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불쌍한 우리나라 가로수

김훤주 2008. 4. 17.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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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울에 갔다가 플라타너스를 봤습니다. 신문고시 완화 폐지 반대 집회를 하기 위해 서울에 갔습니다. 플라타너스는 길거리에 많이 심는 나무인데 잎이 넓어서 여름이면 아주 울창하고 가을에 단풍도 꽤나 장한 편입니다.

싹둑 잘라버리는 우리나라 가로수

서초구 반포동 강남성모병원 맞은편입니다. 가로수를 관리하는 구청에서 싹뚝 잘랐습니다. 예전에는 이보다 더 심했습니다. 망치처럼 만들어놓은 적도 있습니다. 자치단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머리를 중고생들 빡빡 깎듯이 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가로수를 심는 목적은, 첫째 사람들 보기 좋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 마음도 푸근해집니다. 다음으로는 여름철 온도를 떨어뜨리는 데 있습니다. 가로수 잎이 무성하면 그만큼 많이 그늘이 지고 그늘이 지는 만큼 시원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잎과 줄기가 물기를 많이 머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도시를 시원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는 제 말이 아니라 제 주장이 아니라 객관으로 증명된 사실이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짧게 깎아 버리면 가로수를 심는 효과가 크게 줄어들고 맙니다. 관리를 편하게 하기 위해, 이처럼 가로수 심는 목적과 어긋나는 일을 행정관청에서는 손쉽게 해치웁니다.

게다가 이런 관리는, 나무라는 생명체의 본래 습성과도 어긋납니다. 나무가 우리가 알아듣는 말은 안하지만, 사실은 속으로 많이 상해 할는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가지치기는 신경써서 잘 하지 않으면 생명의 본성과는 맞지 않을 때가 많으리라 저는 여깁니다.

가지가 풍성한 중국 항주의 가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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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는 이와는 다른 관리가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고 있었는데, 2006년 9월 중국에 갔다가 저로서는 아주 그야말로 충격적인 장면을 봤습니다. 항주시 가로수들은 제대로 자라도록 최대한 배려한 가지치기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항주는, 길거리 빈틈이 있으면 어김없이 풀이나 나무가 심겨 있더군요. 도심에서 공해에 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나무나 풀이 안타깝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곳곳에 푸른 빛이 있으니 보기가 좋았습니다. 이런 가지치기는 히말라야시더(개잎갈나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보다시피 가로수는, 전깃줄이라든지 제한이 없으면 죄다 제대로 자라도록 배려를 해 주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보다 인건비가 싸서 이토록 배려를 할 수 있었다고 누군가는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로 봐서 사회경제 효과를 따진다면 중국식 관리가 훨씬 나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먼저 지역 주민들 마음이 훨씬 너그러워집니다. 다음으로는, 냉방에 드는 비용이 그만큼 줄어들 것입니다. 나중에 검증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가로수가 잘 심긴 도시하고 그렇지 않은 도시하고는 여름철 온도 차이가 적어도 1도나 2도는 난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중국이 좋습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편리만을 따지는 우리나라가 싫습니다. 아니 우리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 위정자들이 싫습니다. 이런 위정자들을 그냥 무심하게 내버려두는 저 자신도 한심스럽습니다. 저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다 그럴 것입니다.

버즘나무? 방울나무? 프랑스 오동?

이 플라타너스를, 우리나라 말로 무어라 하는지 아십니까? 버즘나무입니다. 나무 표면에 있는 얼룩이 버즘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조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그러면 어떻게 말할까요? 제가 알기로는 방울나무입니다. 열매가 매어달린 모양이 방울 같아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리 말하면 20년 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잡혀갔는데, 솔직히 버즘나무보다는 방울나무가 훨씬 정겨운 이름입니다.

중국에서는 이 플라타너스를 '프랑스 오동나무'라고 한답니다. 물론 그냥 들은 이야기라서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항주에서만 그렇게 쓰는지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항주는 프랑스를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이 일찍이 들어온 데입니다.

이 이름에는, 프랑스에서 들어온 나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동나무랑 겉모습이 닮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같은 나무라도 이처럼 나라마다 역사나 감수성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이 달라지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한 번 한 적이 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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