는데도, 야당들은 그 같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채 지리멸렬해 있는 지금 상태를 이렇게 해야만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빛과 소금'이라는 문성근

이런 운동을 하려고 경남도민일보를 찾은 그 날 그 자리에서 문성근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빛과 소금 구실을 해온 것을 잘 알고 있고 그에 대해 존경합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평당원 활동을 하시는 분들 가운데는 성직자 같은 사람도 많이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 또한 존경합니다."

"저는 그동안 '날나리'로 살아왔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송구합니다."

나름 진정성이 묻어나는 이런 말 막바지에 빛과 소금 구실을 해오신 분들이 앞으로도 빛과 소금으로 계속 남을 것인지 묻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진지한 청중들. 책상에 한 송이씩 놓인 장미가 이채롭습니다.

야권 단일 정당이라는 연합 정당을 만들고 정책과 인품으로 경쟁하면 적어도 2012년부터는 야권 단일 정당 안에서 진보 진영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서요.

저는, 문성근의 입에서 '빛과 소금'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많은 것이 이해가 됐습니다.

기독교 경전에 나오는 비유인 '빛과 소금'은 너무나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빛은 둘레를 밝히는 것입니다. 소금은 다른 것을 썩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는 소멸하면서 다른 존재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초가 스스로를 태워 빛을 내고는 녹아없어지는 것처럼요. 소금이 다른 것을 썩지 않게 한 다음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런 존재가 돼서 묻혀버리는 것처럼요.

문성근이 이어서 말한 성직자 이미지는 '빛과 소금'의 이미지와 바로 이어집니다. 아무 대가 없이,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세상을 밝히고 세상을 썩지 않게 하려고 애쓴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4.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빛과 소금'이 아니었다

그러나 빛과 소금이 빛과 소금으로 머물러 있어서는 빛과 소금 노릇을 계속 할 수 없는 것이 정치 현실입니다. 자기 역할을 나름대로 한 다음 그냥 스르르 사라지고 마는 대신에, 자기가 나름대로 역할을 다했음을 인정받고 그 몫을 챙겨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정치입니다.

문성근은 바로 이것을 묻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성향으로 따지면 사회주의에 들고 출신 또는 태생으로 따지면 진보신당/민주노동당이라 할 수 있지만, 이런 면에서 보면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은 자기 만족적 성향이 강합니다.(예전보다는 많이 줄었습니다.)

남들이 무어라 말하든 아무 상관 없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고, 그에 대한 평가가 좋든 나쁘든 자기 할 바를 다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눈치보지 않는 것은 좋은지 모르지만 남들 얘기에 신경쓰지 않는 것은 좋지 않다고 저는 여깁니다.

지금은 조금 덜한 것 같이 보이지만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은 지사적 풍모가 또 센 편입니다. 이를테면 옳고 그름을 꼼꼼하게 따져 옳지 않으면 돌아보지도 않는 그런 성향입지요.

그런데 지사는 운동이나 정치를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지사는 이런저런 사실에 대해 이런저런 평을 내놓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말 그대로 독야청청은 할 수 있지만 운동이나 정치를 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길 가다 보면 다른 데서 날아온 흙먼지를 뒤집어쓸 수도 있고 튀어온 흙탕물에 더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맨땅인줄 알고 발을 디뎠는데 실은 허방이어서 자빠지거나 넘어지는 바람에 갖은 더러운 것을 온 몸에 묻힐 수도 있습니다. 이게 현실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은 누가 깨끗하냐 아니냐, 누가 더러우냐 아니냐, 또는 이게 더러운 것이냐 아니면 깨끗한 것이냐 이런 식으로 많이 나눠 왔던 것 같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누구 빛이 더 밝으냐, 붉은빛은 정통이고 연둣빛은 정통이 아니다, 이 소금이 국산이다 아니다, 저 소금이 더 짜다 아니다 이렇게 다퉈 왔던 것 같기도 합니다.

붉은빛도 세상을 밝히고 연두빛도 세상을 밝히게 마련인데 말입니다. 국산이든 아니든 소금이라면 다 짜게 마련이고, 짠 정도는 이런저런 차이가 있겠지만, 저마다 주어진 깜냥에서 나름대로 썩지 않게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빛과 소금 노릇을 제대로 못해 왔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네끼리 선명성 경쟁을 하는 바람에 정작 자기가 밝혀야 하고 썩지 않게 않아야 할 것들을 놓친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5. 야권 단일 정당(=연합 정당)에 대한 검토는 필요 없을까

그래서 저는 일단,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활동을 하는 이들이 문성근의 '유쾌한 100만 민란' 운동을 아예 희떱게 보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내쳐버리지는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민주당 또는 그와 색깔이 비슷한 정당과 하는 통합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관성을 벗어나 문성근이 말하는 야권 단일 정당이 연합 정당으로 구성될 경우 그것이 진보 진영에게 좋을지 좋지 않을지를 있는 그대로 타산해 보면 좋겠습니다.

제가 순진한지 멍청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문성근이 말하는 대로 다수의 횡포가 견제 차단되고 소수 정파들의 활동과 일반 당원의 참여가 보장된다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그룹도 그 안에서 충분히 '정책'과 '인품'으로 경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빛과 소금' 노릇이 좀더 오래 가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빛과 소금' 노릇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만으로 국한되지 않고 널리 퍼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물론 가부 결정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당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옛날에는 그이들과 관련이 있었던 제가 바깥에서 볼 때는 그런 생각이 든다는 말씀을 그냥 해보는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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