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지망생들이 흔히 묻곤 한다. 어떻게 해야 좋은 기자가 될 수 있느냐고. 구체적으로 그들은 어떤 훈련을 해야 글을 잘 쓰고, 무슨 수를 써야 취재원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이 실망할지라도 해줄 수 있는 말은 한마디 뿐이다. "중요한 것은 문장력이나 취재력이 아니라 무엇을 쓸지 판단하는 능력이다." (문정우 시사인 편집국장)
가끔 후배기자에게 취재지시를 했는데 기사가 올라오지 않아 물었을 때 이렇게 말하는 녀석들이 있다. "그거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던데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되묻는다.
"너, 혹시 경찰이냐?"
"아뇨?"
"그럼 검사냐?"
"아뇨?"
"아, 그러면 판사냐?"
"아닌데요?"
"경찰도, 검사도, 판사도 아닌 놈이 왜 법을 들이대냐? 기자는 법을 넘어서야 하는 거야, 임마!"
그렇다. 법관은 법을 잣대로 사건을 봐야 하지만, 기자는 '인간의 보편적 상식'을 잣대로 삼아야 한다. 법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법이 미처 담지 못한 문제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난해 12월 14일 우리 신문 지면에 보도한 뒤, 이 블로그를 통해 계속 제기하고 있는 사이판 총기난사 피해자 박재형(39) 씨 문제도 그렇다. (☞ 일본인 관광객엔 무릎, 자국민은 "나몰라라")
척추에 관통상을 입어 반신불수가 된 박재형 씨.
피해자들을 사고 지역으로 데려갔던 하나투어 여행사는 "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다"고 하고, 사이판 정부도 "보상해줄 제도도 없고, 책임도 없다"는 입장을 우리 정부에 통고했다. 우리 정부 역시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인터넷이나 언론에 호소해봐라"며 무기력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1월 5일 오후부터 6일 저녁까지 이어진 리트윗 행렬. 최소 80명 이상의 트위터리안들께서 리트윗을 날려 주셨다.
그들의 말대로 이 문제는 법이나 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보편적 상식'에 비추어 이런 경악할 사건에 아무도 책임질 주체가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없던 '특별조례'까지 만들어 부산 사격장 화재로 희생된 일본인들을 위해 3~5억 원씩 보상해주기로 한 사례와 비교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전국의 수많은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의 태도다. 내가 재형 씨의 형 박형돈(43) 씨를 처음 취재하러 갔을 때 그는 이미 자신을 만나 취재한 신문과 방송사 기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신문과 방송에는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내가 이 문제를 최초 보도한 셈이 되었는데, 그 보도 이후 박형돈 씨의 연락처를 묻는 몇몇 언론사의 전화를 받았다. 물론 알려줬다. 그러나 실제 보도가 이뤄진 곳은 국민일보 쿠키뉴스와 시사인밖에 없었다. (☞쿠키뉴스 "보상금 한 푼 못받고"…사이판 총기난사 피해자의슬픈 크리스마스)(☞시사인 억울하면 인터넷에 호소하라는 외교부)
'이게 정말 기사가 안 되는 걸까?' 그래서 네티즌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하고 블로그에 계속 글을 썼다. 가끔 황당한 댓글도 없진 않았지만, 그동안 달린 100여 개의 댓글은 거의 모두 사이판과 한국정부, 여행사의 무책임한 처사에 분개하는 목소리였다.
그동안 포털 다음의 메인에도 몇 번 올랐고, 베스트에도 여러번 걸렸다. 엊그제 썼던 '사이판 정부에도 무시당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글은 포털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트위터에서 거의 'RT(리트윗 : 재배포) 폭탄'을 맞았다. 일일이 세어보기도 힘들 정도였지만, 줄잡아 80~100여 분이 리트윗을 날려주셨던 것이다. 그 리트윗이 모두 블로그 방문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1명의 트위터에 100명의 팔로워로만 계산해도 최소 1만 명 이상에게 이 문제가 노출된 것이다.
게다가 리트윗을 날려주신 분 중에는 독설닷컴처럼 팔로워 수가 5000명이 넘는 파워 트위터리안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사이판 관광 도중 사고 당하시면 보상은 커녕 사과도 못받습니다', 또는 '"인터넷에 알리던가"하고 생까는 정부, "인터넷에 알리면 고소한다"고 협박하는 하나투어. 이놈들 땜에 관광도 못가겠네'라는 식으로 메시지를 고쳐가며 끊임없이 퍼뜨려주었다.
또한 블로그를 통한 여론화와 문제해결 과정에 동참하는 블로거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한사 정덕수 님은 박재형 씨가 입원 중인 서울대병원을 직접 찾아 취재에 나섰고, 펨께 님과 블루팡오 님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블로거들도 합세하고 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그동안 침묵했던 다른 언론도 나설 때가 된 것 아닌가. 다행히 두 방송사에서 취재에 나섰다. 한 곳은 서울에 있는 방송이고, 다른 한 곳은 경남이 있는 방송이다. 물론 이번에도 취재는 했지만, 보도는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송사가 취재를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갖기에 족하다.
그러나 신문사들은 여전히 무관심이다. 대표적인 피해자인 박재형 씨가 경남 마산 사람이지만, 이곳 지역신문들조차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신문사들이 이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다시 네티즌 여러분께 물어보고 싶다.
1. 정말 기삿감이 안 되는 걸까?
2. 신문의 주요 광고주인 하나투어 여행사가 무서운 걸까?
3. 자국민 보호에 무심한 정부를 비판했다가 찍히는 게 두려운 걸까?
4. 그것도 아니라면, 이미 지방의 작은 신문사에 선수를 빼앗겼기 때문에 뒤따라 쓰는 건 자존심이 상해서일까?
(※이 글은 블로그든, 카페든, 게시판이든 얼마든지 퍼가셔도 좋습니다. 널리 퍼뜨려 주세요.)
※다음 아고라 청원 : '사이판 총격피해 한국인에게 대책을' ☜서명에 참여해주세요.
※사이판 : 북마리아나관광청 자유게시판 ☜한국인으로서 항의글을 남겨주세요.
아래는 현재 이 사건의 해결에 힘을 보태고 있는 블로거와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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