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소설가 이병주의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두고 술도 없이 먹는 것은 동물적인 습성이다." 뭐 이런 말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요. 저는 종종 이 말을 반주의 명분으로 삼곤 합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니 블로거들과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실 일도 많아졌습니다. 그렇다면 맛있는 음식을 맞이하는 블로거의 자세는 뭘까요? 그건 바로 이겁니다.
'카메라도 없이 맛있는 음식을 맞이하는 것은 블로거의 자세가 아니다.'
하하하. 무슨 말이냐고요? 맛있는 것은 널리 알려야 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할 블로거가 그런 의무를 망각한 채 자기 배만 채우는 데 급급해선 안 된다는 말이지요. 어떤가요? 그럴듯 한가요?
얼마 전 블로거 거다란 님과 커피믹스 님, 그리고 파비 님과 함께 여수팸투어를 다녀왔습니다. 거다란 님의 차에 동승하여 여수로 향하던 중 잠깐 길을 잘못들어 진주시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왕 진주로 들어와버렸으니 여기서 진주비빕밥이나 한 그릇씩 하고 가죠. 뭐"라고 제안했고, 마침 점심 때여서 진주의 유명한 천황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손님이 너무 많아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던 중 마침내 요리가 나왔습니다. 석쇠불고기 한 접시와 소주 한 병, 그리고 육회를 얹은 진주비빔밥이었습니다.
그 순간 블로거들은 수저를 드는 대신 일제히 카메라를 꺼냅니다. 지난해 대전의 아줌마 블로거 꼬치 님도 '블로거들이란~'이라는 글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요. 저도 그런 장면을 포착해봤습니다.
보세요. 음식을 먹을 생각은 않고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 옆에서 거다란 님은 엉거주춤 숟가락을 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참을 찍고 난 뒤에야 겨우 밥을 비볐습니다. 비벼놓고 또 찍습니다. 숟가락에 밥을 떠올려놓고 그걸 또 찍습니다. 먹다가 찍고, 찍으면서 먹고….
다먹은 후 식당 밖에 나와서도 또 찍습니다. 식당 입구와 간판을 담으려는 거죠. 이렇게 하여 하나의 맛집 포스트가 만들어집니다.
여수에 가서 만난 블로거들도 마찬가집니다. 첫날 저녁 만찬에 블로거들을 초대한 여수시장이 와서 블로거들과 악수하러 돌고 있는 과정에서도 연신 탁자 위의 음식을 찍어댑니다.
사진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아예 동영상으로 담는 블로거도 있습니다.
역시 이곳에서도 식당 밖에 나와 식당의 외부전경을 찍습니다. 카메라를 향한 블로거들의 시선이 자못 진지합니다.
이런 포스팅을 하고 있는 저 또한 사실은 식당에 갈 때마다 저런 짓을 합니다. 가족은 물론 약간 어려운 관계의 사람을 만나도 일단 음식이 나오면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저의 이런 모습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상당히 어색해합니다. 그 어색함을 풀어보려고 제가 이렇게 외칩니다. "야, 이거 맛있겠네~. 사진으로 찍어둬야 겠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 앞으로 블로거와 함께 식당에 가게 되면 갑자기 카메라를 꺼내도 당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맛있는 음식을 맞이하는 블로거의 기본 자세가 그거니까 말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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