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블로그 컨설팅

신문·방송이 침묵하면 블로그가 외친다

기록하는 사람 2009. 12. 3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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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최 모씨는 지난 24일 밤 12시께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음주단속 경찰관들의 눈 앞에서 뺑소니 사고가 났는데 추격할 생각은 않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가서 잡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날 최 씨는 여자친구와 함께 승용차를 몰고 마산시 양덕동 홈플러스에서 석전사거리 쪽으로 주행하던 중 음주단속을 하고 있던 경찰관들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순간 옆 차로에서 뒤따라 오던 아반떼 승용차가 음주단속을 위해 세워둔 차단시설을 충격하고 이어 최 씨의 차량 후문을 들이받았다.

단속 중인 경찰관들도 바로 눈앞에서 이 장면을 목격했다. 사고 직후 피해자는 물론 가해차량 운전자도 차에서 내렸다. 최 씨는 증거를 위해 현장을 촬영하려 했다. 그러나 경찰 지휘관으로 보이는 간부는 '뒤에 차가 많이 밀리니 일단 차량을 우측 편으로 빼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차를 빼는 동안 가해차량은 경찰이 보는 앞에서 도주해버린 것이다.

피해자 최 씨가 그린 당시 상황 그림.


더 황당한 것은 뺑소니 차량이 전방 50m 앞 신호등에 멈춰 있는 동안에도 경찰은 추격할 생각은 하지 않고 피해자인 최 씨에게 '가서 잡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최 씨는 "경미한 추돌사고이긴 했지만, 가해차량이 도주한 것으로 보아 음주상태였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경찰은 뻔히 보고서도 추격하지 않았다"고 분개했다. 그는 특히 사고 후 자신이 직접 112에 신고하여 마산 동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조사 경찰관들 역시 동료 경찰관을 두둔하는 데 급급했다고 말했다.

과거 같으면 이런 일을 겪었어도 혼자 분을 삭이거나 언론사에 제보해보는 수밖엔 없었을 것이다. 제보를 해도 언론사가 써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최 씨와 그의 여자친구는 다른 방법으로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했다.

뺑소니 사고에 대한 경찰의 직무소홀을 고발한 조정림 씨의 블로그.

여자친구는 직장동료의 아내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고 현장을 묘사한 그림도 메일로 보내주었다. 또한 최 씨는 경찰청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이 같은 사연을 올렸다.

이 이야기를 들은 블로거 조정림 씨는 이튿날인 25일 오후 자신의 블로그'경찰아저씨 시민들에게도 총과 수갑을 주세요'는 글을 올린 후, 메타블로그인 경남도민일보 갱상도블로그와 포털 다음에 송고했다.

다음에서는 조회수가 56회에 그쳤지만, 갱상도블로그에선 400명이 넘는 네티즌이 읽었고 일부는 경찰을 성토하는 댓글을 남겼다.

바로 다음날 최 씨는 경찰서 간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내용이었다. 현장 지휘관이었던 경찰 간부도 사과 전화를 걸어왔다. 경찰은 상황 대처가 소홀했음을 인정하고 최 씨의 승용차 수리비 전액을 부담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뺑소니 차량에 대해서도 수배 조치를 취했으며, 경찰관의 직무소홀에 대한 감찰 조사도 진행 중이다.

최 씨는 "사과 전화를 해온 경찰이 인터넷의 글을 내려줄 것을 부탁했지만, 엄연한 사실에 대한 기록인만큼 지우거나 내릴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신문과 방송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블로그의 글을 보고 조정림 씨에게 연락이 온 언론사는 지역의 케이블방송사뿐이었다.

이처럼 블로그가 기존 언론의 역할을 대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블로거 이윤기 씨는 최근 엉터리로 시공된 점자 보도블록을 지적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고 며칠 뒤 자신이 지적한 도로의 점자 보도블록이 다시 시공, 설치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해당 관청에서 블로그의 지적을 보고 급히 보수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도 기존 언론의 역할은 없었다. 이윤기 씨는 동료 블로거인 강창원(천부인권) 씨와 함께 다시 시공된 점자블록조차 엉터리라는 점을 추가로 제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1월 20일 미국령 사이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 피해자의 안타까운 사연이 <경남도민일보>에 보도된 후, 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블로거들의 릴레이 보도가 확산되고 있다. '한사의 문화마을''고재열의 독설닷컴', '땅아래' 등 국내 파워블로그는 물론 해외에서 활동 중인 '바누아투에서 행복찾기'  '나의 네덜란드 이야기' 등도 한국정부와 사이판정부, 여행사의 성의있는 대응을 촉구하는 글을 잇따라 올리고 있다. 이런 블로거들의 활약에 힘입어 <국민일보>와 <시사인>이 다시 이 문제를 제기하는 등 블로거와 기존 언론이 서로 협업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다음 아고라 청원 서명도 1300명이 넘었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블로거들은 동네밀착형(하이퍼로컬) 보도나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바로잡는 데 기존 언론보다 큰 강점을 나타내고 있다. 기존 언론이 이 분야에서 제 역할을 못할수록 1인미디어의 역할과 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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