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검사와 재판장이 치고받고 싸운 사연

기록하는 사람 2009. 11. 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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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쿠데타 직후의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당시 혁명검찰부부장과 혁명재판소 재판장이 민간인학살 유족회 간부들에 대한 유죄판결 여부를 놓고 재판소 복도에서 치고받고 싸운 일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와 주목된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은 이번 결정문에서 당시 경상남북도와 금창(김해·창원), 동래·창원·경산·밀양 피학살자 장의위원회 사건의 주임검찰관이었던 이OO의 진술을 공개했다.

이OO 전 주임검찰관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피고인들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박창암 혁명검찰부 부장과 심판부 제5부 재판장이 혁명재판소 건물 복도에서 치고받으며 싸웠습니다"라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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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검찰관의 이름이 선명히 적힌 당시 혁명검찰부의 공소장.

이 전 검찰관에 따르면 당시 이택돈 심판관이 속한 심판부 제5부는 '유족들이 전쟁 중에 가족을 잃고 신원(伸寃)을 요구한 것인데, 또 그 가족들마저 잡아들여 구속하고 반국가행위자로 만들면 그 자손이 그 일을 되풀이할 것 아닌가'라는 논리로 일부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이다.

당시의 혁명재판소 심판부 제5부 재판장은 김용국이었다.

이 전 검찰관은 자신의 취조 과정에서 고민도 털어놓았다.

"검찰 취조 과정에서 혁명검찰부의 처벌의지와 범죄구성요건이 어울리지 않아 즉, 피살자들이 적색분자인지 양민인지 신분을 정확히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피고인들에게 사형에서 10년 이상의 중형을 구형할 명분이 약하다고 스스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는 특히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게 처형당한 사람'들이 '이적행위를 하다 사망한 좌익분자 또는 남로당원'인지는 조사과정에서 확인한 적이 없으며, 다만 경찰의 송치의견서 내용을 원용하여 그 내용을 그대로 공소장에 적시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이와 함께 당시 이OO 심판관도 "전쟁 중 가족들이 피살된 사실에 대한 진실규명을 하기 위해 유족회 활동을 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과 관련하여 재판부가 이 사건의 원인과 '범행동기'가 어떠한 지를 자세히 살피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털어놨다.

이에 따라 그는 "(유족회 사건에 대한 당시의 판시 내용은) 피고인에 대한 이미지 각색으로 증거재판주의에 위반되는 것"이며 "유족이 말하는 학살행위 그 자체가 비극인데 그것을 법대에 올려놓고 평가한 것은 불행이며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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