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촛불 당시 경찰 폭력은 폭력도 아니라는'

김훤주 2010. 5. 2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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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1996년 들불문학상과 1997년 전태일문학상을 받았던 시인으로 오도엽이 있습니다.

오도엽 시인이 언제인가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선생을 책으로 엮더니 이번에는 4년 동안 탐방이나 인터뷰를 통해 만들었던 '삐라'를 책으로 묶어냈습니다.

삐라인 까닭은 이렇습니다. "내가 택한 방법은 저울의 균형입니다. 편파적으로 글을 썼는데 어떻게 저울의 균형이냐고 애기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가진 거울은 글 밖에 있습니다. 바로 내가 사는 사회의 저울입니다.

권리를 침탈당하고 잃은 쪽의 입장만을 편파적으로 많이, 아니 전부이다시피 글을 구성했습니다. 굳이 내 글이 아니더라도 권리를 빼앗는 쪽은 더 많은 기회를 이미 사회에서 독점했기 때문에."

그래서 오도엽은 자기 글이 가장 공정하다고 주장한답니다. 저는 여기에 크게 공감합니다.

"여기 실린 목소리는 상식의 목소리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모습을 지닌 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상식을 위해 살아가는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바로 권리를 위한 지독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글 중간중간에 내 감정이 폭발합니다. 굳이 감정을 내세운 까닭이 있습니다. 내 글은 기사도 르포도 아닌 '삐라'이기 때문입니다."

르포집의 제목이 '밥과 장미'랍니다. '밥'은 인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생계이며, 생계를 위한 권리랍니다. '장미'는 인간으로 존중을 받을 권리이며 존중받기 위해 벌이는 피어린 노력·저항이랍니다. 그래서 '장미'는 '밥'과 함께 피어납니다.

 "정부는 2009년 8월 13일 평택을 고용개발 촉진지역으로 지정합니다. 성과는 초라합니다. 이력서에 쌍용자동차 경력이 들어가면 아예 면접 볼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는 현실의 장벽이 두툼하게 놓여 있습니다.

최철호(가명)씨는 거짓말을 보태지 않고 백 군데 가까이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습니다. 쌍용자동차에서 근무한 내용을 빼고 이력서를 넣자 최근에 한 중소기업에서 면접을 보러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갔더니 어찌 알았는지, 왜 쌍용차 다닌 것을 쓰지 않았냐고 묻더라고요. 하도 취업이 안 돼서 그랬다고 했더니, 쌍용차 다닌 분들은 받지 않는다고, 미안하다 그러며 가라 하더라고요.'

이후로 최철호씨는 이력서를 쓰지 않습니다. 이력서를 쓸 필요가 없는, 몸뚱이가 이력이 되는 건설 현장을 찾아갑니다. 평택 미군기지 건설현장에 자주 갑니다. 거기 일하는 일용직 가운데 100여 명은 최씨와 함께 일했던 쌍용차 동료들입니다."

이런 장면도 있습니다. "최순이씨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주5일 근무인데, 왜 토요일은커녕 일요일에도 맘대로 쉬지 못하는지, 왜 눈치를 보며 일요일 근무를 빠져야 하는지, 당연히 쉬는 날 쉰다고 하는데 욕을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놈의 잔업이나 좀 적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몸이 아파도 꼬박꼬박 잔업을 해야 하니, 미칠 정도가 아니라 등골이 휘어 죽겠습니다. 주야 바꿔 가며 열두 시간 맞교대를 돌다 보면, 살려고 일하는 건지, 죽으려고 일하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습니다.

앉아서 일하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요. 지난달 불량이 났다고 보름 동안 종일 서서 일했습니다. 다리가 팅팅 부었던 그때 생각을 하면 새우등이 되어도 앉아서 일하는 게 낫습니다. 이렇게 일해서 얼마를 버는지 아세요? 기본급 88만원. 잔업 60시간을 해도 110만원이 안 됩니다."

1960년대 전태일의 분신을 불러왔던, 청계천 다락방 같은 풍경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2008년 경기도 평택 동우화인켐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의 고백이랍니다.

비정규직은 도급, 하청, 용역, 파견, 외주 같은 어지간한 사람은 구분도 하기 어려운 아리송한 이름으로 같은 직장 안에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2년이면 갈아끼워질 부품처럼 말씀입니다.

기업과 정부는 이미 알려진 대로 갖은 '한국 경제를 위해서'라는 집단주의나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전체주의 논리를 앞세우며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합니다.

희생의 강요는 단순한 강요가 아닙니다. 구조적이어서 간접적으로 이뤄지든 아니면  직접적으로 이뤄지든 언제나 물리력을 동반합니다. 그리고 동반되는 폭력은 꽤나 선정적이지요.

공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이재석씨는 비정규직법 시행 1년만에 해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전자회사 다니는 김윤자씨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식구들 아침밥을 차리던 중 회사가 간밤에 이사를 갔다는 소식을 듣고 황당해 합니다.

이보다 더 선정적인 이미지를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자기가 졸업한 대학교 행정조교 서수경씨는 동료 직원 40여 명과 함께 해고통지서를 받았습니다. 학습지 교사인 김진찬씨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연월차 휴가도 못 쓰고 국민연금·건강보험 적용도 안 된답니다. 이 또한 선정적입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추천사에서 "<밥과 장미>를 읽으면 많은 독자들은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를 시청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가 전하는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생한 현실이다."라고 했습니다.

읽다 보면 읽는 일이 이렇게 힘겨울 수도 있구나 새삼 여겨지지만만,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알아야 할 대한민국의 가장 생생한 단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그래도 여러 분들에게 반드시 읽으시라 '강요'는 하지 않겠습니다.

책을 읽다가 저는 문득 2008년 촛불 국면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경찰은 시위 대중을 향해 폭력을 부렸습니다. 이를 두고 많은 '시민'들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느냐 크게 공분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크게 공분한 그런 폭력이, 실은 쟁의하는 노동자에게는 폭력이랄 수 없고 그냥 낯간지러운 그런 수준밖에 안 됩니다. 쟁의하는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폭력은, 지난해 쌍용차동차 파업 진압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거의 전쟁 또는 테러 수준이랍니다.

이런 인식의 '온도 차이'는 쟁의하는 노동자에 대한 국가 경찰의 폭력이 어느 정도인지가 여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있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가장 약한 것들은 가장 아래에 있고 그래서 소리를 내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합니다. 오도엽이 '기사도 르포도 아닌 삐라'를 책으로 묶어낸 까닭이 여기 있다고 저는 여깁니다.

김훤주

밥과 장미 - 10점
오도엽 지음/삶이보이는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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