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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마산 도심에 남아있는 진주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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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2년 3월부터 마산에 살기 시작했다. 따라서 햇수로 18년이 되었지만, 마산 도심에 '진주가도'라는 도로가 있는 줄은 몰랐다.

내 딴엔 그래도 마산의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왜 그걸 몰랐을까? 아마도 해방 후의 현대사에만 천착하다보니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내 관심이 그만큼 얕았다는 것일게다.

어쨌든 경남대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에 참여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유장근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진주가도는 '창원부에서 진주부에 이르는 경남의 요로'였다고 한다. 경남의 요로는 밀양부에서 창원부, 창원부에서 진주부에 이르는 길이었는데, 원모습은 개항기와 일제 초기까지 존속되었고, 일부는 오늘날까지 잔존해 있다.

1899년의 월영리 일대와 진주가도가 표시된 지도. 가로로 구불구불해 보이는 길이 진주가도이다.



지형상 대부분 고개를 통해 연결되는데, 밤밭재, 마재 등으로 통한다. 마재라면 공무원노조 임종만 씨의 농원이 있는 곳 아니었던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언제 시간을 내어 가봐야 겠다.

유장근 교수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진주가도를 '융희로' 또는 '순종로'로 이름지어 보존하자고 한다. 즉 1909년 1월 10일 순종 황제가 이토오 히루부미를 대동하여 마산에 방문했을 때 당시 기차에서 내려 이 도로를 통해 가마를 타고 마산이사청까지 갔다고 한다. 당시 황제의 내방으로 인해 길을 넓히고 일부 건물을 헐어내 7~5미터 정도의 폭으로 조성했단다.

마산의 옛 동네(자산, 완월, 월영 등)는 모두 이 길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자산동 경남데파트 뒷길로부터 시작해 옛 롯데크리스탈호텔과 장군시장을 거쳐 반월동 깡통골목까지 남아 있는 진주가도를 걸었다.

경남데파트 뒷길에서 크리스탈호텔로 이어지는 진주가도의 일부.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는 크리스탈호텔.

장군동 시장.

장군동 시장 앞 장군천 부근.

월영초등학교(엣 심상소학교) 뒤.

깡통골목.

옛 회사 건물이 남아 있다.

재야사학가로 통하는 박영주 형에 따르면 해방 후 이 건물에 많은 사회단체 사무실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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