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언론, 블로그 강의

중부매일에서 지역신문의 미래를 봤습니다

기록하는 사람 2010. 4. 2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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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충북 청주에 있는 중부매일 사원과 기자들을 대상으로 6시간짜리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4시간 강의는 종종 해봤지만, 하루에 6시간을 강의한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강의에 열을 올릴 땐 몰랐는데, 마치고 나니 몸에 기(氣)가 다 빠져나간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도 저로서는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고, 새로운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강의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았습니다.

○전체 강의주제 : 뉴미디어 환경 적응을 위한 이론과 실무

10:00~12:00 블로그 저널리즘과 소셜미디어의 이해 : 종이신문의 미래와 관련해 현재 전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소셜미디어의 흐름을 알아보고, 블로그 저널리즘이 앞으로 뉴스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알아본다.

또한 이런 뉴미디어 흐름 속에서 종이신문, 특히 지역신문의 살 길은 무엇이며, 무엇을 준비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중부매일 PDF.

13:00~15:00 블로그 글쓰기와 기사쓰기 : 기자에게 블로그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블로그 운영을 잘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점들은 무엇인지, 종이신문의 기사쓰기와 블로그 포스트는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등을 구체적인 사례로 알아본다.

또한 현재 스트레이트 기사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기사쓰기의 혁신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 지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15:00~17:00 트위터와 페이스북, 그리고 스마트폰 : 블로그와 함께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내고 있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이른바 단문블로그는 어떻게 이용하는지, 그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고, 그것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도 예측해본다.

또한 미디어환경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게 될 모바일 인터넷 시장과 이를 주도하고 있는 아이폰과 옴니아, 안드로이드 등 스마트폰은 물론 최근 발매된 아이패드 등은 어떤 기능과 확장성을 갖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자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지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물론 위의 계획대로 딱 들어맞게 강의를 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저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강의 도중 스트레이트 기사의 딱딱함과 무미건조함에 대한 대안으로 내러티브(이야기) 기사를 소개할 때였습니다.

강의 대상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생긴 실수

제가 그동안 갖고 있던 신문사 간부들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바탕에 깔고 "데스크부터 새로운 기사형식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핏대를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한겨레 안수찬 기자가 쓴 <스트레이트를 넘어 내러티브로>라는 책을 소개하며, "데스크들이 꼭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 때 강의를 듣고 있던 누군가가 말하더군요. "안수찬 기자를 초청해서 강의를 한 번 들었거든요."

순간 당황했습니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을 저 혼자 핏대 세우며 떠든 셈이 되었으니까요. 하하.

그러고 보니 제가 10년 넘게 재직했던 경남도민일보와 중부매일의 몇 가지 다른 점이 보였습니다. 우선 강의를 실무적으로 준비한 주체가 달랐습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주로 기자와 사원교육을 기자회나 노동조합에서 주최합니다. 강사 선정부터 섭외, 강의실 준비와 회계까지 기자회와 노조가 합니다.

그러나 중부매일은 편집국 간부 중에 교육담당 부장이 있더군요. 그 분이 강의를 실무적으로 준비하고 진행했습니다.

또 확실히 다른 점은 경남도민일보에 비해 간부들의 참석률과 공부하려는 자세가 남달랐다는 것입니다. (경남도민일보를 나쁘게 말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솔직히 실상을 알려드리는 게 경남도민일보에도 약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그동안 경남도민일보에선 기자교육을 할 때 참석하여 배우려는 편집국 간부는 항상 정해진 1~2명 뿐이었습니다. 그 외의 간부들은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빠졌습니다. 그들은 사내에서 외부강사를 초청해서 하는 강의는 물론 언론재단에서 주최하는 교육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평기자들이 언론재단의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편집국장에게 알려주면서 "간부님들 중에서 좀 가시면 좋겠다"는 건의를 해도 가지 않습니다. 배우는 게 싫은 걸까요? 아니면, 자기는 이미 다 알고 있으니 더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경남도민일보와는 달랐던 중부매일 간부들

중부매일은 그날 차장과 부장, 부국장뿐 아니라 박상연 편집국장과 지용익 대표이사까지 참석하여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끝까지 진지한 태도로 강의를 들었습니다. 편집국 소속 기자들뿐 아니라 총무와 광고 등 파트에서 일하는 사원들도 함께 강의를 듣는 것 또한 경남도민일보와 다른 점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경남도민일보의 경우, 얼마전 사임한 서형수 대표이사를 빼곤 이런 교육에 대표이사가 끝까지 참여한 예도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사측에서 초빙하여 진행한 월례 사원총회 때의 강의는 예외였습니다만.)

중부매일의 경우 사장이 참석해 있으니 다른 간부들이 빠질 수 없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경남도민일보는 좀 달랐습니다. 서형수 사장의 경우 사원이나 기자 대상 교육이 아닌 블로그강좌에도 가급적 빠지지 않고 참석해 강의를 들었습니다만, 사장이 참석했다고 해서 편집국 데스크들이 참석한 경우도 없었습니다.

또한 경남도민일보의 경우, 저에게 뉴미디어와 인터넷 분야의 업무를 그냥 다 맡겨놓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습니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해 간부나 사원들이 공유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는 전국의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언론재단 강의나 국제신문, 전남일보 등 다른 신문사에 강의를 하러 다녔지만, 같은 내용의 강의를 정작 경남도민일보에서는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데, 제가 나서서 강의를 하겠다고 하는 것도 우스웠기 때문입니다.

중부매일 지용익 대표이사 사장.


뉴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깊은 신문사 사장

중부매일 지용익 사장의 뉴미디어에 대한 높은 관심과 깊은 지식에도 놀랐습니다. 제가 있던 경남도민일보의 어떤 임직원(서형수 사장만 빼고)보다 뉴미디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돌아와서 뒤늦게 찾아 읽은 것이지만, 중부매일 홈페이지에 있는 지용익 사장의 인사말을 보고 중부매일이 왜 사원과 기자들에게 '뉴미디어 환경적응 교육'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 혁명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미디어 환경도 급변하면서 이미 미디어 빅뱅이 시작되었습니다. 올드미디어의 위기와 뉴미디어의 잇단 등장은 미디어업계의 판도조차 가늠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언론의 위기, 특히 신문의 위기인 것이 사실입니다. 오랫동안 종이신문이 독점하다시피했던 뉴스시장에 방송, 인터넷, 모바일, 전자책 등 새로운 뉴스 콘텐츠 유통수단의 등장은 당연한 일이고 앞으로도 끝없는 진화를 거듭할 것입니다.

그러나 뉴스콘텐츠 소비 플랫폼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사실보도와 환경감시라는 언론본연의 기능을 담보하는 뉴스콘텐츠 자체의 가치는 변함없이 중요합니다.

(중략)

이를 바탕으로 중부매일은 지금까지 신문 중심 콘텐츠를 인터넷, 모바일을 비롯한 뉴미디어와의 융합을 통해 충청권의 소식을 제대로 전달하는 매체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이미 지용익 사장이 했던 이야기를 내가 강의에서도 똑같이 반복하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낯이 뜨뜻해지려 합니다.

제가 중부매일에 대해 사전조사가 소홀했던 나머지 또 하나의 실수를 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지용익 사장의 승용차로 뒤풀이장소인 족발집으로 이동할 때였습니다.

"중부매일은 유급순환휴직 안 했나요? 경남도민일보는 했는데, 그걸 해보니 사원들에게 충전의 기회도 되고, 노동부에서 월급의 70% 가까이 지원을 해주니 회사로선 비용절감 효과도 크던데, 중부매일도 한 번 해보시죠."

"아, 그거 우리도 생각해봤는데, 요건이 맞아야 되더군요."

"무슨 요건이요?"

"중부매일은 그동안 적긴 하지만 매년 조금씩 흑자였거든요."

아하! 흑자기업이기 때문에 노동부에서 임금 일부를 지원하는 휴직이 불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수였습니다. 저는 경남도민일보만 생각하고 당연히 중부매일도 적자일거라고 섣불리 단정해버렸던 것입니다. 강의하러 갈 땐 그 강의대상에 대한 사전조사가 충분해야 합니다.

"사실 중부매일도 많을 땐 인력이 130명까지 되었어요. 우리도 사실상 사원주주회사나 마찬가진데, 적자가 나면 임금을 깎을 수밖에 없고, 돈을 벌면 버는만큼 가져가는 구조거든요. 그래서 인력을 점점 줄여 지금은 60명 수준입니다. 그렇게 해서 적자구조를 면한 거지요."

지용익 사장의 겸손한 설명을 들으면서 엄청 부끄러워졌습니다. (부끄러웠던 구체적인 이유는 좀 보류해놓겠습니다.) 물론 사정을 속속들이 다 알 순 없지만, 중부매일은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실속있는 지역언론이었습니다. 요즘처럼 신문이 어려운 때 지역신문이 흑자를 낸다면 정말 대단한 겁니다.

중부매일 뉴스사이트.



중부매일도 충청권 메타블로그 구축한다

어쨌든 인터넷 중부매일은 올해들어 본격적으로 지역메타블로그를 구축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충북지역 블로거 공동체를 형성하여 신문사와 블로거들이 윈-윈하는 구조를 갖추겠다는 겁니다. 제가 2008년도에 경남도민일보에서 구축했던 지역메타블로그가 충청투데이에 이어 중부매일로까지 확산되는 셈입니다. 기분좋은 일입니다.

충북지역에서 활동해온 블로거들을 묶어내는 작업과 함께, 풍부한 콘텐츠는 있으나 블로그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지역의 전문가와 시민들을 위한 블로그 강좌도 정례화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강호의 블로거 여러분들, 중부매일의 메타블로그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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